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녀와 나는 정류장을 벗어나 조용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구석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선글라스를 낀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동자가 보이지는 않지만 내 얼굴을 포함해서 내 신체 구석구석 심지어 안에 있는 장기들과 신경 세포 하나하나까지 자세히 관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무언가를 잃어버렸네요. 설렘이 가득한 그 미소 앞에서 나는 당혹감과 상실감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맞아요. 잃어버린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나는 솔직하게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모두가 그래요.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 이상한 꿈을 꾸죠? 그 꿈에서 나오는 게 당신이 잃어버린 거예요. 그걸 찾게 되면 당신은 홀가분해질 거예요. 나는 내 꿈에서 봤던 검은 나무와 하얀 벌레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이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라면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그녀는 슬며시 왼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낚아채듯이 내 손목을 잡았다. 또다시 드러난 네 줄의 상흔들. 내 손목을 잡은 그녀의 하얀 손바닥에 파란 핏줄들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그것은 꿈에서 보았던 하얀 벌레처럼 거침없이 꿈틀대는 것 같았다. 벌레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내가 벌레라고 생각해요. 어떤 카지노 쿠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벌레들. 죽고 싶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불쌍한 벌레들. 세상의 수많은 벌레들 중에서 90퍼센트 이상이 자신의 천적들이나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거래요. 세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종족은 인간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인간만이 유일한 축복을 받은 거예요.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축복. 근데 당신 손목을 보니 당신도 나처럼 벌레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여운 벌레들.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있었다.
12.
어느 날 아버지는 늦은 오후에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숯덩이를 마당에 던져놓았다. 불에 그을려 털이 모두 빠진 개였다. 몽둥이로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모든 뼈가 다 으스러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털이 제거된 물렁물렁한 고깃 덩어리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목구멍에서 묵직한 것이 입 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천천히 내려갔다. 검게 타버린 개고기에서는 누린내와 피비린내가 뒤섞여서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카지노 쿠폰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머뭇거리며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아버지의 입에서도 고약한 술냄새가 풍겼다. 우물 안에는 여동생이 숨어있었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까지 숨바꼭질을 하려고 했던 참이었는데 술 취한 아버지가 일찍 들어오시는 바람에 카지노 쿠폰 못 찾겠다 꾀꼬리도 외치지 못하고 마당을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생이 우물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카지노 쿠폰 이 사태가 수습되면 동생을 직접 꺼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막걸리와 소주를 사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쥐어주며 한번 더 말했다. 빨리 갔다 와 이 새끼야. 카지노 쿠폰 아버지에게 맞을까 봐 무서워서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가게에 다녀오면 왕복으로 20분 정도 소요되니까 빨리 다녀와서 동생을 우물 안에서 꺼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리에 불이 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한 겨울에 땀이 날 정도로 뛰어서 카지노 쿠폰 아버지가 시킨 소주와 막걸리를 비닐봉지에 싸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마당에서는 악마의 흉물스러운 춤처럼 거대한 연기가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불길한 마음을 안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카지노 쿠폰 뱃속에서 둔탁한 것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카지노 쿠폰 웃었던가. 울었던가. 동생이 숨어있던 우물에서는 불길이 끓어댔고 아버지는 마당에서 김이 모락모락 카지노 쿠폰 개고기를 날이 둔해진 칼로 썰고 있었다. 개고기는 통째로 구워야 제맛이야.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은 불이 끓는 우물에서 꺼낸 개고기를 서슴없이 뜯어댔다. 그들의 입가에는 탐욕의 낙인처럼 불결한 흔적들이 묻어났다.그날 밤 아버지와 그들이 자고 있는 집에 카지노 쿠폰 불을 질렀다. 더러운 영혼들의비명은 화마에 점령당해 불타는 나무들과 무너지는 벽들이 질러대는 비명소리에 묻혀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카지노 쿠폰 그때 울었던가. 웃었던가.
13.
카지노 쿠폰의 유무를 다른 카지노 쿠폰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은 비극일까. 운명일까. 생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의 비극인 것일까. 생이 제시하는거대한 뫼비우스의 띠는 그녀가 말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에서 나를 제외시켰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했다. 손목을 그을 때마다 혼미해지는 정신에 어렴풋이 들려오던 동생의 목소리는 삶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결국 죽음이란 삶에 의해서 연기되고 삶은 죽음에 의해 충족되었다. 나 역시 카지노 쿠폰의 유무를 스스로 정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고 난 뒤 내 안에 빠져나갔던 것이 다시 차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주 앉아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나요? 그 사람에게서 무엇이 빠져나갔는지를.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재능이라고 해두죠. 그거 알아요? 우리 뱃속에는 벌레들이 산다는 거. 벌레들이 알을 배고 있는 것처럼요. 나는 그 사람 뱃속에 벌레가 사는지 안 사는지 눈에 보여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뱃속에 벌레가 사는 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내 팔목을 잡고 있는 그녀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벌레 뱃속에 다른 걸 키울 수는 없잖아요. 그녀의 악력 때문인지 내 손목의 상흔이 조금 더 뚜렷해졌다. 선명해진 상흔을 보자 맥박이 강렬하게 고동치며 알 수 없는 흥분이 내 몸을 장악해 나갔다.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그리고는 함께 식사를 하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우리는 어딘가로 발길을 향했다.
14.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식당의 홍어찜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온 음료 광고의 모델이 입을 법한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기묘할 정도로 큰 선글라스를 낀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지만 나는 그녀를 따라 그녀가 알고 있는 식당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한참 골목을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단층짜리 건물에 엉성한 간판을 달아놓은 허름하게 지어진 노포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으로 보이는 40대 초반의여자가 홍어를 손질하고 있었고 식당에는 노랑가오리가 삭는 냄새가 진동했다.우리는 구석 자리에 앉은 다음 홍어찜을 주문했다. 40대 주인은 퉁명스럽게 네라고 대답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왜 홍어찜이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가 답했다. 냄새가 흥미롭다고 해야 되나? 상하거나죽어가는 냄새랑은 달라요. 분명히 살아있는 냄새예요. 이미 죽어버린 몸을 썩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 살을 삭히잖아요. 발효의 냄새. 쓸쓸해서 고함치는 냄새 같아요.풉. 재미있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허름한 가게를 이상한 눈초리로 구경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식당 안의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때문에 아주 조용했다. 아무 말 없이 상대방의 얼굴만 본다는 행위에는 생각보다 시차와 길항이 카지노 쿠폰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행위에 익숙한 사람처럼 꽤 집중했고 한동안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우리를 감싸던 정적을 깬 것은 주인이었다. 주방에서 나오며 금속성의 식기가 덜거덕 하는 소리에 우리는 최면에서 풀린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주인은 식탁에 홍어찜을 내놓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15.
우리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 조리했는지는 몰라도 홍어 살은 야들야들하게 아주 잘 익어있었다. 부드러운 하얀 속살이 혀 끝에 닿는 순간 톡 쏘는 홍어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향은 역하지 않았고 식감이 부드러워서 입에 아주 잘 맞았다. 오랜만에 뱃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을 모두 비운 후에 우리는 다시 서로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빈 접시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얼마간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구석에서 TV를 보던 주인여자는 우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플라스틱 파리채로 파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 값은 그녀가 계산을 했다. 식당을 나오자 더운 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우리는 또 한마디의 말도 없이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걷자 길게 이어진 하천이 나왔다. 우리는 그 하천을 따라 걸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정했고 미지근한 바람은 이름 없는 들꽃들을 흔들어댔다. 소살소살 흐르는 하천의 수면의 결을 풀내음을 머금은 미풍이 반대로 더듬으며 흐느낄 때 나는 뱃속에서 둔탁한 것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곧 식도를 타고 역류해서 입 밖으로 쏟아질 기세였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하천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속에서 올라온 모든 것들을 토해냈다. 천천히 흐르는 물속에서 토사물들이 씻겨 내려갔다. 방금 전 먹은 하얀 생선의 살점들이 물속에서 춤을 추었다. 나는 계속 토했다.양이 많아진 토사물은 한 곳에 고이기 시작했다. 한 곳에 고인 토사물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수면 위로 나와 숨을 쉬려는 듯 거세게 움직였다. 나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얀 벌레들. 꿈속에서 보았던 하얗고 번들거리는 벌레들과 닮아 있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게 꿈틀거렸다. 나는 내 속에서 튀어나온 그 하얀 벌레들을 보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흔들거리는 수면에 선글라스를 낀 그녀가 비쳤다. 그녀는 하얀 벌레를 보았고 미소를 지었다. 하얗고 투명한 수면에 비친 그녀를 보고 나도 미소를 지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