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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친꿈 Nov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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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취준생의 하루하루

이번주는 후다닥 지나간 느낌이다. 나는 이제 실습 기관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나보다 하루 먼저 실습을 시작한 나와 같은 처지의 실습생이 있었다. 그분은 내가 실습 기관에 있는 기관 직원들, 클라이언트와 같이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 옆에 와서 항상 끼려고 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클라이언트와 친해지는 것 같으면, 그분은 내 옆으로 와서 그 클라이언트와 얘기하는 것에 끼어들거나 또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클라이언트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실습 기관에 10-20명 정도 되는 클라이언트가 항상 있어서 내가 얘기하는 클라이언트 외에도 케어가 필요한 클라이언트 많았다. 그런데 굳이 내 옆으로 올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굳이 와서 내 주변에서 항상 얘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이 드냐면 내가 친한 들을 클라이언트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모든 클라이언트들과 고루고루 친해지면 물론 좋지만 체력의 한계도 있고 단순하게 클라이언트와 내가 성향이 좀 맞는 부분이 있으면 특정 클라이언트와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건데, 그 실습생은 나와 유독 친한 클라이언트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빼앗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 실습생은 나와 친한 클라이언트와 더 친해지고 나중에 그 클라이언트와 내가 서먹해지고 멀어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나는 보통 그 실습생이든 다른 사람이든 누군가와 대화할 때 끼어들지 않는 게 에티켓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서로 잘 얘기할 수 있게 자리를 피해주기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 실습생이 나에게는 좋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기관 직원과 실습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할 얘기가 있어도 얘기만 해도 꼭 끼어들었다. 결국 클라이언트든 기관 직원들이든 다 그 실습생이랑만 주로 눈 마주치고 대화하고 난 허수아비처럼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라서 소외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난 말 수도 적다 보니 필요한 말만 하고 스몰 토크를 잘 못하는 편이다. 대신에 상대방이 말할 때 더 잘 말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리액션은 잘하는 편이지만 전반적으로 나는 자신감이 부족하다 보니 더 말을 잘 안 하게 되었다. 그 실습생은 말도 엄청 엄청 많으시고 말도 조곤조곤 잘하는 편이 이라서 나는 그분께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실습생이 내가 했던 말을 다른 기관 직원에게전할 때도 왜곡해서 말하는 것도 보았다. 그 실습생이 내가 했던 말을 과장해서 잘못했다는 듯이 기관 직원에게 말해서 내가 정정해서 그게 아니라고 다시 말하니까 기관 직원이 내가말한 게 맞다고 그러시는 사건이 있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업무 분담할 때 그 실습생보다 노동 강도가 센 일을 하는데 내가 실수한 부분을 과장하듯이 말하고 기관 직원이 주변에 있을 때 갑자기 날 혼내듯이 훈계하듯이 말했다. 그 실습생은 나보다 하루 차이로 먼저 실습했을 뿐인데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듯이 얘기하니까 기분 나빴고 수치심이 들었다. 그분은 본인이 관심을 독차지해야 하며 경쟁심도 많고 질투도 좀 하는 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들이 다 아니라며 부정하고 내 말을 받아친다. 내가 사람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대방을 나쁘게 보기 싫고 좋게 지내고 싶은데 그 실습생이 점점 싫어져서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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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직원 중 한 분과 실습생이 서로 많이 친해진 것 같아져서 심장이 뛰고 무서워졌다. 나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과거 경험이 투사되어 단순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서 그분들이 나를 싫어하고 배척하고 따돌릴까 봐 무서워진 것이었다. 예를 들면 앞으로 둘이서만 친하게 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늘한 느낌으로 심장이 쿵쾅되었다. 기관 직원 한 분은 어제는 내 눈을 잘 마주쳤는데 오늘은 거의 마주치지 않고 날 어색해하셨는데 내 속에서는 '저 사람이 날 역시나 싫어하게 되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이 날 싫어한다고 느꼈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노력을 아예 안 한다. 한번 싫어하면 계속 싫어한다는 관념이 있어서다.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도록 노력하면 그 상대방이 날 더 우습게 보고 이용하면서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이 생각을 하면서 나와 친동생과의 관계가 떠올랐다. 나는 동생을 많이 귀여워했어서 동생이 잘못해서 잘못했다고 사과를 안 하더라고 용서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동생이 날 싫어한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내가 동생과 싸우는 상황을 무마하려고 동생에게 좋게 풀려고 하는 모든 시도들이 무조건적으로 다 안 통했다. 오히려 동생은 내가 본인을 잘 대해주는 걸 즐기고 나를 하찮고 만만하게 대하면서 결국은 상황은 상황대로 더 악화되면서 WIN-WIN이 아닌 LOSE-LOSE가 되는 상황과 같은 악순환이 항상 똑같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오랜 기간 동안 학습되어서 ‘한번 날 싫어하는 사람은 다시는 그 마음을 되돌릴 수 없고, 난 무시만 당하고 그렇게 상대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내 노력들은 이용당하기만 할 것이다.’라는 관념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첫 직장에서 누군가가 날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면 나는 그 사람과 대화로 관계적인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현상 유지로서 상황을 내버려 둔 뒤에 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봐주는 다른 사람과 더 잘 지내려고 했었다. 아무튼 동생과 나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내가 애를 써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절망감, 무력감이다. 나는 아직도 '날 싫어하는 사람은 끝까지 날 싫어한다'라는 관념은 객관적인 사실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날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에너지 덜 들이고 날 좋아하는 사람한테 상대적으로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실습 기관에서 실습생에게는 상대적으로 에너지를 쓰지 않고 나를 좋아해 주는 클라이언트와 기관 직원 곁에 있는 편인 것이다. 날 싫어하는 사람한테 잘해줬다가 그 사람이 마음을 바꿔서 다시 날 좋아해 준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답답해서 이 얘기를 엄마한테도 예전에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날 답답해하시면서 엄마는 예전에 직장에서 엄마를 싫어했던 사람이 나중에 자신과 같이 여행 다닐 정도로 친해지게 되었다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내게 말씀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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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고등학생일 때 아빠에게 내가 맞을 뻔했지만 엄마가 그것을 막다가 대신 맞아서 엄마가 온몸을 경련 일으키실 정도로 아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께 한밤중에 전화 걸어서 우리 집으로 오시게 했다.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외할머니와 엄마는 거의 만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았기에 외할머니를 부를 수는 없었다. 내가 너무 무서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기 전인 2시간 동안 정말 무서움을 감히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는데 할머니가 오시고 나서 엄마도 진정되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었다. 할머니가 엄마를 돌봐주면 되었으니까 나는 내 방에서 할 일 하고 다음날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경험은 당시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무서웠고 당시의 내가 '이대로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는 게 기억이 났다. '만약 그렇다면 난 아빠만 부모로 남게 되면 ‘난 이 세상에서 버려진 거나 다름없다.’, ‘이제부터라도 나 혼자서의 힘으로 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라는 불안감을 감당했어야 했다. 엄마 한 명만 없어져도 나에게는 부모님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나에게 부모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난 어렸을 때 더하기, 빼기, 한글 받아쓰기 심지어 한글을 배우는 것조차도 아빠한테 배운 적이 없었다. 아빠는 날 갑자기 때리거나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었기에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아빠와 관련된 다른 경험도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가 갑자기 줄넘기 줄로 내 온몸을 꽁꽁 묶었었다. 나는 그 당시에 하지 말라고 엄청 울부짖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아빠는 정말 즐겁다는 듯이 내 손목까지도 줄넘기 줄로 꽁꽁 묶었고 나는 울고 화내고 싫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도 듣지 않았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는 동생이 있었지만 동생도 아빠 옆에 와서 내가 정말 싫어하든 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빠와 함께 낄낄 웃으면서 진심으로 그 상황을 즐거워했다. 동생은 더 묶으라고 신나 하면서 아빠에게 말했고 아빠도 정말 즐겁다는 듯이 나를 묶었다. 난 아직도 그 아픔이 기억날 정도로 그때 몸이 아플 정도로 묶였다. 싫다는 말도 수도 없이 했는데 아무도 들은 체도 안 해서 벽에다 외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빠가 내 몸을 꽁꽁 묶은 줄넘기 줄을 풀어주었을 때는 아무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 들었고 아빠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기에 줄넘기 줄을 풀어준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고마워해야 될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빠와 동생은 이 사건을 이젠 기억도 못 할 것이다. 내가 줄넘기 줄에 묶였을 때는 가슴이 울분에 찬 듯한 느낌, 억울하고 마냥 슬픈 느낌,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 아빠와 동생이 너무 밉고 그 둘을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빠와 동생은 그냥 네가 괴로운 걸 몰랐을 뿐이고 그들은 그저 그 순간에 본인들이 즐거운 걸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빠와 관련된 경험을 떠올릴 때 자꾸 생각나는 엄마의 말 중에서 반복적으로 생각나는 게 있다. 엄마는 내가 아기였을 때 아빠가 내 입에 본인의 발가락을 넣었다면서 내가 다 크고 나서 그 말을 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입에 아빠는 본인의 더러운 발가락을 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빠는 헤비스모커에다가 잘 안 씻고 일주일에 한 번 머리 안 감으면 다행이고 물론 몸도 아예 안 씻을 정도로 정말 더럽다. 그런데 내가 다 커서 엄마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크게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의문이 생겨서 그 점을 여쭤봤더니 아빠가 엄마 없이 나 혼자 있었을 때 아빠가 본인의 발가락을 내 입 속에 넣어보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아빠가 엄마에게 전한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당시에 아빠가 그랬다는 거에 너무 크게 충격받아서 며칠 동안 넋이 나갔던 것 같다. 역시나 나는 태어날 때부터 존중받지도사랑받지도 못했다는 느낌이 쏟아지듯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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