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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Feb 16. 2025

징조

모든 걸 잊은 채 곧장 회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찍 출근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회사는 고요했고, 나름의 으스스함이 저변에 깔려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정리를 했다. 책 출간과 회사 일, 그리고 나의 눈. 세 가지를 어떻게든 잘 조율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출판사 앞에 달린 세 굴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뜻하는 바가 무엇이든 지금 나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굴레 하나, 실명. 굴레 둘, 늦게 이룬 꿈. 굴레 셋, 상실. 사실 세 번째 굴레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상실로 끝내고는 싶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를 가슴에 새기며, 가져온 USB를 컴퓨터에 꽂아 [식물인간]의 중간 단락을 읽어 보았다. 사실 잊힌 부분이 있을 거라는 말을 서연에게 들었었지만, 도입부부터 결말까지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없었다. 모두가 기억났다. 글을 읽다 보니 썩 괜찮게 쓴 듯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헐벗은 여인이 물을 뿜어 올리고 있는 정원 중심부의 분수대. 분수대를 기점으로 양옆에는 조각상들이 줄지어 궁의 계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동양적인 형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 대부분은 무슨 신화에나 나올 법한 뻔한 자태를 띠고 있었다. 그래도 그중엔 사람들이 애틋하다고 여길 만한 작품 하나 정도는 존재했다. 남녀 한 쌍의 조각상. 명이 다한 듯 팔을 바닥에 힘없이 떨궈 있는 여자를 남자가 자신의 한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양손으로 그녀의 머리와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어 눈을 감아 버린 남자의 모습은 가히 극한이었다. 아무런 날 구경키엔 슬픈 조각상이었다.’


이 편집장과 서연 씨는 이런 문장을 건지고 싶은 것일 테지. 카지노 게임 추천 이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극한이라는 표현이 과해 보였지만, 당장에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뒤로도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카지노 게임 추천 필요하지 않은 가지들을 잘라 나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들이 상당했다. 이런 소설을 투고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때는 그랬다. 카지노 게임 추천 글에 있어 어느 정도 재능이 있고, 내가 쓰는 문장 하나하나가 외국 고전에 버금가는 글귀라고. 한 시간 하고 절반을 집중해서 글을 읽었다. 창밖으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때마침 소설에서도 동이 트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수정본을 저장한 뒤, USB를 가죽가방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의자에 몸을 기대어 한숨을 뿜어 보았다. 그리고 여러 번의 고민 끝에 휴대전화를 꺼내어 어제 찍어 놓은 사진을 보러 들어갔다. 내 예감은 빗나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전에 찍어 둔 것과 비교해 봤지만, 다르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은 3일의 눈이었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양어깨가 크게 한 번 들썩거리더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찰나에 고민했다. 사진을 지울지, 액정을 끌지. 카지노 게임 추천 액정을 끄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서둘러 휴대전화를 책상 구석으로 치웠다. 발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카지노 게임 추천 입꼬리의 힘을 뺀 상태로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너였어? 난 또 우리 영감님인 줄 알았네.”


설화였다. 설화는 문에 올린 손을 슬쩍 놓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대? 내가 한 말 때문에?”


“단화 신었구나.”


“응?”


“사장님이나 성민 씨인 줄 알았어.”


“두 사람이면 왜? 뭐, 혼자 아랫도리라도 달래고 있었니.”


설화의 농담 한마디에 곤두서 있던 몸이 기분 좋게 축 처졌다.


“사진을 보고 있었어.”


“무슨 사진?”


카지노 게임 추천 솔직히 대답했다.


“눈 사진.”


설화는 촉이 좋았다.


“어제 찍은 거야?”


“응.”


“뭐가 달라졌어?”


“그런 줄 알고 찍었는데 똑같았어.”


“…음, 자리 비켜 줄까?”


“왜?”


“그거 아니야?”


“아닌데.”


내 말에 설화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의 등 뒤를 지나쳐 자리로 갔다. 카지노 게임 추천 설화가 의자에 앉자마자 말을 붙였다.


“전화 왔었어.”


“어디? 출판사에서?”


“응. 원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겠대.”


“그렇게 쉽게? 수상한데.”


“글쎄. 정확한 건 사장님이 오셔야 알 수 있지 않을까. 받은 걸 빼앗기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카지노 게임 추천 이어서 꿈 이야기를 설화에게 들려주었다. 누나와 서연 씨가 나왔고, 카지노 게임 추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몸에 광휘를 두르게 되었다고.


“뭐-어?”


설화가 고개를 심히 삐딱하게 기울이며 나를 괴생명체 보듯 했다.


“그래서. 누구 골랐어, 너.”


“무슨 말이야?”


“꿈에 그 사람도 나왔다며.”


“그게 다인데?”


“나도 나왔고.”


“응. 근데 내 몸에 광휘가…”


“꿈에서 깼겠지?”


“그렇지?”


“깬 순간 누굴 골랐느냐, 내가 질문하는 건 이 부분이야.”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냥 둘이 싸우는 거 보고 재밌어서 대화를 곱씹었을 뿐이야. 그 사람, 내 취향도 아니고.”


“취향이 아니다? 취향이었으면 내가 큰일 치를 뻔했네?”


여기서 카지노 게임 추천 생각했다. 말로는 해결되지 않을 일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 설화의 손을 붙잡고 회사 옥상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변명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었으니까. 옥상 문을 여니 꿈에서와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카지노 게임 추천 재떨이가 있는 중앙이 아닌, 왼쪽으로 걸었다.


“보여?”


“대답 안 할 거야.”


“이제 막 벚꽃의 꽃봉오리가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


“들었어?”


“계속해 봐.”


저 한마디에 침이 절로 삼켜졌다.


“우리는 같이 꽃을 보기로 한 사이야. 그게 무얼 말하는 거겠어. 세상 각별하고도 끈끈한 우정으로 엮인 연인이라는 뜻이야.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해. 내 꿈에 서연 씨가 나온 거? 그게 뭐? 현실에선 이름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사실상 그만큼의 선이 그어져 있는 사람이라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책이 나온 이후에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누나.”


“왜.”


“이쪽이 현실이야.”


카지노 게임 추천 활짝 피어 있는 건물 사이의 꽃을 향해 설화를 데려갔다.


“꽤 와닿네?”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런데 미생아.”


카지노 게임 추천 다시금 침을 삼켰다.


“그래서 누굴 골랐냐니까?”


“누나를 골랐어.”


“순간의 고민도 없이?”


“그래, 그러니까 그만 질투해. 더 하면 진짜 추해 보일 것 같아.”


설화는 이놈 보라는 듯 나를 쳐다보다, 대답 대신 입술에 가벼이 키스했다.


“너한텐 장난도 못 치겠다. 벌써 얼굴이 하얗게 질렸네.”


카지노 게임 추천 우스꽝스럽게 보이게끔 얼굴을 구겼다. 설화가 미소 지었다.


“그만 내려가자. 사람들 오겠다.”


“사장님 계시면 어떡하지?”


“출판사에서 연락했다며. 이미 다 아실 건데, 뭐. 너랑 나 사귀는 것도 들었을 수 있고. 문제 될 거 있나.”


문제 될 건 없다. 달라지지 않은 거면 달라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번엔 설화가 앞장섰다. 단화의 단정한 소리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퍼져 나갔다. 사무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화의 멈춤 없는 걸음에 카지노 게임 추천 그녀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설화는 밝은 표정으로 나의 손을 두드렸다.


“어머, 사장님. 일찍 출근하셨네요?”


사장이 인사를 건넨 설화를 지나쳐 나를 바라봤다. 카지노 게임 추천 그 눈빛에 완전히 압도당한 나머지, 인사가 늦게 튀어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이에요.”


카지노 게임 추천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역시나 다음 말이 있었다.


“변용찬이라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누군지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만나 봤어요?”


“아뇨, 아직.”


“대화가 아주 능통한 사람이더군요. 기회가 되면 책 출간 이전에 한번 만나 보세요. 매조지도 깔끔한 게, 미생 씨와 코드가 잘 맞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퍼즐이 어느 정도 풀렸다. 서연이 사고를 쳤고, 변용찬이라는 사람이 사장을 달랬다는 것.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확실했다. 한 가지 궁금한 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왜 나를 위해 일을 해 주었는지다.


“혹시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카지노 게임 추천 몰라요. 전에 편집자라고 전화 온 사람이 전화를 바꿔 줬을 뿐.”


“그렇군요. 제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도 열심히 일해 봅시다.”


변용찬. 나의 굴레에 새로이 등장한 인물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서연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번호를 얻어 내고 싶었지만, 이른 출근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회사의 업무 탓에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는 게 느껴졌다. 얼굴로는 열이 오르고, 배꼽 아래로는 냉기가 내려앉는다. 좋은 징조는 아니다. 내가 이를 느끼는 때면 필시 달갑지 않은 일이 찾아오곤 했다. 나는 지금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 작년엔 다섯 번. 올해는 벌써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설화를 태운 자동차에서였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가령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냄새와 같은 것 말이다. 주변은 왠지 모르게 멀찍하게 보이고, 나는 스스로를 늪에 빠뜨린 것처럼 사물에서 서서히 멀어져 간다. 멀어짐, 그것은 곧 분리를 뜻한다. 나는 분리가 가리키는 곳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본능이 나를 향해 속삭였다.


“준비해. 곧 전쟁이 시작될 거야.”


카지노 게임 추천 대답했다.


“알고 있어.”


설화가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알고 있으면 됐어.”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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