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라락.
안방에서 수상한 카지노 게임가 난다.
사각거리는 연필 끝 카지노 게임만 가득한 집에, 유난히 튀는 듯한 카지노 게임가 내 귀를 건드린다.
나는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엄마와 선우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지만 일단 숙제를 먼저 다 끝내야 한다. 그래야 이따가 선우랑 색종이 접기 놀이를 할 수 있으니까.
분홍색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손에 꼭 쥐고 공책을 까만 글씨로 채워갔다. 또다시 들리는 촤라락, 카지노 게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방 문을 열었다. 거실 너머, 굳게 닫힌 안방 문이 눈에 들어왔다. 둘이서 뭐 하는 거지?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가 안방 문에 귀를 대어봤다. 자세히 귀 기울여보니 내 방에서 듣던 카지노 게임와 다른 카지노 게임가 났다. 슥, 슥, 슥. 이게 무슨 카지노 게임지? 오늘따라 안방에서 수상한 카지노 게임가 계속 난다. 원래는 안방에서 들리는 카지노 게임만 확인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문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이제 막 손잡이를 돌리려는 찰나, 안쪽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엄마야!”
“효진아, 뭐 하고 있어?”
“아, 깜짝아… 엄마 갑자기 왜 나와?”
“엄마가 갑자기 나오기는, 네가 갑자기 문에 붙어 있던 거지.”
웃으며 말하는 엄마의 손에는 하얀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엄마, 선우랑 뭐 하는 거야?”
“궁금하면 들어가 봐. 선우 아주 신났다 오늘.”
엄마는 바가지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방바닥에는 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선우는 하늘색 내복을 뽐내는 것처럼 엉덩이를 들고 기어 다니고 있었다.
“선우야, 뭐 하는 거야?”
선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바닥에 있는 쌀을 옷장 밑으로 밀어 넣었다. 순간, 내가 수상해했던 카지노 게임가 문득 귀를 파고들었다. 슥, 슥, 슥. 이건 선우의손이 바닥을 스치는 카지노 게임였다.
나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옷장 밑을 들여다봤다. 소복이 쌓인 눈처럼 옷장 밑에는 하얀 쌀이 깔려 있었다.
“쌀 여기다 왜 집어넣었어? 뭐 하는 거야?”
선우는 아무 말도 없이 눈앞의 쌀에만 집중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쌀 숨기기에 꽂힌 모양이다. 옷장 밑에 손을 넣어 숨어있던 쌀 몇 개를 꺼내서 선우 앞에 놓았다. 선우는 화도 내지 않고, 짜증도 내지 않았다. 그냥 다시 옷장 밑으로 쌀을 밀어 넣었다. 그때, 엄마가 들고나갔던 바가지에 쌀을 더 담아 오셨다.
촤라락.
아, 이 소리는 엄마가 바가지에 있는 쌀을 바닥에 쏟아붓는 소리였다. 엄마는 선우의 삐쭉 솟은 엉덩이를 두 번 토닥이며 조용히 웃었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방에서 들렸던 소리는 전혀 수상한 소리가 아니었다. 한 가지에 집착하면 끊임없이 반복하길 원하는 선우를 마음껏 놀게 해 주는 엄마의 따뜻한 노력의 소리였다.
선우가 어릴 적, 엄마는 선우에게 ‘안돼, 하지 마.’라는 말을 거의 한 적이 없었다.
밖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선우를 번쩍 들어 안아, 아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대신, 집에서는 선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해 줬다.
그날 선우의 행동은 자폐 스펙트럼 증상 중 하나였다. 자폐 아이들은 한 가지에 집착해 같은 행동을 계속한다. 끊임없이 이상 행동을 반복하는 것에 지칠 만도 한데, 엄마는 단 한 번도 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껏 하게 해 주셨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선우의 집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는 오래전 일이라, 언젠가 선우에게 그날의 일을 물은 적이 있다.
‘너 어렸을 때 쌀 가지고 논거 기억해? 옷장 밑에 막 숨기고 그랬잖아.’
나는 재미있는 추억이라 생각하며 물었지만, 선우는 대답을 피했다. 그날뿐만 아니라 어렸을 적 이야기 전부를 싫어했다. 아마도 어렸을 때 자신의 행동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이제, 선우에게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가끔은, 어릴 적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깔깔거리는 형제자매가 부럽다. 나도 선우와 그런 대화를 하고 싶지만, 내겐 허락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끔 어린 선우와 함께 놀던 꿈을 꾼다. 물론 꿈에서도 어린 선우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기억과는 다르게 많은 표정을 담고 있다. 웃고, 울고, 투정을 부린다. 어릴 적 선우가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나는 꿈을 통해 본다.
그럼, 지금 선우는 어떤 꿈을 꿀까?
선우야, 너도 나처럼 꿈속에서는 마음껏 웃고, 울고, 투정 부리는 어린 너를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