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도시락을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한 딸에게 여전히 미련이 남았다.
아침 일곱시도 되기 전 어두운 시간에 집을 나서는 딸이 아침도 굶는데 점심까지 대충 때우면...
도시락은 아니더라도 출근해서 먹을 아침 간식이라도 든든하게 챙겨 줄까?
나의 도시락 집착이 또 스멀스멀 담배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도시락을 싸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망각하고 자꾸 원점으로 돌아가려고 말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예쁜 밀폐용기가 눈에 보일 때면, 딸의 도시락통으로 쓰려고 충동구매 했었다.
싱크대 맨 위칸에 옹기종기 쌓여 있는 도시락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써보지 않은 도시락도 있는데...
집 떠난 자식의 손때 묻은 물건을 보듯 애틋한 마음으로 도시락통을 올려다봤다.
2남 4녀 중 나는 유별나게 무료 카지노 게임의 감정에 이입이 됐다.
무료 카지노 게임가 나고, 내가 무료 카지노 게임인 것처럼.
유년기 때 기억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는 항상 바쁘고 피곤했으며, 감기라도 걸리는 날이면 심하게 앓아 누웠다.
몸이 허약한 무료 카지노 게임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었다.
늦게 퇴근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가 힘들지 않게 집안일을 깔끔하게 해 놓고, 다음날 아침밥 지을 쌀까지 씻어 놓으면 나의 하루 일과가 끝났다.
그런데도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말소리가 들리면, 뭘 또 잘못해서 무료 카지노 게임가 잔소리를 하시나 하며 바짝 긴장했다.
이따금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늦게 집에 오는 날에는 허둥대며 정신없이 집안을 치웠다.
그러나 그런 날은 여지없이 뭔가를 빠뜨려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걸렸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목청을 높여 잔소리를 하며 화내셨고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한테 너무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방학 때마다 집에 와서 성적표를 보고 매타작 하는 아버지 때문이었다면, 집안일은 무료 카지노 게임의 편안한 얼굴을 보기 위한 바람 때문이었다.
집안일을 깨끗이 해 놓았다고 해도 칭찬을 한 적은 없었기에 집안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반면 동생은 무료 카지노 게임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았다.
'어쩌다가 집안일을 안 해 놓으면 무료 카지노 게임가 불같이 화를 냈는데, 그게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했지.'
집안일을 하는 이유가 나와는 정 반대였던 것이다.
집안일은 원래 무료 카지노 게임가 하는 것인데, 자식들이 해주면 고마운 것이지 그게 의무는 아니지 않냐고 했다.
지금도 누구보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돕고 있는 동생이지만, 가끔 과거에 대한 원망을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쏟아 놓는다.
뿐만 아니라 무료 카지노 게임는 과거의 고생에 비해 지금 누리는 것이 훨씬 많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생 나름대로 상처가 있으니 그러겠지만 가끔은 상처만 기억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입장을 이해하며 무료 카지노 게임의 즐거움이 곧 나의 즐거움이라고 여겼던 것이, 무료 카지노 게임와 감정적으로 분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가르치지 않았는데 딸에게서 나의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때 '무료 카지노 게임가 만일 죽어야 한다면 내가 대신 죽을 거야'라는 딸의 말을 웃어넘겨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딸은 공부는 물론이고 무슨 일이든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칭찬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일상생활 중에도 그런 모습은 어디서든 드러났다.
초등학교 때 학용품을 사고 남은 거스름돈 몇백 원을 쓰고 나서 나에게 거스름돈이 없다고 거짓말한 적이 있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딸 믿어'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말하고 말았는데, 조금 있다가엉엉 울며 주방으로 와서 잘못을 빌었다.
뭘 그렇게까지 우냐며 괜찮다고 했는데 그 때 딸은 앞으로 절대 무료 카지노 게임를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를 속여서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거짓말하는 딸'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니, 초등학생치고는 너무 심오해서 내가 어지간히 가스라이팅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남편의 지갑에 여러 번 손을 대고도 눈하나 꿈쩍 하지 않던 아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무책임한 남편대신 가장역할을 하던 나는 아이들에게 '무료 카지노 게임가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며 절대복종을 요구했다.
아들은 앞에서는 말들 듣는 척하면서 뒤로는 할 일을 다 하고 다녔다.
딸은 제멋대로 했던 남동생에게 '무료 카지노 게임한테 개기는 너의 용기는 어디서 나오냐'며 부러워했다.
딸이 내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것의 심각성을 알고 나서, 마음의 건강을 위해 감정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드러내라고 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반항을 해도, 대들어도 다 받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감당할 그릇이 되지 못했었다.
오래전 딸과 나 사이에 있던 '물컵사건'을 잠시 이야기해보려 한다.
한가한 휴일 낮에 식탁에 마주 앉아 기분 좋게 대화를 시작했는데, 서로 의견이 달라 언성이 좀 높아졌다.(대화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딸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이야기했고, 나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딸의 반응에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언어적 무력으로 딸을 제압하려 했으나 딸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고, 그런 딸의 표정을 보며 분노를 느꼈다.
나의 전두엽이 고장이 나버렸는지 들고 있던 물컵으로 딸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 말았다.
드라마에나 있을법한 행동에 딸은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고, 글썽이는 눈물을 참느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물 뿌렸던 내 행동을 뉘우치기는커녕 그런 딸의 모습을 처음 본 터라, 지금 물러나면 부모로서 권위가 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딜 째려봐. 눈 똑바로 안 떠!'
둘 다 한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채로 팽팽하게 대립하다가 내가 먼저 일어서 안방으로 갔다.
분해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통곡했다.
딸이 듣고 들어와서 사과라도 하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딸도 그때는 정신적인 성장통을 겪던 시기였는지 절대 굽히지 않았다.
딸은 그 일 이후 내가 싸주는 도시락도 가져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집에서 한 끼도 먹지 않았다.
그 당시 몇 개월 쉬다가 직장에 들어간 상태라, 가진 돈도 별로 없었을 텐데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에 냉전 중에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서너 주를 그렇게 보내는 동안 나는 지옥을 살았다.
밥도 밥이지만 도시락을 거부한 딸에 대해 처음에는 괘씸한 마음이 들며, '그래.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했는데 두고 간 도시락을 보는 내가 더 버티기 힘들었다.
자식에게 (도시락으로) 거절당한 느낌이 친구나 직장에서의 거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결국 내가 먼저 딸에게 손을 내밀었다.
냉전의 시간이 길어지면 어색해서 사과도 못할 것 같았고 그러면 딸과 정말 멀어질 것 같았다.
무료 카지노 게임 자격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끊임없이 깨닫고 뉘우치며 배워가는 무료 카지노 게임 훈련만 있을 뿐이지.
딸에게 사과하니 딸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화해 후 그동안 점심을 어떻게 해결했냐고 물었다.
편의점 컵라면으로 대충 먹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다.
그다음 날부터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더 정성껏 도시락을 쌌다.
그동안 싸가지 않았던 도시락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나의 모든 요리기술과 아이디어의 총 집합체가 되어 날마다 깜짝 놀랄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래봤자 여느 때와 같은 한 끼 도시락이지만 나의 마음이 그랬다는 얘기다.
잃었던 자식을 다시 찾은 것처럼 기쁘고 활기찬 날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물컵사건 후 있던 냉전의 기간은 딸과 나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만이 있어도 참고 넘어가는 딸의 지나친 회피성향이 적어도 나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다.
나에게 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딸의 불평을 조금씩 들어주기 시작했다.
나에게 대드는 것을 마치 반역이라도 하는 것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던 예전의 모습은 과거의 역사로 남겨두고, 말랑말랑한 무료 카지노 게임가 되기로 했다.
아무 죄 없는 도시락이 천덕꾸러기가 되었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