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이 혼자 있을 때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할 때 일어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듯하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면서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의 충동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을 사귀고 사랑을 나누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충동이 그 한 가지고, 또 한 가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이다. [엔서니 스토, 고독의 위로]
[2]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원이다.
혼자 있을 때 카지노 게임 추천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과 접촉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바꾼다.
[엔서니 스토, 고독의 위로]
[3]
혼자 사는 이유는 고독사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고독사라는 위험을 알고 있어도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은 사람은 고독사를 피하기 위한 단순한 이유로 결혼하지 않는다.
[4]
고독사의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자신에게 있기에 자신에 대해 가장 민감한 촉수는 곧 이 위험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향해서도 자란다. 혼자 사는 사람일수록 사회적인 것에 민감해진다. 단 차이는 있다. 가족 속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 중심성 때문에 사회적 교제의 범위가 직장과 가족으로 양분되고 동질적인 집단 속에서의 교류에 한정된다면, 혼자 사는 사람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질적인 집단과의 교류가 필수적이다.
[5]
우파니샤드는 인도 베다 사상의 철학적 집성으로 지식을 중요시하는 점이 그 특징이다.
본래 그 말의 뜻은 <가까이 앉는다이다.
우주의 창조적,중성적 원리인 브라만과 그 인격적,개인적 원리인 아트만이 우파니샤드 철학의 중심 개념이며 아트만이 자기 자신이 브라만과 동일하다고 인식함으로써 아트만은 개체적 존재에서 우주적 총체적 존재에로 합일되어 이 세상 모든 현상적 상대적 고통을 벗어나서 절대적으로 無苦, 안온, 기쁨의 경지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
[6]
고양이가 자신이 고양이인 것에 만족하듯이,
카지노 게임 추천은 자신이 사람인 것에 만족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옳고, 그들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의 자리는 그들에게 버티고 있을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카지노 게임 추천이 그 사실을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며,
자신의 자리조차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어디론가 달아나야 하리라.
그런데 발 딛고 설 만한
단단한 한 치의 땅도 있지 않다.
[7]
사람들을 하나하나 구별 지워 주는 것은 바로 그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다.
[8]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이기주의자들이
대체로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극도로 이기적임을
진정으로 잘 아는 인간들은
겉으로 정의로운 척,
착한 척 위선을 떠는 인간들에 비해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그들은 믿을 수 있는 카지노 게임 추천이다.
[9]
인간의 삶은 일종의 광기다.
이 세상은 티끌 하나 남김없이 사라지는
한 줄기 수증기이다.
[10]
연구란 것이
그 이외의 다른 어떤 흥미를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고 보면 우리가 배우는
그 수많은 것들은
모두 무시해 버려도 좋을 것들이다.
[11]
우리는 인간적인 것인 감정들이란, 인간적인 것일 뿐, 동물에게는 그런 감정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12]
어느 도시를 사랑하고, 한 마리 짐승을 사랑하고, 한 여인과 한 친구를 사랑하는 것, 거기에는 단 한 마디말밖에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그러한 애정들을 이성적으로는 서로 다른 것이라고 구별하려고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너무나도 간단하게 치부하려 든다.
[13]
불행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동정이란 것은, 실상 따지고 보면 그들이 겪는 비참한 삶을 눈앞에서 보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그들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정작 고통을 당하는 그 사람들보다 더욱 자신이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4]
나 자신에 대해 말을 하고, 내가 예전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든가, 나의 이름을 걸고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은 분명 나 자신의 무엇인가를, 그것도 가장 소중한 무엇인가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 허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시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모든 존재가 필요로 하는 힘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대체 타당한 말일까? 자신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이 왜 내면의 힘이 결핍된 것인가? 모든 작가들은 자신에 대해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내면의 힘이 부족한 멍청이들인가? 솔직히, 난 이 글을 쓴 사람의 생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15]
부지런하고 강건한데다가 더구나 다른 사람들의 일에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더욱 열중하는 대중들의 무리에 섞여 있으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번잡한 도시가 갖고 있는 편리함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누려 가면서 나는 인간이 사는 세상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막에서 있는 것과 같은 고독한 은둔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