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규
오늘의 시 한 편 (63).
카지노 게임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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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규
정학과 실직을 동시에 치르고도 카지노 게임은 온다
터진 수도관에서 녹물이 흐르고 장롱 뒤 도배된 신문지로
곰팡이가 번지다 못해 썩어들어간다 기름때 찌든 환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습기가 자욱하다
깨진 유리병 옆에 버려둔 감자마저 싹을 흘리고 있다 벌
겋게 익은 등 근육 위로 욕설을 할퀴고 가슴팍에 고개를 파
묻다가
마주 보던 사람이 떠올라서
밀린 급여라도 받기 위해 진종일 공사판 주변을 어슬렁거
린다 전신주에 기대앉아 신발 밑창으로 흙바닥의 침을 짓이
기고 불씨 죽은 드럼통이나 해진 목장갑만 물끄러미 들여다
보기도 한다
숨이 차도록
구름이 낮다
신입생 시절 교정에 벽보를 바르던 선배들은 하나같이 폭
우를 맞은 표정이었다 화난 얼굴로 외치는 시대와 사랑이
고깃집이나 당구장에 널려 있었고 나는 무단횡단할 때보다
용기가 없었다
후미진 신록 아래 돌아가는 전축에서 이 지상에 없는 청
년이 무심히 젊음을 노래하는데 장송곡을 닮은 우리에게
카지노 게임 바람이 불어와 카지노 게임을 실어가고 있었다
이제 홀로 뒷골목에 남아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왜 비가 그쳐도 우리의 카지노 게임은 끝나지 않는가 중얼거
리며
멍하니 올려다본다
빚을 남긴 동창의 부음을 들은 것처럼, 낙향한 주검을 눕
혀두고 어색하게 염을 지키던 친구들처럼, 흰 봉투와 갈라
터진 입술의 피와 편육 그리고 아스팔트 위 꺼뜨린 담뱃불
처럼
연풍에도 쉬이 스러지는 밤 그늘이었다
너무 오래 비가 왔다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숨이 차도록 구름이 낮다
(아직도 시대는 비가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까지도 먹구름이 끼어서 숨이 찰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긴,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시대이니 기나긴 카지노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숨 막히는 청춘을 보낸 그들의 여름이 눈물겹다. 우리 앞에 펼쳐진 올여름도 이어지는 긴 카지노 게임은 아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