위로.
위로는 '하다'와 '받다' 동사를 붙여, 주고받는 행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완성된다. 자체 생산되기보다 대상이 필요한 감정 단어다.
"언니, 언니는 무슨 영양제 잡숩니까?"
여든다섯에도 건강하게 복지관 수업 다니고 불공드리는 정배 카지노 게임가 요즘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연세면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중 한 가지 질환은 있기 마련인데 신 카지노 게임는 그 3가지에서 예외가 되었다. 참가하는 모임마다 제일 연장자가 되어 가는데, 정작 동생뻘 되는 학우들이 정배 카지노 게임의 건강 비법을 묻는다.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다. 젊어선 돈이 전부인 것 같았는데 나이 들고 보니 건강만 한 게 없다.
"나는 아무 약도 안 묵는다. 묵는 거라고는 밥뿐이다."
정배 카지노 게임 건강은 타고난 복이다. 여태껏 입맛 잃어 본 적도 없고 까다롭지 않아 뭐든 맛있게 잡수신다. 무엇보다 우람한 신체가 복이다. 튼실한 하체 근육은 요가로 수년간 단련한 며느리 허벅지보다 튼실하며 피부 결이나 탄력 또한 다르지 않다.
이런 신 카지노 게임에게도 남모를 불편이 한 가지 있었으니 그건 귀가 어두운 것이다. 일찍이 청력을 잃었다. 신 카지노 게임 말에 의하면, 영감탱이 술 수발들 때마다 차라리 귀가 먹어 저 주정뱅이 소리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속내가 현실이 돼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 되었겠냐마는, 내가 막 결혼했을 때 이미 귀가 어두웠으니 거의 30년이나 된 질환이다.
그날, 정배 카지노 게임는 건강 검진을 마치고 진료실에 있었다. 나는 보호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허수아비 보호자로 동행했다. 위, 대장 내시경 사진을 스르륵 훑어보던 선생님이 어머님께 물었다.
"어머님, 어릴 때 부잣집에서 자라셨죠?"
"예?"
"어머님, 어릴 때 부잣집에서 자라지 않았어요?"
같은 질문이 이어졌지만 아직 마취가 덜 풀린 탓인지 평소보다 더 알아듣질 못하는 어머님을 대신해 내가 대답했다.
"네, 우리 어머님 부잣집 딸이었어요."
"그러니까요, 대체로 부잣집에서 자란 분들이 이렇게 장이 깨끗하더라니까요."
나는 해명 대신 감사하다고 말했고 의사는 또 한 번 증거를 수집했다는 듯 흡족해하며 진료를 마치려 했다. 한편, 화기애애한 분위기로만 대화를 느낀 어머님은 영문도 모른 채 진료실을 나왔다.
"머라카더노?"
나는 어머님 왼쪽 귀 가까이 다가앉으며 말했다.
"어머님 어릴 때 부잣집 딸이었냐고 물었어요. 위랑 대장 깨끗하다고. 어릴 때 부잣집에서 자란 사람들이 장이 깨끗한 경우가 많대요. 그래서 그렇다고 말씀드렸어요."
"허허허허, 내가 부잣집 딸이었다고? 땟거리도 없이 살았는데, 오래 살고 볼 일이네. 헛 참"
보상.
물질만이 보상이 되는 게 아니다. 말 한마디가 물질보다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사실과는 다른, 어긋난 추측도 말이다. 의술뿐 아니라 인술을 부릴 줄 아는 것도 의사의 덕목이다. 의사 선생님의 다정한 말이 아픈 속도 낫게 하는 위로가 되었다. 신 여사는 대기실 의자에서 뜬금없는 선물을 받은 것처럼 상기돼 회상에 잠긴다.
"내가 묵을 거 없어 고생고생 참 많이도 했는데, 부잣집 딸이었냐니. 흐흐 말이라도 좋네."
신 카지노 게임, 다섯 자매 중 가장 건강한 체질을 타고나 그녀의 동생들보다 더 건강하고 복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걸 신 카지노 게임는 어릴 때 겪은 고생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인즉슨, 정배 카지노 게임는 열네 살 무렵부터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다. 무능한 아버지와 물렁한 어머니, 열 살 많은 언니가 있었으나 그녀 또한 그녀의 부모들과 다르지 않았다. 무능과 물렁 아래 네 명의 동생들이 배를 주리고 있었다. 열네 살밖에 안 된 신 카지노 게임가 고무신 공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애살스레 달려들긴 했으나 열네 살이 숙련된 제공들과 같을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밑창 하나 제대로 붙이지 못했단다. 성질은 급한데 일은 손에 붙질 않으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 월급을 받아야 식솔들을 거느릴 수 있었으니. 여기가 끝의 시작이기에. 그러던 어느 날 작업반장이 어린 정배를 불러냈다.
"너는 보니까 안 되겠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 말고, 사택에 가서 부엌일 좀 거들어라."
일을 관두랄까 봐 겁이 났다. 감사하게도 업무를 바꿔주셨다. 독한 본드 냄새나는 현장에서 사장님 댁 살림을 해주는 걸로. 그건들 쉬웠겠냐 마는 주방 일이라면 무급으로도 여태 집에서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하얀 쌀밥을 구경할 수 있는데. 한참 사춘기를 맞은 카지노 게임는 여기서 고린 배를 채웠다. 밭두둑 아래 요상스레 크는 오이처럼 형제자매 중 카지노 게임만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허연 버짐 자리에 꽃이 피었다. 가슴과 엉덩이에 제때 물이 들었다. 끼니때마다 하얀 쌀밥을 먹고 집에 올 때는 식구들 생각에 쌀 한 줌씩을 몰래 주머니에 넣어 왔다. 보리밥에 하얀 쌀이 반짝였다. 얼른 어른이 되어 반짝이는 것들로만 밥을 지어 주고 싶었다. 그러기를 한 달.
"카지노 게임야, 네가 살림하고부터는 쌀이 영 적게 든다."
사모의 말에 어린 카지노 게임는 어리둥절했다. 쌀 도둑질이 언제 들켜도 들킬 것만 같았는데, 되려 알뜰하게 살림 살아줘서 고맙다고 한다. 동생들 배를 불리기 위해 간이 콩알만 해진 카지노 게임는 그간 이 업장을 다녀간 식모들의 간이 얼마나 컸었던지 새삼 놀랐다.
고무신 공장에서 시작된 일은 사택 주방으로, 신발공장으로 신발공장 경리로 이어졌고 스물둘에 결혼해 가장 역할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으나, 거기에도 가장은 없었다.
신 카지노 게임의 인생 지론은 '공짜는 없다.'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형제 위해 한 고생 덕에 당신이 복 받고 산다며 나에게도 부모형제에게 하는 거 아깝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복은 받는 게 아니라 짓는 거라서, 지은 만큼 받는 거라고.
건강 검진을 하러 와서 간 주고 쓸개 주고 대장에 유방까지 다 내줬더니 생각지도 못한 보상을 준다. 위로가 시간을 거슬러 도착했다. 밖에서 유입된 호르몬이다.
"가자, 곰탕 무러 가자. 오늘 내가 쏠게"
위로는 힘이 세다. 정배 여사, 여든 넘어 드디어 부잣집 딸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