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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Mar 13. 2025

D-50

온라인 카지노 게임

한동안 교감선생님을 만나 뵐 일이 없었다. 힘든 업무들도 마무리된 데다가 지금은학년말이다. 부장 담당이 아닌 교사가 관리자를 만나게 된다는 건 뭔가 미심쩍은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렇게 학년이 마무리되는구나. 1년이 손가락 사이로 사르륵 빠져나갔다. 한 해 동안 나는 무얼 놓치고 살아왔을까. 감상적인 생각에 빠질 때쯤 교감선생님께서 갑자기 교실로 찾아오셨다. 가슴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한참 민원에 시달릴 때 이런 일이 잦았다. 여기까지 오셔서 내 얼굴을 보고 나누어야 할 만큼의 덩어리가 큰 이야기일까.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는 1초 사이에 많은 생각이 흘러갔다.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2주 뒤에 있을 전체 회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년을 마무리하며 하는 그날의 회식에서는 다른 학교로 옮기시는 교직원들의 송별회도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어느 학교나 늘 그래왔다. 실은 나도 송별회에서 꽃다발을 받는 주인공 중 하나였다. 어쨌든 이 학교 만기자이니까. 이 학교에 5년이나 이름을 두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내 경우, 송별회가 아니었다. 교감선생님 입에서 가볍게 톡 튀어나온 단어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보통의 퇴직은 만 62세까지 다 채우고 하는 정년퇴직과 20년 이상 근무 후 스스로 신청해서 하는 명예퇴직 두 종류가 있다. 나는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자청했지만 20년 이상 근무하지 않았으니 의원면직이 되었다. 이런 경우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한다고? 한참 위에 계신 교장, 교감선생님 앞에서 꽃다발과 명패를 받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우스웠다. 피시식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오려 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이야기를 경청했다. 친목회에 자네의 의원면직 사실을 알려도 되겠느냐, 괜찮다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등등. 그리고 자잘한 친목 규정 이야기를 꺼내셨다.


사직서를 쓸 때도 실감 나지 않았는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한다니 정말 의원면직이 두 발 앞에 무뚝뚝하게 서 있는 것 같았다. 노트북으로는 한창 자료정리를 진행 중이다. 지난 16년간 모아 온 자료가 꽤나 방대하다. 교감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모니터 앞에서 멍하게 앉아있었다. 10년 이상 근무하던 일을 손에서 놓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교감선생님은 내가 재직한 기간의 두 배쯤 더 재직하셨을 것이다. 갑자기 대단해 보였다. 어쨌든 나는 다른 의미로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회식 겸 송별회 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시내의 한 뷔페식당에서 이루어졌다. 예정된 시간보다 미리 도착한 우리 학년은 음식을 가지러 가기 편한 자리가 어디일까 물색하다 한 테이블에 정착했다. 아마 식사 전에 이런저런 식들이 진행될 것이다.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자 나는 별안간 어딘가 숨고 싶어졌다. 온라인에서나 관종이었던 나는 오프라인에서까지의 관심을 원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몇몇 선생님들께만 의원면직 사실을 전했던지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통해 ‘챠라~저 이제 그만둔답니다!’ 하고 통보하면 얼마나 놀라실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위장은 첫 접시를 초밥으로 채우라며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먼저 송별회가 있었다. 전출하시는 선생님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되었다. 겪어온 시간만큼 화려한 꽃다발이 그들에게 전해졌으며 대표 교사의 인사말도 이어졌다. 아직 음식이 차려지지 않은 빈 식탁에 꽃향기가 내려앉았다. 오늘만큼은 다들 개운한 표정이었다. 4년간 이 학교에서 많은 일들을 해내며 얼마나 깊어지고 넓어졌을까. 1년을 마무리하는 사람들도, 4년의 기간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준비된 음식을 맛있게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들 새 학교에 가서도 꽃처럼 환하고 아름다운 일들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이어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진행되었다.


“다음은 김지현 선생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있겠습니다.”

“뭐?”(웅성웅성)


정년퇴직도, 명예퇴직도 아닌 주제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주인공이 되려니 솔직히 부끄럽고 창피했다. 내 안에서 그만두는 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끊임없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식이나 코인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고 의대나 한의대에 합격한 것도 아니었다. 이름난 기업에서 손을 내민 것도 아니요, 내 이름을 건 사업을 시작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만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조금 두려웠다. 의원면직마저도 완벽하길 바라는 나의 성향이 지겹다.


전출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에게 돌아간 꽃다발보다 훨씬 더 큰 꽃다발이 내 품에 안겼다. 장미향이 코를 찔렀다. 갑자기 이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어졌다. 얼른 다시 교실로 돌아가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 냄새를 맡고 싶다. 지도서를 펼쳐 들고 학습 목표를 찾아 밑줄 긋고 싶다. 아이들이 푼 단원평가 문제를 채점하고 싶다. 5교시 미술시간에 그려낸 작품들을 환경게시판으로 가져가 압정으로 하나하나 박아 붙이고 싶다... 잠시 아찔한 꽃향기에 취했다 돌아왔더니 눈앞에 감사패를 들고 서 계시는 교장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있었다. 친목회장을 맡은 한참 젊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감사패에 쓰인 문구를 정신없이 읽어주셨다. 어떤 문구였는지 웅웅대어 잘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눈에서 눈물이 차오르면 귓가가 멍해지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그리고 몹시 못생긴 얼굴로 변한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나는 황급히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허탈하게 우는 내 모습을 보며 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 몇몇이 따라 눈물을 흘렸다. 나는 왜 울었으며 그들은 또 왜 함께 울었을까.


꽃다발과 기념패를 함께 담은 큼지막한 쇼핑백을 들고 앉아 나름의 축하공연을 지켜보았다. ‘나성에 가면’이라는 옛 노래를 개사해서 모두가 불러주었다.

“퇴직을 하면 편지를 띄우세요~”


아까 미처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깔끔하게 떨어져 내렸다. 밝은 분위기의 노래에 이런 얼굴을 보이기 싫어 꽃다발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 때문에 금세 부어오른 코는 꽃향기를 막아버렸다.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조금씩 발을 굴러보았다. 가볍고 산뜻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마무리되었다. 모두들 뷔페 음식을 가지러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3년 동안 함께 같은 학년을 맡아온 A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나를 크게 껴안으며 눈물을 보이셨다. 의지할 곳을 스스로 차단시켜 버리는 나에게 유일했던 안식처. 재미난 일이나 놀라운 사건이 생기면 A 온라인 카지노 게임부터 찾아가 조잘조잘 떠들었다. 이제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현이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눈물을 닦으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말씀하셨다. 다행이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모두가 이해해 버리면 너무 슬프고 속상할 것 같았다. 역시 A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다. 이해시켜 드릴 순 없지만 이 분이 교직에서의 내 마지막 동료라는 점은 정말 행운이다.


시원하게 울고 나니 입맛이 똑 떨어졌다. 오늘 뷔페는 내가 다 깨부수려 했는데 안 되겠다. 그러나 연어초밥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다섯 접시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겠어.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먹으면 돼. 뷔페는 기세야. 의원면직을 결심할 때보다 더욱 단단한 다짐을 품고 접시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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