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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작가 Oct 15. 2023

#5 왜 돈이 이거밖에 없어?


“부는 많은 걱정거리를 해결해 준다. - 메난드로스”

그 남자의 돈

부모님 인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결혼준비에 들어갔다. 식장도 잡아야 하고, 결혼사진도 찍어야 하고, 신혼여행 예약도 해야 했다. 할게 참 많았다. 다 돈이 들어가는 것들이었다. 조금 걱정을 하던 순간, 그녀가 내게 물어봤다.


“돈 얼마나 모았어?”


갑자기 훅 들어왔다. 다행히 계좌를 보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선뜻 얼마라고 이야기하지 못온라인 카지노 게임. 처음으로 나의 어두운 부분을 보이는 것이었다.


“응.. 적당히 모았지….. 0000만원 정도 있어.”

“그거밖에!!!!!!????? 어디에다 돈을 그렇게 썼어?”

“뭐.. 이거 저거 하고.. 사고..”


변명할 것도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사고 싶은 거 사니 돈을 많이 모으지 못온라인 카지노 게임. 첫 월급을 받고 나서는 각종 재테크 책을 보면서 적금통장도 만들고, CMA통장도 만들고, 주택청약도 가입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연애도 하고, 친구들과 가끔 만나 술도 한잔 하고, 옷을 좋아해서 계절별로 옷도 사다 보니 어느새 하나둘씩 해지했었다. 그나마 중간에 정신을 차려서 모으기 시작한 게 그 정도 돈이었다. 사실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사고 싶은 건 적당히 사고 살았다. 어차피 결혼하면 이렇게 못 살 것(life & buy)이라고 생각도 하면서.


나에게 돈은 ‘나’ 답게 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돈을 통해서 이쁜 옷을 사 입고, 좋은 데서 밥을 먹으면서 ‘나’ 다움을 찾으며 인생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티끌 모아 티끌이고, 나중에 결혼하면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만 돈을 썼다. 돈에 대해 무지했다.


다행히도 그녀가 내가 돈을 못 모았다고 결혼을 무르지는 않았다.(뭐 무른다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그만큼 나도 나의 문제는 알고는 있었다.) 나와 그녀는 통장을 만들어서 결혼준비자금을 마련했고 하나둘씩 결혼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준비를 하면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100% 그녀에게 맡겨서는 안 되었다. 그녀의 성격 상 당연히 그녀가 마음에 드는 대로 하겠지만, "응 마음대로 해. 난 네가 좋다고 하는 건 다 좋아."라고 절대 이야기하면 안 되었다. 절대 금기어다.이는 먼저 간 친구들이 조언해 주어서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적당한 고민과 비교분석을 해보고(하는 척이라도 해보고), 아주 조심스럽게 "나는.. 이게 좋은 것 같은데? "라고 이야기해야 했다. 물론 내 선택대로 되지는 않지만.그게 결혼을 앞둔 남자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사진도 찍고, 식장도 잡고, 신혼여행도 예약했다. 신혼여행지는 하와이였다. 그녀가 어디로 신혼여행 가고 싶냐고 묻기에, 하와이를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그녀가 알았다고 했다. 비행기를 예약하고, 호텔을 예약했다. 그런데 다들 가는 호텔인 쉐라톤이나, 힐튼 이런 곳은 그녀가 가지 말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신혼여행 첫날밤은그런 호텔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4성급 호텔로 예약했다. 호텔에서 억지로 좋아 보이게 찍은 사진을 몇 장 보더니, 그녀가 맘에 든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결혼식'을 위한 준비는 빙산의 일각이다. 진짜 문제는 '결혼 후 살 집'이다. 나는 당분간(어쩌면 계속) 지방 근무를 할 것이고, 그녀는 서울에서 일을 할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당연히 맞벌이를 할 것이기 때문에 신혼집의 위치도 그녀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 길 건너에 있는 구축 아파트는 대규모라 전세 매물이 많았다. 어차피 평일은 그녀 혼자 지낼 테고, 주말에만 내가 갈 것이기 때문에 큰 집은 필요 없었다. 18평짜리 전세에 들어갔다. 내가 모은 초라한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기에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시고, 나머지 부족액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서 마련했다. 혼수는 그녀가 모은 돈에서 장만했다. 정말 정신없었지만 준비는 되고 있었다. 힘들고, 갈등도 종종 생겼다. 하지만 친구들이 그랬다. 조금만 참으라고, 그때는 다 힘들다고.


그 여자의 돈

그 남자를 처음 만날 때부터 들던 걱정이 있었다. 패션도 깔끔하게 하고 다니고, 차도 산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 친구도 많고 술도 좋아하는 이 남자. 과연 돈을 얼마나 모았을까? 본격적으로 결혼을 준비해야 했기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그런데 보통의 남자들이 그랬다. 돈 모으는 능력이 없는 남자들이 많았다. 이 나이의 남자들이 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많이 버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쓰는 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 돈을 많이 모으려면 많이 버는 수밖에.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 이상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돈을 열심히 모았다. 돈이 무서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말'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최저가를 비교해서 무이자 할부로 최대기간으로산다. 무이자할부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은행 이자를 벌 수 있으니까. 택시는 절대 타지 않는다. 친구들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고, 술도 마시지 않으니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었다. 교사생활하고 몇 년 후에는 오피스텔도 하나 계약했다. 결혼을 하든 못하든 부모님이랑 사는 건 불편하니, 미래에 대한 준비도 해야 했다. 그리고 혹시 아나? 오피스텔 가격이 올라서 이득을 볼지도.


나와는 많이 경제관이 다른 이 남자와 결혼을 하려면 내가 적극적으로 경제주도권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이 남자의 씀씀이를 따라가다간 파산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이 결혼 준비자금을 모으고, 신혼여행, 스드메, 식장, 신혼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했다. 특정 예식장, 조명 방식, 꽃장식 등등. 나는 그런 건 없다. 가성비만 좋으면 된다. 식장은 적당히 이쁘면 상관없고, 밥은 싸고 맛있으면 된다. 드레스도 적당한 스드메 업체에 가서 내가 가서 비싸 보이는 드레스를 고르면 될 것 같았다. 신혼여행 호텔? 거기에 몇십만 원 쓸 돈이 있으면 나는 대출을 한 푼이라도 더 갚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ESTJ 특성상 여행은 역사와 교훈이 있는 곳이 좋다. 이태리나, 스페인 같은 곳이 좋지만 해외여행을 많이 못 다닌 이 남자에게 너그러이 선택권을 줬다. 하와이를 가자고 한다. 뭐 유럽보다는 비행기값이 싸니까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 돈도 못 모으는 남자는 뭔 놈의 하와이의 고급 호텔들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답답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럴 때가 아닌데… 물로 나도 좋은 호텔이 좋긴 하지만, 어차피 잠이 예민해서 누가 옆에 있으면 잘 자지도 못하는데, 비싼 호텔에서 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가성비 좋은 호텔을 골라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 첫날밤의 환상 따위는 없다.


신혼집은 가성비를 고려해서 내가 근무하는 학교 5분 거리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30년도 더 된 아파트이지만 선택지는 거기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경기도에서 다니는 것도 이상하니까. 이는 당연히 나의 직주근접을 위해서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남자도 순순히 동의온라인 카지노 게임. 하지만 전세를 구할 때 그 남자 집에서 도와준다고 (그가 이야기한) 돈보다 일부 부족한 액수를 도와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전세자금대출을 더 받아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는 그 남자에게 따졌다. 하지만 그 남자는 참으로 쓸데없는 효자였다. 그 정도 도와주신 것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바보같이.


그들의 돈

"부는 많은 걱정거리를 해결해 준다"라고 이야기한 메난드로스는 기원전 300년대 시대의 사람이다. 즉, 2,300여년 전부터도 돈은 많은 걱정거리를 해결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가난은 많은 걱정거리를 해결해주지 못하는가? 맞다. 해결은커녕 많은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것이 바로 가난이다.


이 남자의 경제개념과 통장의 잔고는 이 둘에게 걱정을 안겨주었다. 남자가 모은 적은 돈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서 결혼하기에 떳떳하지 않은 돈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더더욱 만족시킬 수 없는 돈이었다.


30대 초반의 남자에게 대한민국에서 경제적으로 인정받으며 결혼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열심히 공부해서 직장생활을 하자마자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와이프에게 자신 있는 통장잔고를 보여줄 수 있다. 그나마 도와주실 수 있는 부모님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것도 없는 남자들은 너무나도 힘들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다 변해도 남자가 결혼할 때 더 많은 돈이 필요한 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부부가 잘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잘 맞으면 된다고 한다. 성격과 경제관념. 이 두 가지만 잘 맞으면 큰 문제없이 평균적으로 더욱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정말 맞다. 성격이 맞아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성격이 맞아도 경제관념이 맞지 않는다면 갈등의 요소가 많아진다. 외식할 때, 택배올 때, 부모님 용돈드릴 때 등등. 매 순간이 싸움의 기회가 된다.


MBTI도 경제관념도 다 안 맞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미혼 남녀들에게 소비는 결혼을 위한 일종의 투자이기도 하다. 후줄근한 공대생 패션보다는 댄디한 패션이, 10년 된 중고차보다는 최신 SUV가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러한 매력은 결국 결혼의 가능성을 올려준다. 하지만, 그 사람의 통장잔고는 매력과 비례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만난 남녀는 모르겠지만, (결혼을 목적으로 한) 소개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안녕하세요’라는 말 다음에 아래의 질문을 바로해야 할 것 같다. 괜히 취미가 뭐냐, 뭐 좋아하냐 같은 대화를 시작해서 매력을 느끼면 무르기 힘들어지니까.


"월급의 얼마나 저축하세요?"

"사고 싶은 건 어떻게 사세요? 바로 구매? 아니면 최저가 비교? 아니면 참고 안 사기?"

"(통장의 잔고는 얼마나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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