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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꿈샘 Apr 02. 2025

09 카지노 쿠폰-한강/창비

인혜의 삶을 응원하며



<카지노 쿠폰는

독자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소설이며,

아름다움과 공포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작품입니다.

- 맨부커상 수상 평 -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나온 <카지노 쿠폰주의자 영문판은 큰 호평과 함께 2015년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하며 카지노 쿠폰은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작년 카지노 쿠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때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함께 가장 각광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카지노 쿠폰 작가를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고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나는 '불륜'과 '극단적 카지노 쿠폰주의자'라는 소재가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여, 나와는 결이 안 맞는 작가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한 마디로, 읽고 나서도 한동안 들춰보지 않았던 변방의 책이었다.



그런데 요즘 카지노 쿠폰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고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관을 알고 재독하니 이제야 이 책이 시사하는 지점들을 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는 총 '카지노 쿠폰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 '카지노 쿠폰주의자'는 영혜의 남편 목소리로 서술된다.



과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스스로를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각하는 남편은 외모도 성격도 무난한 영혜를 아내로 맞이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이 아주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던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꾼 아내 영혜가 고기를 거부하고 카지노 쿠폰을 선언하면서 갈등이 촉발되고 결국 파국을 맞는다.

표면적으로는 영혜가 카지노 쿠폰을 선언하며 가족과 갈등을 겪고 충돌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폭력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해 온 작가의 통찰이 엿보인다.



2장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언니 인혜의 남편)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내 인혜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 그와 영혜 사이는 지극히 평범한 형부와 처제 사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내가 '영혜 엉덩이에 아직도 엄지 손가락만한 몽고 반점이 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원인 모를 '광기'에 사로잡혀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처제를 범하고 만다.

이를 눈 앞에서 목도한 언니 인혜는 두 사람을 신고하기에 이르고 결국 그들의 관계 역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마지막 3장 '나무 불꽃'은 언니 인혜의 이야기와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는 영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동안 감춰져있던 인혜의 은밀하고 내밀한 이야기가 하나씩 드러나는데, 나는 오히려 영혜보다 인혜의 삶이 더 안타깝고 안쓰러워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카지노 쿠폰




폭력이 낳은 결과


카지노 쿠폰이 30년 넘게 일관되게 다뤄 온 주제는 인간의 폭력성과 거기에서 파생된 비극이다.

광주 출신인 카지노 쿠폰은 열세 살에 아버지가 건넨 사진을 통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목격했다.

그날의 기억은 그녀가 '폭력'이라는 주제로 다가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훗날 "그 사진첩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회고할 정도로 그 사진이 준 충격은 컸다.

작가는 참혹한 시신 옆에서 총상 입은 사람들을 위해 헌혈하려고 끝없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인간 안에 참혹한 폭력과 이타심이 모두 있다는 게 양립할 수 없는 숙제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카지노 쿠폰에서도 폭력이 깊게 다뤄진다.

영혜와 인혜의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자행해온 가정 폭력이었다.

가부장적이고 배려의 말 따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손찌검을 일삼았고 영혜는 열여덟살까지 종아리를 맞으며 자랐다.



언니 인혜와 남동생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으면서도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소하면서 비교적 평범하게 자랐지만 온순하고 고지식한 영혜는 무방비 상태로 온몸으로 폭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기에 그 모든 폭력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카지노 쿠폰



어린 시절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심리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영혜도 마찬가지로 어릴 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가 결혼 후 꿈을 꾸고 난 뒤 정신적인 질환이 나타난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던 강압적인 아버지의 행동은 결국 그녀를 자해하게 만들고 그의 병증을 더 악화시켰다.

이런 영혜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은 아마 어릴 적 지속적으로 노출됐던 폭력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아주 잘 자랐다고 생각했던 인혜도 남편과 영혜의 기행을 경험하며, 살아있지만 영혼은 죽은 상태로 버티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아니였다면 이미 세상을 등졌을지도 모르는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불통


영혜와 남편 사이엔 소통이 없다.

영혜는 아내로서 주부로서 의무적으로 할 일을 할 뿐이고 남편은 직장 다니며 돈을 벌어오면 그뿐이었다.

밥 먹을 때 조차도 영혜와 남편 사이에 이렇다할 의미있는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함께 공유하는 취미 생활도 딱히 없다.

남편은 그녀를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아내 역할을 무리없이 해내는 일종의 '도구'로 여기는 듯하다.



아내가 카지노 쿠폰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 카지노 쿠폰, 9~10p -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카지노 쿠폰, 22p -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영혜의 정신분열 증세가 점점 발현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혜 역시 남편과는 단절 그 자체였다.

인혜는 처음에는 남편을 존경하려 애썼고, 인내하고 보살피기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인혜는 예술에만 탐닉한 채 가장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없는 남편을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다운 말이었다.

미안하다는 고백도,

용서를 빈다는 애원도 생략한 채,

단지 아이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 카지노 쿠폰, 193p -



그녀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는

한갓 그림자에 불과했다.

나는 당신을 몰라.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에

힘을 주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용서하고 용서받을 필요조차 없어.

난 당신을 모르니까."

- 카지노 쿠폰, 194p -



그와 함께 살아온 시간은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제거된 시간이었고,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이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희생만 하며 버텨왔을 시간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인혜를 응원하며


영혜의 정신분열증이 심해지자 남편은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이혼을 한다.

가족들 역시 영혜를 회피하고 연락을 끊는다.

인혜만이 유일하게 동생 영혜를 보살피며 끝까지 책임지려 한다.

아무리 병약한 동생이라지만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동생을 돌보는 그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녀는 진창의 삶속에서도 계속 살아갔다.

등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 먹고 살기 위해 가게를 꾸려나갔고 정신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생 영혜를 돌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깨달았는데,

그녀가 간절히 쉬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열아홉살에 집을 떠난 뒤

누구의 힘도 빌지 않고

서울생활을 헤쳐나온

자신의 뒷모습을,

지친 그를 통해 그저

비춰보았던 것뿐 아닐까.

- 카지노 쿠폰, 161p -



딸로서, 언니나 누나로서, 아내와 엄마로서, 가게를 꾸리는 생활인으로서, 하다못해 지하철에서 스치는 행인한테까지 최선을 다한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 카지노 쿠폰, 197p -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

- 카지노 쿠폰, 201p -



살아본 적 없고 견뎌왔다는,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인혜의 절절한 고백이 너무나 처절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할수만 있다면 그녀를 조용히 안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었다.



인혜에게 이제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책임감 강한 인혜는 결코 영혜를 놓지 못할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영혜와 인혜를 태운 구급차는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들이 닿는 곳은 과연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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