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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Apr 02. 2025

인삼 먹기

카지노 쿠폰의 500M 반경에서 영원히 같이 살고 싶다

출근길 안개가 자욱하다. 차 전조등을 켜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내 앞날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엔 빛을 비추면 되는데, 안개엔 답이 없다. 까맣고 어두운 것만 무서운 줄 알았는데, 하얗고 뿌연 것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사람이 죽어 온기가 사라지면 저렇게 하얗게 변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던 중 학교 정문이 보였다.


일단 오늘을 잘 살아보자. 마음을 다잡으며 담당 교실 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서 카지노 쿠폰가 나를 부른다.


“어젯밤에 냉장고를 보니까 이게 있더라?”


카지노 쿠폰 손에는 키친타월에 돌돌 말려진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깨끗하게 씻었어. 뭐가 약이 될지 모르니까 일단 먹어봐. 먹는 방법을 찾아봤는데 물 없이 꼭꼭 씹어서 녹여 먹으면 약이 된대. 아직 수업 시작까지 시간 있으니까 꼭꼭 씹어 먹어봐. 잘 될 거야”


카지노 쿠폰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뭔지 모를 삼 두 뿌리였다.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 카지노 쿠폰는 나만 보면 잘될 거야라고 했다. 혼자서 병원 가기 싫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했던 카지노 쿠폰. 냉장고에서 삼 두 뿌리를 찾아 씻으면서, 또 어떻게 먹어야 할지 찾아보면서 내 걱정을 얼마나 했을까.


“두 뿌리는 다 못 먹겠어. 하나는 카지노 쿠폰가 먹어. 같이 건강해지게, 같이 먹자.”


내 손에 쥐어 줬던 인삼 두 뿌리 중 한 뿌리를 카지노 쿠폰에게 건네주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나눠 든 삼을 바라보고 있다가 카지노 쿠폰가 먼저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삼을 씹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카지노 쿠폰도 같이 울었다.


“이거 다 먹고 다 나으면 좋겠다. 카지노 쿠폰도 이거 먹고 아픈데 없이 건강해야 해”


삼을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쌉쌀한 느낌에 몸에 좋은 기운이 퍼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눈물과 삼을 같이 씹어먹고 있을 때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를 듣고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한 병원 예약 문자였다. 내 핸드폰을 들여다본 카지노 쿠폰가 물었다.


“제부가 같이 갈 수 있나?”

“아니, 오늘 회의가 많아서 바쁘다고 하더라고. 나 오후에 도서관 출근 안 하니까 혼자 다녀오면 될 거 같아”

“있어봐. 내가 오늘 오후에 조퇴할 수 있는지 보고 같이 가자”


학교에서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 카지노 쿠폰한테 전화가 왔다. 조퇴를 냈으니 같이 병원에 가자고 시간에 맞춰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오라고 한다.


우리 카지노 쿠폰는 결혼 직후 1년 정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았었다. 그 시기를 빼고 지금껏 나는 카지노 쿠폰의 곁에서 500M 반경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지금도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다.


만약에 내가 없더라도, 카지노 쿠폰가 우리 아이들과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일렁였다.


시간에 맞춰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카지노 쿠폰가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아침에 학교에서 같이 한참을 울어서일까. 무슨 말을 하면 또 눈물이 흐를까 봐 아무 말도 못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카지노 쿠폰가 앞장서서 번호표를 뽑고 접수를 했다. 나는 그런 카지노 쿠폰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혼자서도 잘했던 건데. 이상하게 어린애처럼 카지노 쿠폰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이 병원에 처음 온 건 카지노 쿠폰인데, 마치 카지노 쿠폰는 여러 번 와본 것처럼 이쪽으로 가자 저쪽으로 가자 하며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내가 이 교수님 검색해 봤는데, 이 분야에서 되게 유명하시더라고. 치료가 잘 될 거 같아. 너 병원 옮기고 이 교수님이랑 연결된 거 보면 사람은 다 인연이 있나 봐. 이 교수님 만나서 얼른 나으려고 그랬던 거 같아”


카지노 쿠폰는 아무 말도 없는 나에게 무어라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차례가 왔다. 의사 선생님은 일단 구체적인 것은 수술은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는지 확인해야 하니 림프절을 몇 개 채취하겠다고 했고, 후유증으로는 팔이 코끼리처럼 부을 수도 있다고 했다. 만약에 수술 부위가 클 경우에는 공간을 메우기 위해 보형물을 써야 한다고. 그래야 몸에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며 이런저런 설명을 쏟아냈다. 사실 모든 설명을 다 알아듣지 못했고, 멍했다. 처음 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수술하면 흉터는 얼마나 될까요? 수술하면서흉터 성형까지 할 수는 없나요?”

“수술이 잘 되면 정기적으로 주사 맞고, 약물 치료만 잘하면 되나요? 그 치료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어디서 뭘 찾아보고 왔는지 카지노 쿠폰는 의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시작했다.


“일단, 수술이 먼저예요. 다른 건 수술을 해보고 얘기하시죠.”


의사 선생님은 모든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하면서 카지노 쿠폰의 말을 잘랐다.


‘나쁘네. 좀 친절하게 말해주면 안 되나’


속으로만 이런 생각을 하며 방을 나왔다. 그렇게 면담이 끝나고 다른 검사를 하기 위해 채혈실로 가는 도중에 카지노 쿠폰가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선생님 말투가 자신감 있어 보이지? 이 분야에서 유명하다더니 수술을 많이 해봤나 봐. 그리고 너 같은 경우도 흔한가 봐. 걱정할 게 별로 없을 때 저렇게 말하는 거래. 선생님이 말하는 거 들었지? 수술만 잘 되면 걱정할 게 없다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건지 아니면 카지노 쿠폰는 진짜 그렇게 들은 건지.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마치 아침에 내게 먹였던 인삼처럼, 카지노 쿠폰는 그렇게 또 나에게 한 보따리의 희망을 안겨줬다. 지금처럼 카지노 쿠폰의 500M 반경에서 영원히 같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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