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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산 Apr 22. 2025

카지노 게임 부부

‘카지노 게임 부부’를 보다 걸렸다. 폐품을 모으는 날이었다. 교탁 옆 바닥에 아이들이 내놓은 폐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요즘 재활용품이라 하는 걸 폐품이라고 했다.

빈 병이나 못 쓰는 냄비 같은 고철이 있으면 엿이나 강냉이로 바꿔 먹을 수 있었다. 1주일에 한 번씩 분리 수거해도 몇 보따리씩 내가는 지금과 달리 그 때는 그런 물건이 잘 나오지 않았다. 냄비나 솥을 버릴 일은 거의 없고 음료수는 일 년에 한두 번 소풍 때나 먹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어 병이나 캔도 귀했다. 철컥거리는 가위 소리와 함께 ‘맛좋은 울릉도 호박엿이 왔어요’ 하는 소리가 골목을 울려도 들고 나갈 게 없었다. 다 쓴 참기름병이라도 하나 있고 해진 책이 보이면 횡재한 날이었다. 고물 장수가 가버릴세라 부리나케 들고 나가면 강냉이 한 바가지를 퍼주었다.

하루 세 끼 외에 오후 세 시의 티 타임이니 간식이라곤 몰랐다.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이 든 냉장고도 없었다. 손님이 오면 손에 들고 있는 것에 더 눈이 갔다. 손님이 무얼 사 오든 그걸 손님에게 대접했다. 손님이 신문지에 싼 고기를 사 오면 엄마가 쇠고기뭇국을 끓여 내어 손님과 식구가 함께 먹었다. 그러니 어쩌다 못 쓰는 물건과 바꿔 먹는 강냉이는 아주 특별했다.

받아온 강냉이 그릇을 놓고 동생과 강냉이를 새처럼 하나씩 주워 먹으면 행복했다. 강냉이를 높이 집어 던져서 받아먹기도 하고, 다섯 개로 방바닥을 너무 쓸지 않도록 가볍게 공기도 했다. 입으로 가져가던 손을 멈추고 강냉이의 부풀어진 모양을 자세히 보기도 했다. 꽃받침처럼 붙어있던 노란 강냉이 껍질과 그 위에 봉우리를 터뜨린 꽃 같은 강냉이 알맹이가 신기해 보였다. 나중에 먹게 된 팝콘처럼 달콤하거나 짭조름하지 않지만 기름지지도 않은 강냉이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엿은 강냉이보다 달아서 더 좋아했지만 강냉이보다 비쌌다. 엿장수 아저씨는 내가 무얼 가져가든 그건 별로 돈이 안 된다며 둥그런 통에 들어있는 엿에 젓가락보다 짧은 나무 막대를 찔러 넣어 겨우 두어 바퀴 감아서 주었다. 몇 번만 빨아먹으면 다 없어지는 엿은 다디달아서 더욱 감질났다. 엿 한 번 실컷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했다.

그렇게 집에서도 귀한 폐품을 1, 2주에 한 번씩 학교에 가져가기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때마다 온 집안을 뒤지며 가져갈 만한 걸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폐품을 못 가져가면 벌도 받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만큼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으니 상 줄 일 아닌가?


집에서 재활용할 물품을 모아 뒀다 분리 배출하는 날 내놓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초등학교 2학년 때 폐품으로 병을 들고 가다 넘어져 병이 깨지고 다친 적이 있다. 손바닥에 피가 많이 나고 아팠는데 멀찍이 학교가 보이는 지점이라 내처 학교로 갔다. 담임 카지노 게임 놀라며 학교 근처 병원으로 데려가 주셨다. 몇 바늘 꿰맸던가?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지 아래의 두툼한 손바닥 위쪽에 흉터가 남아있다.

고등학교 때 모은 기억은 없으니 그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폐품을 수집한 기간은 거의 10년이다. 모든 걸 다른 반과 비교하는 카지노 게임들은 더 많이 가져오라고 닦달했는데 매번 어떻게 폐품을 마련했을까?

이날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맨 앞자리에 앉은 내 앞에 쌓여 있는 헌 책 가운데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바로 ‘카지노 게임 부부’였다. 신문의 커다란 제목처럼 책의 앞장이나 옆면에 씌어 있는 글자가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건 막을 수 없다. 허름해 보이는 그 책이 소위 ‘양서’가 아닐 건 분명한데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다. 짝과 나는 눈을 맞추고 ‘어차피 버리는 책, 한 번 볼까?’ 하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짝이 가서 들고 왔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 속의 학생이 고등학교 고학년인지 대학 1학년생 정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어찌해서 주인공 카지노 게임가 함께 살기 시작하여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집안일 하는 이야기가 세세하게 이어졌다. 마치 소꿉놀이하는 아이들 같았다.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내용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지만 우리는 계속 읽었다. 아직 카지노 게임 들어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씨가 궂었던가. 체육 시간이었다. 카지노 게임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반장이 차렷, 경례, 구령을 붙였다. 안녕하십니까, 인사한 뒤에도 책상 위에 그 책이 놓여 있었다. 갖다 둬야 했지만 카지노 게임 들어오셨으니 일어날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이어서 읽을 셈이었을지 모른다.

인사받고 난 선생님에게 그 책이 보였다. 우리처럼 ‘카지노 게임 부부’라는 글자가 그냥 눈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었을 테다. 선생님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체육 선생님이 전근 가셔서 새로 오신 선생님이다. 체육 선생님 같지 않게 호리호리한 체격에 해사한 얼굴, 여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의 젊은 남자였다. 웃는 인상에 말투도 부드러웠다. 가벼운 농담도 잘했다. 성이 ‘임’이라 나중에 결혼해 아기를 낳으면 지을 이름으로 우리가 ‘신중’, ‘신해’를 제안하여 같이 웃은 적도 있다.


짝의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집어 드는 손가락이 희고 길었다. 카지노 게임은 책을 대충 넘겨 보더니 ‘이런 책 읽으면 안 되는데’ 했다. 여느 때처럼 웃는 얼굴에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짝이 얼른 ‘알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카지노 게임 물러나 교탁 쪽으로 가시길래 그렇게 일단락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선생님은 생각해 볼수록 우리 행동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지 수업을 시작하려다 말고 다시 우리 쪽으로 오며 둘 다 일어나라고 했다. 그리고는 새삼 언성을 높여 이런 책을 읽어서 되겠느냐고 꾸짖었다.

자신의 준엄한 꾸중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듯 잠잠히 오래 듣고 있기를 바랐던가? 겁에 질려 가만히 있는 나보다 또박또박 대답하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너무 빨리 인정해버리는 짝이 얄미웠는지 잘못인 줄 알면서 그랬냐며 책으로 짝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때는 체육 카지노 게임에 어울리게 포악했다.

카지노 게임은 어렵사리 수업을 시작하고도 몇 번이나 더 우리를 보며 뭐라 했다. ‘아, 진짜! 무슨 남자가 저래! 한 번 야단치고 혼냈으면 됐지. 우리가 무슨 음란물에 중독된 줄 알아?’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데에 빠진 아이들을 구출하려는 사명감이 그리도 컸을까? 그보다는 자신이 속한 어른의 세계를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몰래 훔쳐보는 게 분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맹세코 그런 ‘불량도서’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 책은 불량도서의 자격이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함량 미달이었다. 그토록 혼나고 질책당해 마땅한 불량스러운 내용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구질구질한 살림 이야기뿐 ‘카지노 게임 부부’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어린 카지노 게임의 달뜨거나 열정적인 성애 장면도 없었다. 우리가 본 데까지 ‘카지노 게임 부부’는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라 현실의 땅을 굳건히 밟고 살아가려는 신생 카지노 게임의 걸음마 이야기였다. 남녀의 사랑에 대한 견문은 눈곱만큼도 넓히지 못하고 꾸중만 왕창 들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뒤끝 있는 카지노 게임은 기어이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오라고 했다. 갔다. 담임 카지노 게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러 카지노 게임들이 흘끔거리는 데 나란히 서서 또 혼났다. 책을 들고 부잣집 도련님처럼 해맑게 웃다가 정색하기를 반복하면서 이런 책 보면 안 된다고 했다. ‘몇 번을 말하냐고요?’ 정말 지겨웠다. 아무 소득도 없이, 낡은 책 한 권 들춰보았다가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교실에서 혼낸 뒤 ‘교무실로 와!’ 하고 그다음에는 ‘부모님 오시라고 해!’가 순서인데 마지막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수렁에 빠진 제자들을 건지려고 사명감을 더 불태우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가져가면 또 볼까 의심해서인지 선생님은 책을 갖다 놓으라고 돌려주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 보고 싶어서일 거라고 우리는 결론을 냈다. 카지노 게임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며 웃는 모습이 그려졌다.


선생님들은 별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사생결단을 했는지 모르겠다. 중2 때 담임 선생님은 카지노 게임은 머리가 단정한 게 제일 예쁘다며 머리카락을 ‘귀하고 똑같이’ 자르라고 했다. 한 번씩 가위를 들고 다니며 검사해 귓불 아래로 내려오는 머리를 잘랐다. 나는 귀가 위로 많이 올라붙어 있다. 귀하고 똑같이 자르면 머리카락 끝이 얼굴의 절반보다 위로 올라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개별 체형에 대한 고려는 없이 무조건 ‘귀하고 똑같이’ 자르라고 했다. 학칙은 귀밑 2cm 정도였던가? 그게 그리 중요했을까? 한 번 잘라 놓으면 머리카락이 평생 그 길이를 유지하는가? 귀밑 2cm는 금방 3cm가 되고, 귀하고 똑같이 잘라도 머리카락은 금세 귀보다 길어진다. 어느 선생님은 머리카락이 교복 칼라에 닿지 않게만 하라고 했다. 그게 더 현실적인 말이다.

그날도 귀보다 길다고 머리카락을 잘려 미장원에 갔다. 미장원 아줌마는 잘린 흔적을 보며 ‘길지 않은데,’ 했다. 미장원 아줌마도 인정하고 누가 봐도 길지 않은 머리였지만 담임 카지노 게임 인정하지 않으므로 ‘귀하고 똑같이’라는 선생님의 주문을 넣었다. 아줌마는 귀를 덮은 채 머리를 자르다가 내 귀를 잘랐다. 늘어져 있는 귓불 끄트머리를. 앗, 하는 아픔을 느꼈지만 별 거 아니겠지,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잠시 후 아줌마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귀밑으로 피가 흘러내린 모양이었다. 가위에 조금 집혔다며 피를 닦고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나는 얼마나 집혔는지도 모르면서 머리 자른 비용을 받지 않는 것만 미안해했다. 상처가 아물었을 때 귀를 본 큰언니가 복 있게 도톰하던 귓불 모양이 이상해졌다며 ‘그 눔의 미용사!’ 욕을 했다.


오른쪽 귓불 아래를 쓸어본다. 왼쪽 귀처럼 매끈하지 않고 우툴두툴한 데가 있다. 담임 선생님의 쓸데없는 집착으로 생긴 흉터다. ‘카지노 게임 부부’ 때문에 머리를 맞았던 짝은 지금도 그 이야기가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체육 선생님을 성토한다.

‘카지노 게임 부부’라는 책을 한 번 봤기로, 머리카락이 귀보다 조금 더 길기로 무슨 큰 일이 난다고 선생님들은 그렇게 난리를 쳐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을까? 아무것도 아닌데.

선생님이 제목만 보고 하도 읽으면 안 될 나쁜 책으로 단죄하자 오히려 책에 나온 카지노 게임 부부를 감싸고 싶어졌다. 일찍 카지노 게임 된 게 죄인가, 앞선 시대에는 열세 살에도 결혼했는데 학생 신분이라고 그리 지탄받아야 하나, 하는 마음이 되었다. 다 못 봐서 끝은 모르지만(선생님은 알 텐데), 글의 흐름으로 보아 그들은 학생으로서 카지노 게임가 된 환경에 잘 적응했을 것 같다. 첫 아이를 낳아 학생 부모도 되었을까? 남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둘이 사랑하며 잘 살았기를 바란다. 나는 진심으로 어린 카지노 게임 부부를 존중하고 이해한다(내 자식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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