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폭로2
chapter11. Disclosure(Putin's Troll)
푸틴의 트롤 공장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네바 강가에 늘어선 낡은 공업지대. 겨울 서리가 하얗게 덮인 그곳에는 겉보기엔 평범한 회색 건물 하나가 서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조용한 정보 전쟁의 최전선이었다.
도로 건너편, 금발의 젊은 여성이 커다란 스카프를 둘러쓰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제시카 아로(Jessikka Aro). 핀란드 공영방송(Yle)의 탐사보도 기자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러시아 트롤 부대의 정체를 파헤쳐 왔고, 이번에는 직접 이들의 심장부에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건물 안, 침묵을 깨는 것은 끊임없이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뿐. 수백 대의 컴퓨터 앞에 앉은 젊은이들은 하루에도 수천 개의 댓글과 가짜 뉴스를 양산해냈다. 이들은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nternet Research Agency, IRA) — 서방 세계가 '푸틴의 트롤 공장(Putin's Troll Factory)'이라 부르는 조직의 일원들이었다.
겉으로는 민간 기업처럼 포장됐지만, 이들은 크렘린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임무는 단순했다. 거짓 정보를 뿌리고, 미국과 유럽 사회를 분열시키며,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차디찬 공기를 가르며, 아로는 건물 근처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핀란드 외교부를 통해 제공받은 극비 제보와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곳까지 찾아왔다. 그녀는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과 핀란드 내 반러 소식통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했고, 온라인 상에서는 트롤 계정들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그녀는 서툰 러시아어로 주변 현지인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IRA 요원들의 출입 패턴을 파악했다. 가끔은 익명의 조력자들이 건물 출입자들의 사진을 몰래 찍어 전달해주기도 했다. 아로는 이 데이터를 수집해 비교 분석하고, 출입자 중 일부와 비공식 인터뷰를 시도했다.
카페 한쪽 구석, 낡은 소파에 앉은 아로는 노트북을 켜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그녀는 디지털 감시 장비를 사용해 특정 IP 대역에서 퍼져나오는 게시물들을 모니터링했다. 트위터, VKontakte(러시아 소셜 미디어), 그리고 가짜 페이스북 계정들. 가짜 뉴스가 어떻게 생성되고 확산되는지, 그 물줄기를 쫓았다.
며칠간의 감시 끝에, 아로는 결정적 장면을 목격무료 카지노 게임. 검은 재킷을 입은 남성들이 교대 시간에 맞춰 건물로 들어갔다가, 수 시간 뒤 다시 빠져나오는 광경. 그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쥔 채였고, 긴밀하게 무언가를 교환무료 카지노 게임. 결국 전직 트롤 요원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그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글을 작성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긴장된 손끝무료 카지노 게임 노트북을 닫았다. 카페 창밖, 회색 건물은 묵묵히 겨울 안개 속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건물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디지털 파도는 이미 지구 반대편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모든 작업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아로는 러시아 정보기관의 표적이 되었고, 그녀의 가족까지 협박을 받았고 본인은 살해협박까지 받아야 했다. 줄리안 어산지는 그저 시작일 뿐이였다. 보이지 않는 전쟁, 온라인에서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Jessikka Aro오데사의 비극
2014년 2월, 크림반도. 아직 겨울 냄새가 가시지 않은 이 땅에 정체불명의 군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군복을 입었지만 어떤 계급장도, 소속 부대 표기도 없었다. 이들은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약 20,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주요 정부 청사, 공항, 방송국, 군 기지를 동시에 점거했다. 교전은 거의 없었다.
우크라이나 군은 혼란에 빠졌고, 키예프 중앙정부는 야누코비치 축출 직후 정치적 공백 상태에 있었기에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했다. 몇몇 소규모 우크라이나 수비대가 저항했지만, 압도적인 화력과 기습적 작전 앞에 곧 제압되거나 무장해제당했다.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는 러시아계 민병대의 압박 속에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했고, 러시아와의 합병을 요구하는 국민투표를 추진하게 되었다.
크림반도는 사실상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러시아 손에 넘어간 것이었다.
크림반도 합병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작전이었다. 현지 러시아계 민병대와 긴밀한 교감을 통해 계획이 수립되었고, 러시아 정규군과 정보기관이 이를 주도했다. 이 작전의 성공은 이후 러시아가 비공식 전력으로 활용할 용병 부대, 즉 바그너 그룹(Wagner Group)의 창설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비밀 용병조직의 배후에는 푸틴의 오랜 측근이자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이 있었다.
바그너 그룹은 단순한 용병 집단이 아니었다. 바그너란 이름은 히틀러가 가장 선호했던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에서 따온 것으로,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네오 나치 분자들과 극우 민병대 출신들을 끌어모아 비공식 군사조직을 구축무료 카지노 게임. 이들은 정규군처럼 훈련받았지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 부대였다.
크림반도를 장악한 이듬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또 다른 불길이 피어올랐다. 돈바스(Donbas) 지역. 오렌지 혁명(Orange Revolution)으로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대통령이 몰락하고 러시아로 도피한 뒤, 우크라이나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야누코비치는 무자비하게 반정부 시위를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약 100여 명에 달하는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야누코비치 정권의 폭력적 진압과 학살로 인해 우크라이나 내 반러시아 정서는 극에 달했다.
2014년 5월 2일, 오데사(Odessa)에서 운명을 가르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날 오후 2시경, 로컬 축구팀 '추르노모레츠 오데사(Chornomorets Odessa)'의 경기 직후, 천오백 명의 훌리건들이 광장무료 카지노 게임 몰려나왔다. 그들은 친정부 시위대와 함께 '국가 단결을 위한 행진'을 진행무료 카지노 게임.
"우크라이나를 지켜라!" "오데사는 우리 것이다!"
초기 충돌은 고함과 몸싸움으로 시작됐다. 이 때 갑자기 버스에서 일단의 무리가 내리면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시위대를 습격무료 카지노 게임. 분리주의자들은 외쳤다.
"러시아가 우리를 구할 것이다!"
난투극에 혼전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타당! 드르륵!"
"총이다! 엎드려!" 누군가 절규무료 카지노 게임.
친러 분리주의자 쪽 일부가 권총과 자동소총을 꺼내들고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무료 카지노 게임. 두 명이 즉사하고, 여러 명이 쓰러졌다.
분노에 휩싸인 훌리건들과 시민들은 소리쳤다.
"저 놈들이다. 잡아라!"
광장은 일순간 생지옥이 되었고, 분리주의자들은 쫓기듯 노동조합 본부로 달아났다.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이 도심을 가로질러 벌어졌고, 분리주의자들은 결국 오데사 노동조합 본부 건물로 몸을 숨겼다.
분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노동조합 건물 주변으로 몰려든 군중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기 시작했고, 건물 안에서도 분리주의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무료 카지노 게임. 불길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내부에 갇힌 수십 명의 분리주의자들이 질식하거나 불길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공식 집계로 최소 42명이 사망무료 카지노 게임.
이 끔찍한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분노는 더 큰 갈등무료 카지노 게임 번졌고, 돈바스(Donbas)에서는 분리주의자들과의 전면적 충돌이 시작되었다. 돈바스 내전의 시작이였다. 그러나 이 갈등은 단순한 우발적 충돌이 아니었다. 철저히 러시아의 인지전 전략에 따라 설계된 것이었다.
러시아 특수부대, 정보요원, 그리고 이 날을 위해 준비된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우크라이나인으로 위장하여 지역사회에 침투했고, 갈등을 조종하며 내전을 폭발시켰다. 이 일은 훗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의 명분인 탈 나치화란 프로파간다로도 사용된다.
프리고진은 단순한 용병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는 푸틴의 가장 더러운 작전을 실행하는 해결사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본진을 둔 그는, 지상 작전뿐만 아니라 디지털 전쟁에도 손을 뻗쳤다.
그가 움직이는 또 다른 부대, 바로 '푸틴의 트롤 부대'였다.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를 비롯해, 러시아 정보기관(GRU, SVR, FSB), 전략문화재단(Strategic Culture Foundation) 같은 싱크탱크, 그리고 러시아 국영 매체 RT(Russia Today), 스푸트니크(Sputnik) 등 미디어 전위부대가 이를 지원했다.
구 소련 시절의 첩보전술이 고스란히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옛 KGB 장교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 있었다.
군사, 정보, 심리전, 사이버 공격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전쟁, 그것이 바로 러시아식 하이브리드 전쟁이었다. 제시카 아로는 그런 상대를 상대로 홀로 진실의 전쟁을 선포했다. 줄리언 어산지와 제시카 아로의 폭로는 모두 진실을 위함이였다고 말했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보이지 않는 전염
런던 BBC 방송국, 제시카 아로(Jessikka Aro)는 검은색 코트를 여미고, 『HARDtalk』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무거운 공기가 스튜디오를 채웠다. 촬영 준비가 끝나자, 앵커가 차분하게 소개를 시작무료 카지노 게임.
"오늘,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보이지 않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핀란드 기자 제시카 아로가, 러시아 정보전과 세계적 음모론 확산의 실태를 증언합니다."
카메라가 그녀를 비췄다.
제시카는 마이크를 고쳐 단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경험한 것은 단순한 트롤링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무료 카지노 게임.
"러시아의 트롤 공장 — 공식적으로는 'Internet Research Agency'로 알려진 이 조직은, 온라인에서 선동과 조작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핀란드, 발트 3국, 유럽을 넘어, 미국 대선, 브렉시트, 그리고 QAnon 음모론 확산에도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앵커가 질문을 던졌다.
"QAnon과 러시아가 실제로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제시카는 망설임 없이 대답무료 카지노 게임.
"예. 러시아 국영 미디어인 RT(Russia Today), 그리고 Sputnik은 2020년을 전후해 QAnon 관련 보도를 집중적으로 확대했습니다. 이들은 QAnon의 내러티브를 무비판적으로 확산시키며, 미국 내 불신과 혼란을 의도적으로 증폭시켰습니다."
제시카는 손에 쥔 자료를 들어 보였다.
"이는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명백한 심리전(Information Warfare)의 일환입니다. 목표는 하나. 민주주의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것입니다."
스튜디오는 조용무료 카지노 게임.
카메라만이 미세한 기계음무료 카지노 게임 돌아가고 있었다.
제시카 아로의 이 같은 주장은, 미국 빅데이터 분석업체 Graphika의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되었다.
QAnon 네트워크는 2018년 이후 구조적으로 '고도로 응집된 에코 챔버'를 형성했으며, 팬데믹 기간 중(2020년), QAnon 관련 계정의 활동은 코로나19와 연계된 키워드와 함께 급격히 확산되었다. 특히, 러시아 국영 언론들이 QAnon 서사를 반복 인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 정치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방식이 명확히 확인되었다.
Graphika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0년 중반까지, QAnon 음모론을 확산시킨 다수의 가짜 계정들의 IP 발원지가 주로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에서 확인되었다. (출처: Graphika, Interpreting Social Qs, 2020)
특히 2020년 1월~6월 사이, QAnon 해시태그(#WWG1WGA, #SaveTheChildren 등)를 집중적으로 퍼뜨린 계정 중 약 30% 이상이 비정상적 트래픽 패턴을 보였으며, 그 서버 위치 추적 결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에서 통신 신호가 시작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Graphika는 이 같은 활동을 "coordinated inauthentic behavior" (조직적인 비진성 행동) 이라 정의하고, 이는 자연발생적 이용자가 아닌 조작 집단(operatives)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는 곧, QAnon 음모론의 상당 부분이 '자생적'이라기보다 외부 조작 세력에 의해 증폭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증명한 것이다. Graphika 보고서는 냉정히 결론지었다.
"QAnon은 단순한 신념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전장에서 투입된 하나의 무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