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끝, 다시 개학이다.
그 말은 방학 동안 함께했던 육아동지인 남편이 학교로 출근을 한다는 이야기이고, 다시 말하면 남편의 퇴근 시간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홀로 카지노 쿠폰를 돌봐야 한다는 소리이다.
카지노 쿠폰가 어린이집에 가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판단되어 가정보육 중인데, 3월 신학기를 맞아 등하원을 하는 카지노 쿠폰들과 육아에서 해방돼 함박웃음인 부모님들을 보며 어째 우리 집만 거꾸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일과 카지노 쿠폰는 걱정하지 말고 나에게 맡기라고 큰소리를 뻥뻥 쳤지만, 여름방학 전까지 3-4개월을 또 어떻게 버티나 싶어 밤새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라고 쓰고 싶은데 남편 말로는 대자로 뻗어서 잘 잤다고 한다. 빡센 육아 앞에서는 장사 없나 보다^_^)
처음부터 우리에게 방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중간중간 틈새 공략을 하던 방학으로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하다 보니 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손이 많이 가는 큰아들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안 보이니 이렇게 허전하고 불편할 수가 없다.
학기 첫날이라 학교에 일찍 가서 준비를 하고 싶다는 남편 말에 아침부터 서두르게 되었다.
첫날인만큼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줄까 고민도 했으나 일회용 칫솔에 각티슈, 수업 교구, 텀블러, 엄마표 커피, 손난로 등 챙겨줘야 될 잔잔바리 물건들이 너무 많아 1초 컷으로 빠르게 포기 선언을 외쳤다.
그러게 진작 좀 챙기지 그랬냐라는 잔소리가 입 안에 위잉 위잉 맴돌았지만, 전날에도 육아 전쟁을 치르느라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것을 보니 이런 것들을 챙길 정신이 어디 있었겠나 싶다.
부랴부랴 아침 메뉴로 선택한 것은 멸치 주먹밥.
밥을 푼 후, 엄마 땡큐를 외치며 잔카지노 쿠폰볶음을 때려 넣고 참기름 한 바퀴를 휘익 돌린다. 대충 섞어서 주먹밥을 만들면 성공. 시간을 보니 정확히 5분 걸린 것 같다.
엄마 찬스로 받았던 카지노 쿠폰볶음 반찬은 이럴 때 가장 빛이 난다.
빠르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아침식사 한 끼. 그래, 이게 진정한 아침식사지. 뭐 별거 있나. 멸치 자체가 존재감이 워낙 뛰어나 주먹밥 만들기에는 손색이 없다.
여기에 따뜻한 대화 한 스푼만 더해진다면 목표로 했던 아침식사는 성공리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 사이 똥을 싼 아이 덕분에 우리의 대화는 다시 또 공중분해되었다.
걱정은 디폴트지만 한가닥의 희망과 결의에 차 있던 새 학기 아침은, 카지노 쿠폰와 남편의 뒤치다꺼리로 그렇게 파스스 사라져 버렸다.
남편을 보내고 남은 카지노 쿠폰로 주먹밥을 빠르게 만들어 입 안에 욱여넣다시피 하였다.
때마침 라디오처럼 듣던 유튜브 방송에서는 '정체성'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이윽고 여자 mc의 고민이 이어졌다. 본업은 가수지만 지금은 예능 프로에 출현하고 있으며, 유튜브도 병행 중이라 한동안은 내가 무엇인지,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는 것이었다.
상담선생님께서는 한마디로 정리를 해주셨다.
어떠한 것도 아닌 그냥 '자기 자신'이라고. 그러니 삶을 결과로만 증명하지 말고 우리의 이름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본 것도 꽤 오래전이지만,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해야 행복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기억도 까마득했기 때문이다.
나다움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어떨 때 제일 행복했지?
물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카지노 쿠폰를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학교에서 카지노 쿠폰들과 깔깔거리며 수업을 하는 내 모습을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 수업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고, 영혼을 갈아 넣은 학습지도 만들고 싶다.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결과물에 집중하는 삶이 아닌, 그저 나답게 과정들을 즐기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싶은데 그마저도 육아 과정에서 퇴색되어 감을 느낀다.
나다움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주먹밥에 담긴 저 카지노 쿠폰라는 놈은 혼자 있어도 존재감 뿜뿜이던데.. 지금 놓인 상황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신학기를 맞아 나에게는 육아 외에 새로운 숙제가 주어진 것 같다. 가정과 사회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나의 존재를 확인해야 될 때이다. 이 작업은 아마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카지노 쿠폰 주먹밥에 담긴 카지노 쿠폰처럼 존재감 뿜뿜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 이름 석자만으로도 빛이 나는 그런 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