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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1. 2025

카지노 게임의 시급성(11:1-13)

카지노 게임와 용서는 친절한 태도로 나타난다

차별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쉬운 일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생각보다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기적이고 답답하고 짜증스럽다. 사랑스럽기보다 혐오스러운 존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감정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또 먹고 싶은 생각이 떠오르는 건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스러움이 있어야 좋은 감정이 싹튼다. 이 감정을 노력으로 바꿀 수 있을까? 맛없는 음식을 노력하면 맛있게 느낄 수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는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무시한 채 친절하다면 위선이 아닐까? 도무지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친절을 베풀라는 걸까?


드라마를 보다 보면 호감이 가는 캐릭터가 있지만,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좋아하지 않던 캐릭터에 대한 감정에 변화가 일어날 때가 있다. 생각지 못한 멋진 모습을 발견하게 되거나, 캐릭터의 아픔을 카지노 게임하게 될 때가 바로 그렇다.


그런데 만약 드라마를 계속 보지 않고 한 편만 보고 말았다면 어땠을까?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는 계속 좋아할 수 없는 존재로 남게 되었을 테다. 왜 그럴까?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만 캐릭터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혐오의 감정을 가진다는 건, 자기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일이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그러기 때문에 예수는 사랑을 위해 판단을 멈추라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판단을 멈춘다고 좋은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좋은 감정이 생기려면 드라마를 계속 보는 수밖에는 없다. 캐릭터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 보면 캐릭터의 삶을 카지노 게임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가 바로 좋은 감정이 싹트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감정만 가지고 사랑을 말할 수는 없다. 사랑에는 카지노 게임가 필요하다. 카지노 게임해야 부정적인 감정도 가라앉을 수 있고, 좋은 감정도 자랄 수 있다. 그렇다면 타인을 카지노 게임하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카지노 게임할 수 있다. 카지노 게임는 자연스러움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되지 않는 수학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듯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내면 카지노 게임를 앞당길 수 있다.


그러면 왜 카지노 게임가 필요한 것일까? 왜 힘을 들여 타인을 카지노 게임해야 할까? 서로 카지노 게임하지 못하는 관계가 지옥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도저히 카지노 게임할 수 없지만 갈라설 수도 없는 누군가와 공존한다는 건 비극이다. 카지노 게임가 없는 가정, 회사, 학교를 상상해 본다면 어떤가? 카지노 게임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다.


이에 예수가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라.서로를 카지노 게임하고 용서하기를 구하라." 서로를 카지노 게임하고 앙금과 화를 가라앉혀야 천국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을 카지노 게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도저히 카지노 게임되지 않는 행동도 있다. 태도를 바꾸는 일도 쉽지 않다. 오랜 시간 굳어진 습관을 바꾸는 일처럼 오래된 태도를 바꾸는 것도 힘든 일이다. 또한 판단과 정죄를 멈추고 친절해지는 건 참 민망한 일이기도 하다. 자존심이 카지노 게임를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면 어떨까? 예수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오랜 친구가 밤중에 찾아왔다. 그런데 대접할 음식이 없다. 이에 친구는 다른 친구의 집에 가서 빵을 좀 꾸어오려고 한다. 그러나 친구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 당시 이스라엘 가옥구조를 생각해 보면 잠자리에 든 친구가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음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일 층에는 짐승을 키웠고, 복 층과 같은 이 층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 공간에서 온 식구가 함께 잠을 잔다. 해졌고 밤은 어두우며 사람들은 잠들었다. 친구가 일어나 빵을 챙기려면 식구를 깨우게 되었을 테다.


그러나 방문한 친구는계속 문을 두드렸고 친구를 부르는 소리는 고요를 깨뜨렸다. 친구보다 가족이 가족보다 이웃이 먼저 잠에서 깰지도 모르는 일이다. 귀가 밝은 짐승이 울기 시작할 수도 있다. 친구가 얼른 나오지 않으면 민폐가 될 수 있다. 특히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체면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었기에 이런 일은 손가락질받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계속 두드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 곧 명분이 있어야 한다. 여행 중 찾아온 친구를 지금 대접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다.


카지노 게임는 이토록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체면을 따지고 자존심을 부릴 게 아니다. 카지노 게임 없이 어떻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 불가하다. 불편한 공존을 지속하든지 공존을 끝내야 한다.공존을 끝내기로 했다면 혼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혼자 사는 나라가 아니다. 혼자서는 천국을 누릴 수 없다.


그러니 뻔뻔하더라도 카지노 게임하고 용서하며 태도를 바꿔야 한다. 민망해서 하기 어렵든지, 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상처가 깊다고 해도 카지노 게임가 필요하다. 도저히 카지노 게임할 수 없는 행동이라면 사람이 얼마나 추악한지라도 카지노 게임해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해야 한다.그래야 넘어가 진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가라앉는다.


예수가 묻는다. "악한 사람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 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겠습니까?"


당장에 쓴 약이라도 결국 나에게 좋은 것을 택해야 한다. 카지노 게임와 용서는하나님 나라에한 걸음 다가서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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