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방과후 글쟁이 작가
어느덧 둘째를 출산한 지,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지도 10개월이 되었다.
2018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첫째를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2024년 따듯한 봄에 둘째가 태어나 비로소 나는 모든 출산을 끝낸 두 딸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되었다.
13시간 진통의 마침표를 찍고 첫째를 출산한 직후, 분주하게 움직이시던 간호사 선생님들이 옆에 있는 남편을 보라고 하셨다. 그의 큰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엉엉 울고 있던 남편이 대뜸 “가방 마음껏 사. 다 사도 돼”라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웃음이 나면서 출산의 고통이 잠시나마 잊혔다.
이번에는 둘째라 눈물이 나지 않을 거라고 했던 남편은 내가 한 시간 만에 출산을 했는데도 또 울고 있었다. 아니 첫째 때보다 더 많이 울고 있었다. 아기는 내가 낳고, 눈물 담당은 남편 몫인가 보다.
내 아이가 지구별에 태어나 나에게 안긴 그 순간은 절대 잊을 수 없다.
무통 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어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고, 제왕절개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무통 주사 없이 자연분만으로 둘째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나는 여러 명함 중 가장 자랑스러운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는 명함을 달았다.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을 건네주고, 또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뽀빠이 같은 힘도 불끈 솟아났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는 명함을 달게 해 준 두 딸에게 더없이 고마웠다.
(나로 말하자면) 키는 크지만, 마트 앞에서 흐느적거리는 팔을 흔들며 춤추는 인형처럼 생긴 나의 몸.
결혼식장에서도 시어머님 친구분들이 “아이고, 며느리 너무 말랐다. 너희 집 쌀 좀 축내야겠다.”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눈치 빠른 나는 그 말씀들이 “너~~~ 무 말라서 애 하나는 낳겠니?”라고 들렸다. 그래서 결혼 3개월 만에 임신 소식을 들려드리며,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분만을 하면서 또 하나를 해냈다는 기쁨을 느꼈다.
마른 체형이라 당연히 모유도 안 나오겠거니 생각하고 젖병과 분유 포터를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이 몸에도 쓰임이 생겼다. 조리원 마사지 이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10년간 만났던 산모들 중에 모유량이 Top5 안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야말로 마트 앞 춤추는 인형처럼 생긴 내 몸은 장식용이 아니라 ‘알찬 몸’이었다. 그러면서 난 조리원에서 자연스레 모범생이 되었다. 유축한 모유와 준비해 둔 젖병은 무용지물이었고, 젖병 잡는 방법도 모르고, 분유를 사 본 적도 없는 새내기 온라인 카지노 게임였다. 그러면서 시어머님의 손녀에게 ‘참젖’을 13개월 동안 먹이면서 시어머님 계모임에서 부러움의 대상인 며느리가 되었다.
분명 첫째 때는 그랬다.
그리고 첫째를 낳고는 복직하지 않고 퇴사를 선택했다.
첫 아이기도 했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육아라는 일에 기대와 설렘이 앞섰다. 아이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키워야 안정 애착이 형성된다는 이론도 나를 육아의 세계로 끌어들였고, 아기 사진을 온갖 귀여움으로 치장한 이쁜 모습도 찍을 수 있는 문화센터도 꼭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갈 직장이 없다는 것. 마음 한편이 헛헛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둘째를 낳고는 4개월 만에 복직했다.
첫째를 봐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가지고 계셨던 시어머님께서 둘째를 봐준다고 하셔서 과감히 일을 하기로 했다.
옛말에 "애 보는 것보다 밭 매는 게 낫다"라는 말처럼 일이 숨통이 될 것 같기도 했고, 육아는 경력직이니 나름 여유도 있어 복직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래서 둘째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복직 준비를 위해 잘 나오던 모유 수유도 중단해야 했고, 남편과 나는 다시 첫아기를 키우듯, 다급히 아이에게 맞는 젖병과 분유를 찾는 유목민이 되었다.
하지만 복직 첫날부터, 내 몸과 마음은 너무 힘들었다.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했지만, 아직 산후 회복 중이었던 나는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돌보느라 내 몸을 돌보지 못했다. 6년 전 첫 번째 출산을 떠올리며 “무조건 할 수 있다.”라고 무장한 내 정신은 학생이 얼굴을 할퀴고 발로 차는 등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마다 무너지기 시작했다. 단유 마사지를 여러 차례 받았음에도 여전히 모유가 나오는 부푼 가슴을 감싸고 화장실에서 유축을 하며 느끼는 서글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고, 일을 사랑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특히 큰 아이에게는 내 마음을 내어줄 여유조차도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 뭐든 해줄 수 있을 것처럼 다짐해 놓고, 아이가 잠든 후에 나는 늘 후회를 했다. 후회는 다음날 다시 반복되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는 명함을 달게 해 준 두 딸들.
이곳저곳을 다니며 치료를 받다 보니, 나에게는 신체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두 아이를 둔 워킹맘으로서의 연습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했다.
사 남매를 키운 친정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비하면, 요즘의 나는 참 뽀시랍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밤도 “내일은 더 밝은 미소를 건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되어야지”라고 다짐해 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는 대체 불가능한 자리에서 나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어주고 감사하게 해주는 이 자식들아,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자리에서 명함 잘 지킬게. 고마워.
*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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