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방으로 들어와 안경을 찾았다. 다시 밖으로 나가려다 문득 동생한테 있었던 사건이 생각났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동생을 남자 고등학생이 따라온 것이다. 자췻집 방문까지 두드리는 일이 있었다. 자취방은 여러 학생이 살다 보니 대문도 방문도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잠금장치를 했지만 한동안 잠을 못 자겠다고 불안해했다. 그 후로 사고는 없었지만,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사나운 여자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복장은 이미 체육복을 입었고 모자를 써야 하나?"
머리를 상투처럼 말아 올려 묶고동생이 졸릴 때 씹는 껌도입에 넣었다.
"승희 학생 있어?"
상철이 엄마가 마루 유리문을 두드렸다.
"나갔나 봐요."
상철이 엄마는 상철이가 부르는 소리에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껌을 빠르게 씹으며 문을 열었다.
"야, 너 뭐야."
한 손에 검은색 봉지를 들고 뒤돌아서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선배?"
"네가 왜 여기 있어."
영우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서울 가는 버스 대신 이곳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내가 예전에 살던 곳에 동생도 그대로 산다는 얘기를 듣고 기억을 더듬어 찾아왔다.
"1번 버스 종점이랑 가게, 여긴 하나도 안 변해서 금방 찾았어요."
내 라면 물에 그의 라면 물을 추가했다. 라면이끓는 동안 볼 것도 없는 작은 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좋아하는 배우?"
책상에 붙어 있는 브로마이드를 가리켰다.
"개가, 고등학교 때부터 감우성 팬이야."
"성씨가 특이하네."
물이 끓고카지노 가입 쿠폰에 수프를 넣는 내 모습을 그가 부엌 문턱에 걸터앉아지켜봤다.
동그란 스테인리스 상을 받아 든 그는 방으로 상을 옮겼다.
"특별히 우리 집, 닭이 낳은 유정란을 넣었으니 맛나게 먹어라."
라면 위에 달걀을 올려 주며 내가 한 젓가락 먼저 후루룩 빨아올렸다. 닭도 키우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유정란은 일반 달걀이랑 뭐가 다르냐는 질문까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작가라서 그런가? 나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듯이 설명했다.
"봐봐 얘는 마당에서 놀다가 수탉이랑 짝짓기 해서 만든 알이야. 양계장에서 나오는 알은 갇혀 있다 혼자 낳은 알이지. 모양은 같은 데 무정란이야. 그래서 어미 닭이 21일 동안 품어도 병아리가 안 나와. 그냥 썩어. 너는 지금 병아리 한 마리를 먹은 거야. 이런 거 생물 시간에 다 배웠는데."
나는 젓가락으로 라면 위에 달걀을 가리키며 친절하고 쉽게 설명했다. 그가 자연에 순리대로 만들어진 알이라고 말하며 노른자를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런 걸 다 기억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라면 국물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내 스타일이야.그래서 애들이 나한테 라면 못 끓이게 해."
물을 많이 넣어 심심한 카지노 가입 쿠폰에 시어 빠진 김장김치 하나였지만 내가 먹은 라면 중에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다.
"저 봉지는 뭐야?"
책상 위에 검은 봉지를 들여다봤다. 딸기 맛 요플레가 들어 있었다.
"너, 여기 처음 올 때도 요플레 사 왔었지? 내 동생 이제 맥주를 더 좋아해."
방문에 자물쇠를 걸고 열쇠는 비밀장소에 넣었다.
"온 김에 학교에 들렀다 갈까?"
그의 말이 반가워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어젯밤에 혼자 걸어오던 길을 둘이 걸었다. 예전 얘기를 하며 학교로 향했다. 집으로 안 가고 왜 여기로 왔냐는 질문은 생략했다.
"여기 벚꽃 피면 진짜 예쁜데."
박물관을 지나며 커다란 벚나무 가지가 하늘을 덮고 있는 모습을 바라봤다. 꽃이 피면 꽃은 하늘을 가리고 그 아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다.
"또 와요."
덤덤하게 대꾸하는 그의 말에 나는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벚꽃이 우리 눈에는 피고 있었다.
학교는 우리가 쓰던 강의실 옆으로 새로운 건물이 하나 생겼다. 입구에 기악실에서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렸고 테니스 코트에서 벽치기 하는 사람이 보였다. 대동제 때 예술대 학생회에서 깎았던 장승이 그대로 서 있었다.반가운 마음에 장승 몸을 한 번 훑었다. 커피믹스를 뽑아 식당 옆 벤치에 앉았다.
"커피는 학교 커피가 최고지."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가 별말 없이 멀리 보이는 강과 시내를 내려다봤다. 각자 기억하는 추억 속으로 잠시 떠났다. 어떤 추억과도 마주할 용기가 생긴 그를 보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기, 아직도 하나 봐."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가끔 갤러그를 했던 오락실이 보였다. 그가 반가워하며 한 번 들어가자고 했다. 초등학생들이 똑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속버스 시간에 맞춰 오락실을 나왔다.
"일해야지. 너무 놀았다."
버스에 앉자마자 그의 그림 통을 두드렸다. 그는 올 때와 같은 모습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너, 그림 그리는 모습이 좀 멋있어."
"그럼 손잡아도 돼요?"
그림을 그리느라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터미널에 내린 우리는 콩나물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가리는 음식이 없는 우리는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일이 없었다.
"이 달걀은 무정란이겠죠?"
콩나물국밥 위에 올라온 달걀을 보고 그가 웃었다.
"당연하지. 유정란은 많이 생산을 못 해서 비싸. 가게에서는 못 쓸걸?"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상가를 걸었다. 그가 인형 파는 가게 앞에 멈췄다. 나에게 묻지도 않고 돼지 인형 하나를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갈색 돼지 인형이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선배 돼지띠잖아요."
여자한테선물을 한 번 못 해봤다고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고마워, 귀엽네. 나는 쥐 인형을 선물할까?"
"아뇨, 저는 쥐를 젤 싫어해요."
작은 눈이 커지며 손사래까지 쳤다. 그 모습에 쥐 인형을 구해서 놀려야겠다는 나만의 계획이 생겼다.
그에게 받은 돼지 인형은 오른손에 들고왼손은 그의 손을 잡고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