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한 지난밤들을뒤로하고
얼마 전 건강검진을 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이미 몇 년째남편 회사에서 나오는 건강검진권으로 함께 검진을 받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직접 전화가 온건 처음이었다. 사실 이상 소견이 있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연락이 있었던 터라 살짝 손이 떨렸다.
“검진 결과, 암으로 보입니다.”
“네?”
추가 검사가 필요하니 예약을 잡고 병원에 오라는 얘기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것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던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은 움직이지 않고 배경만 움직이는 그런 상황.
전화를 끊고 학교 복도를 걷다가 언니와 마주쳤다. 나는 작년부터 언니의 소개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언니는 내 표정을 보더니 손을 부여잡았다.
"무슨 일 있어?"
"언니, 나 암 이래."
내 입으로 암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눈물이 무섭게 흘렀다. 그렇게 스치듯 복도를 빠져나가 화장실에 앉았다.
'일단 퇴근하고 생각하자. 당장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일부터 끝내자.'
근무를 마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내 얘기를 다 듣더니 '다 나쁜 건 아닐 거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그가 미워졌다. 지금 나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이 저거밖에 없는 건지.
서운한 감정이 밀려오기도 잠시, 아이들이 생각났다. 큰 아들은 중3, 둘째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어쩌면 좋을까. 왜 하필 지금 나에게 이럴까.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위였다. 술에 잔뜩 취했을 때 기억을 잃듯이 병원에서 전화를 받고 나서 지금까지 일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차 시동은 걸었고, 남편이랑 통화도 했고, 그다음은...
거실로 나와 책을 꺼내 들었다. 난 어릴 때부터 무언가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책 속으로 도망쳤다. 이번엔 도망쳐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줄 한 줄 손으로 짚어가며 생각 멈추기를 시도했다. 한참을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얼마 전에 마트에서 사 온 무가 보였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속에서 암으로 투병 중인 사람이 시골에 집을 구해 요양하고 카지노 게임 추천는데, 동네 할머니께서 무를 하나 가지고 오셔서 이걸 한번 묻어보라고 하셨다고 했다. 자기가 알던 사람이 한참을 아팠는데, 무를 며칠 안고 자다가 그 무를 마을 뒷산에 묻어두고 뒤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뒤로 깨끗하게 나았다고.
"내일 저 카지노 게임 추천 묻으러 갈 거야."
카지노 게임 추천 이틀 정도 안방에 두고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같이 가자."
남편은 원래도 내가 하자는 일에 이유를 묻거나 반대하질 않는다. 그렇지만 이 생뚱맞은 이야기에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다니. 내가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자고 저 무만 바라보고 앉아있었던 것을 알았나 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간절한 마음으로 무를 쓰다듬었다. 무생채를 하겠다고 사 왔던 저 무에게 미안하게도 내 하소연과 걱정만 잔뜩 묻혔다. 무를 가슴에 꼭 품고 남편과 나는 마을 뒷산으로 걸어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지라도 내 운명을 대신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걸어가는 동안 나는 눈에 띄는 것들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나 해댔고, 남편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나의 말들이 그 순간의 어색함을 조금씩 지워주고 있었다. 꼭 안은 무와 맞잡은 그의 손의 온기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능하면 양지바른 곳, 소위 말하는 명당을 찾아 묻고 싶었다. 제법 가파른 언덕을지나 여기쯤이면 괜찮겠다 싶은 곳을 골라 땅을 파고 품 안에 있는 카지노 게임 추천 묻었다. 이 무가 내 병도 함께 가져가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12월의 땅은 차갑고 단단해서 쉽게 파지지 않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 묻은 그 자리를 꾹꾹 밟으며 내 병이 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지켜주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카지노 게임 추천 다 묻고 나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돌아오라던 책에서 봤던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여보, 내가 넘어지더라도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뒤로 손만 내밀어줘."
"응"
그는 짧게 대답하고 내 손을 잡아줬다. 올라오는 길에 봤던 것들을 다시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그에게 오래오래 늙어서도 당신 손을 잡고 걷고 싶다는 말을 마음속 말을 꺼내지 못하고 삼켰다. 말없이 걸었던 그 길에서 나는 빌고 또 빌었다. 무를 카지노 게임 추천 전까지는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어쩐지 그날 밤은 단 몇 시간이라도 푹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