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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작가 Apr 21. 2025

50대는 카지노 게임 찍으면 안 돼?

오늘의 내 얼굴과 친해지기

아침 출근 전 착장 샷을 찍고 나가려니 남편이 "또 카지노 게임 찍냐?"라고 한다. 카지노 게임 찍는 데 1분도 안 걸리는데 종종 이렇게 묻는다.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타박하는 말이다.


최근 들어 둘이 놀러 가서 예쁜 곳이 나오면 "나 여기 카지노 게임 찍어줘."라고 한다. 그러면 괜히 남편은 "왜?"라고 묻는다. 속으로 그냥 찍어줄 것이지, 이유는 왜 묻냐는 말 대신, "나 인플루언서잖아"라고 받아치면 남편은 어이없어한다.

맞다, 말하고 나서 나도 어이없긴 하다.내가 무슨 인플루언서냐고? 도서 분야 인플루언서다.그런데 책 카지노 게임은 찍지 않고 내 카지노 게임을 찍어댄다.


그래도 남편도 카지노 게임 찍는 재미가 붙었는지 이제는 "너 여기 서 봐" 하며 카지노 게임을 잘 찍어준다. 며칠 전 이태원 drift 전시 갔을 때 디젤 매장 앞에서도 그랬다. 배경이 빨개서 카지노 게임이 잘 나올 것 같다며 서 보란다. 신나서 냉큼 매장 앞으로 갔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까 봐 부끄러워서 순식간에 다섯 컷 정도 찍었는데 재밌었다. 야외나 놀러 간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서울 길거리에서 카지노 게임을 찍다니,그것도 이 나이에. 이전 같으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이다.


여전히 가끔 카지노 게임 찍어줘, 안 찍어줘로 옥신각신할 때가 있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장소를 남편이 별로라고 느낄 때면 티격태격이 시작된다. "네가 아직도 이십 대인 줄 아냐."라는 타박에 나는"그딴 말 따위 두렵지 않다, 나의 자존감은 아주 튼튼하다!"라고 당당히 응수한다. 그러면 남편은 한숨을 쉬며 "차분한 줄 알고 결혼했는데... 어휴"라고 하고, 나는 다시 "발랄함이 나의 매력이지."라고 맞받아친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카지노 게임을 찍어줄 때가 있다. 내가 이상한 표정 지을 때. 남편은 이렇게 모은 내 엽기 카지노 게임을 핸드폰 앨범에 따로 모으며 재밌어한다. 언젠가 이 카지노 게임들로 전시회라도 열 생각인가 보다.


사실 내 카지노 게임을 이렇게 많이 찍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여느 집처럼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아이 카지노 게임만 주구장창 찍다 보니, 정작 30대부터 40대 중반까지의 내 카지노 게임은 거의 없었다. 여행 가서 가족카지노 게임 찍을 때나 겨우 몇 장 찍었을까?


40대 중반쯤에 내 카지노 게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던 즈음, 어머니가 "나이 들어서 카지노 게임 찍기 싫어."라고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 예쁘신데 왜 그러세요~ 찍을래요~"라며 셔터를 눌렀다. 몇 년을 이랬더니 어머니도 이젠 포기하시며 포즈를 잡아주신다. 여전히 카지노 게임 찍기 싫다고 하셔도, 내 눈엔 늘 고우신 분이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주변 사람들도 "나도 언제부터인가 카지노 게임 찍히기 싫던데요, 나이 들어 보여서요."라고 한다.


하긴, 내 카지노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긴 하지만, 얼굴을 관찰하기보다는출근용으로화장하기 위한 캔버스 정도로만 여겼다. 카지노 게임 속의 내 모습은 거울과 느낌이 달랐다. '언제 이렇게 나이 들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때가 오늘'이라는, 이제는 식상한 말이 떠올랐다. '나이 들어 보이면 어때, 가장 젊은 오늘을 기록하자' 싶었다. 40대에 30대 카지노 게임이 없는 게 아쉬웠던 것처럼, 70대가 되었을 때 50대 카지노 게임이 없음을 아쉬워하지 않도록.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나이 든 내 얼굴과 적극적으로 친해지기로 했다. 지금부터 내 얼굴 보기 싫어하면 앞으로 더 그럴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40대 후반부터 놀러 갈 때마다 카지노 게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남편이 카지노 게임을 찍어주면 잘 찍는다고 엄지 척하며 칭찬해 줬더니 점점 곧잘 찍어주고 실력도 좋아진다. 마음에 속 드는예쁜 인생샷을 건질 때면 피사체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고 했더니 질색을 하며 "다시는 안 찍어준다."라고 협박을 한다.

그중 실물보다 잘 나온 카지노 게임만 골라 블로그에 올리며 뿌듯해 했다. 다들 그렇게 약간의 비양심(?)은 갖고 살지 않나?


덕분에 '지금까지 산 날 중 가장 나이 든 오늘''앞으로 살 날 중 가장 젊은 오늘'의 내 얼굴에 대해 매일매일 익숙해지고 있다.

카지노 게임을 남기면서 나이 듦을 더 잘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피곤한 날이면 눈 위꺼풀이 더 꺼지고 주름이 더 잘 보이지만, 그런 얼굴도 익숙해졌다. 내가 내 얼굴 보기 싫다고 안 보면 뭘 하나. 내 가족과 동료들은 매일 내 얼굴 실컷 보는데...

얼굴에 주름이 늘고 탄력이 떨어지는 걸 보면, 보이지 않는 신체 기능도 조금씩 노화되고 있겠지만, 팔순 어머니가 50대 카지노 게임을 보며 당신의 젊음을 느끼듯,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며 '그때 젊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카지노 게임을 찍는다.

이제, 카지노 게임은 나의 또 다른 기록이 되었다.


ps. 제일 쁜 카지노 게임은 뒷모습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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