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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9. 2025

카지노 쿠폰(11:14-32)

왜 타인을 카지노 쿠폰하는가?

예수가 사람을 말 못 하게 만드는 귀신을 쫓아냈다. 이에 말 못 하던 사람이 말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다 놀라워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의 능력이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 따져볼 징표를 내놓아보라고 떠들었다.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지고,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귀신과 귀신이 싸운다면 결국 귀신의 세력은 멸망하게 다. 그러니 바알세불이 생각이 있다면 같은 귀신끼리 분쟁하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왜 예수가 선한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예수를 모함하였을까? 예수가그들의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다. 그들은 예수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자신들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걸 경계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를 죽일 모의를 하기까지 했었다. 즉 그들은 예수를 견제하기 위해 예수를 악마로 몰아갔던것이다.


사람은 카지노 쿠폰와화해할 필요가 없다. 악마는 뿌리쳐야 할 대상이고, 제거의 대상이다. 그러니 타인을 악마화한다는 건 타인과 화해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들에게 예수는 비판의 대상을 넘어 제거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선행이 선하지 않은 의도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였다. 착한 일을 해도 착한척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타인을 악마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사람, 사람대접해 줄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렇게 악마화에 성공하면, 사람을 모욕하고 함부로 대하며 폭력을 행하는 일들은 정당화되기 시작한다. 사람이 아닌 악마에게 저지르는 악행은 더 이상 악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타인을 악마화하며 사는 것일까? 예를 들어 타인에게 폭력을 행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그 폭력행위를 본다면 그를 비난할 것이다. 그 비난은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들의 비난 대상이 되면 그는 사회적 지위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카지노 쿠폰이다. 내가 폭력을 행하는 그 대상이 악마가 된다면, 나를 향하던 사람들의 비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내가 폭력을 행하는 대상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사람들에게 설득하면,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피해자에게로 돌리고 만다.


그러니까 결국 사람은 살기 위해 자기의 악행을 정당화시키려 하고 타인을 악마화한다. 아담은 살기 위해 하와를 악마화했다. 특정 집단의 잘못으로 나라에 위기가 닥쳤다고 단정 짓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악마화가 시작되면 웬만해선 비난을 멈출 재간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기 위해 서로를 카지노 쿠폰하고 공격하고 비난한다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지고,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사탄도 생각이 있다면 스스로 분쟁하지 않는 법인데 사람은 살기 위해 스스로 분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어리석은 싸움을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을까? 더 강한 존재가 나타나 악을 굴복시킬 때 분쟁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더 강한 존재가억누르는 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가 말하는 큰 능력은 세상의 권력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예수는 집단과 지위가 주는 힘이 아닌 어떤 집단에 소속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힘이 진짜 능력이라고 보았다. 강한 바람이 아닌 따스한 햇살이 나그네의 옷을 벗겼듯이, 억누르는 힘이 아닌 사랑의 힘이 악을 제압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말에 감격한 한 여인이 말했다. "선생님을 가졌던 배와 선생님을 젖 먹인 그 가슴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야말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힘에 압도된 카지노 쿠폰은 그 사람의 편이 되고 싶어 한다. 그 사람하고만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나의 세력이 형성된다. 결국 집단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유지된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은 집단 내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이다. 세력과 세력이 화해를 이루고, 집단과 집단이 평화를 노래하는 힘이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 그 화해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마리아인이기 때문에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유대인이라 사랑받는 게 아니다. 그저 신의 사랑이 있어야 하는 자라면 예수의 사랑을 받게 된다. 치유와 화해는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해도 여전히 집단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사랑으로 풍성한 공동체여도 집단 내의 사랑에만 머무는 것이라면 결국 분쟁하게 될 것이다. 악한 영이 잠시 나갔다가 일곱 친구를 데리고 다시 그 집단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사랑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누군가를 카지노 쿠폰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탄에게 빌미를 주게 된다. 사탄의 장난에 휘둘리지 않고 싶다면 신의 사랑을 닮아야 한다. 더 큰 능력은 울타리를 초월한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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