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생명을 떠나보내고 2년이 될 무렵,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아픔 뒤에 찾아온 생명이었기에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박사 과정 1학년 때 임신을 했고, 2학년 때 출산을 했다. 예정일보다 3주나 이른 출산으로 아기를 맞이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채로 출산을 맞이했다.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이 아기 용품을 준비했다. 남편은 아기 용품을 사서 일일이 세탁하고, 병원에 와서 아기를 보는데, 날개 없어 날지 못할 정도로 기뻐했다.
아기는 출산바로 전에 탯줄이 목에 감겨태어났을때 얼굴과 몸이 거무스레해서 엄마인 내가 보아도 예쁘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모습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 사진을 주변 지인들과 교수님들께 보인 걸 뒤늦게 알았다.
일본 대학교의 2학기가 10월 초에 시작되는데, 나는 9월 8일에 출산 후 한 달간 쉬고 학교로 바로 복귀했다. 교수님들은 충분히 회복한 후에 복귀하라고 조언했건만, 나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필사적으로 10월 초에 바로 강의에 들어갔다. 어른들이 출산 후에는 반드시 잘 쉬어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일본 병원은 아기를 출산한 그날부터 산모가 직접 2시간 간격으로 밤에 일어나 애기 젖을 먹이게 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푹 쉬질 못했다. 그리고 퇴원 후 카지노 게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카지노 게임책 1권을 사서 그 책에 기대며 아기를 키웠다.
첫 경험에다주위에 경험 있는 친지 친구가 없기에오로지 기댈 거라곤 그 카지노 게임책 1권이었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를 얻고 카톡으로 수시로 연락 가능하지만...
출산하고 3일 후에 아기를 데리고 퇴원했다. 솔직히 두려웠다. 내가 이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불안감이 행복감만큼이나 컸다.
1권의 카지노 게임책을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 책에는 내가 그은 선, 남편이 그은 선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책에 전부 실릴 리가 만무하다. 책에 있는 내용보다 없는 내용이 훨씬 많았다.
출생 후 3개월쯤 되었을 때, 아기가 감기에 걸린 것 같아 병원에 데려가고는 의사한테 야단맞은적이 있다. 병원에는 병균이 많아 아기에게 옮을 위험성이 있으니, 요정도로 병원에 데려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밤중 아기가 기침이라도 한 번 하면 우리 부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다 벌떡 벌떡 일어나곤 했다.
공부하면서 카지노 게임를 한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모유를 먹이고 게다가 조용히 사는 일본 사람들에게 행여 폐를 끼칠까 봐 아기 울음소리에 극도로 신경을 쓰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도의 긴장을 해서 피로가 더 컸던 것이다.
아기가 무럭무럭 커가고 있는 와중에, 나는체력이 딸리면서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게 되었다.
한국에서 아기를 봐주러 어머니가 일본에 오셨는데, 어머니도 연세가 있으셔서 카지노 게임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좀 무리해서 3개월간 보고 귀국하셨다. 낮에 어머니가 카지노 게임를 담당해 주셨기에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갔지만, 도서관에 앉아 책을 좀 보는가 싶으면 나도 모르게 쓰러지듯 자곤 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자다 부스스한 얼굴로 고개 들어보니 한 후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곁에 서 있었다.
"언니, 괜찮아?"
"왜, 뭘?"
"아니, 언니 이렇게 자는 모습을 처음 봐서. 많이 피곤한 거 같아요."
"그러게. 정말 피곤하네."
어머니가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 며칠 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시험일인데, 남편과 내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에 시험을 보게 되었다.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대학원생 자습실에 놔두고 후배에게 부탁한 후 시험 보러 갔다. 그후배는 우리집에 와서 아기와 논 적이 있었다.
자다 깨어난 아기는 엄마가 보이지 않아 울기 시작했고, 후배는 당황해서 우는 아기를 안고 자습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아기를 달래 보았지만 아기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아기는 4층 복도에서 울고, 나는 그 같은 위치의 7층에서 시험을 보는데 아기가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울음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시험을 대충 서둘러 보고는 교수님께 양해를 구해 교실을 뛰쳐나왔다. 엘리베이터 올라오는 걸 기다리지 못해 계단을 뛰어내려 4층으로 달려갔더니,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아기를 안은 후배도 울고 있었다.
어느 날, 한국분이신 조선어학과 교수님 연구실에 갔더니, 그 교수님께서 걱정스레 나를 보셨다.
"괜찮아요? 굉장히 피곤하게 보이는데..."
"많이 힘드네요. 매일 잠을 설쳐요. 학교에서 그냥 걸어 다니는 것도 지쳐요. 그런데 어떻게 연구하죠?" 울먹이며 말했다.
“경보 씨,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쓴다고 해도 그 논문을 누가 그렇게 열심히 읽어줄까요? 지금은 힘들어도 아이는 평생 우리 곁에 있어 줄 존재잖아요. 힘들어도 보람 있는 일이에요. 힘내세요.” 두 아이의 엄마인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피로에 찌들어 느껴야 할 행복감도 잊은 채 지내던 나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기였는데...
유학 시절, 석사나 박사 과정을 밟는 유학생들 중에는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인 경우가 많아 결혼 후 임신, 출산을 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출산 후 휴학을 선택한다. 카지노 게임와 연구를 병행하는 건 상상 외로 고된 일이었다. 휴학할 때는 1~2년 후에 복귀한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학교로 돌아온 학생은 극히 드물었다.
사실카지노 게임라는 것이 어디 1~2년으로 끝날까? 가정을 꾸리고 카지노 게임를 해야 하는 눈앞의 현실이 꿈을 삼켜버리는 것일 게다.
부부가 학생인 경우는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공부하는 이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둘 중 한 사람이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며 아내 쪽의 포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둘 다 연구를 접는 경우도 있다.
그런 선후배들의 경험을 보아왔기에 나는 휴학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힘들어도 1학기만 더 버티면 학점을 다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