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다는 것은 꾸밈이 없다는 것이고 단순하다는 건 어설프지만 깔끔하다는 것이다. 누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난 순수하다기보다 단순하다. 간혹 나의 단순함을 순수함으로 오해한 친구들이 날 보고 순수하다 한다. 나도 나 자신을 솔찬히 꾸민다. 하지만 그 행위가 너무도 일차원적이어서 순수해 보이는가 싶다. 아무래도 나의 두툼한 입술 밖으로 나오는 언어가 단순함을 순수함으로 포장하는 듯하다.
오늘은 직장에서 후배와 마주 서서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내가 후배의 옷을 보고, 옷이 참 특이허네잉. 포케트가 있어!라고 한마디 했다. 후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씩 웃으며 질문 같은 대답을 했다.
- 포켓트요?
- 응. 포켓트! 근디 왜 웃어? 아! 봉창인가?
- 아니...... 포켓트란 말을 오랜만에 들어봐서요. 아버지한테서 옛날에 들어봤던 단어거든요. 포켓이라고 안 하고 포켓트라 해서요.
후배의 맨트가 끝나기 무섭게 우린 흐른 늦가을 하늘에 웃음을 보탰다.
가을 색이 더욱 진한 아침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언어는 7080인 듯하다. 단순함을 순수함으로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언어다. 간혹 본의 아니게 단순함은 피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1996년 12월 겨울이었다. 지금 다니는 직장 건물이 당시에는 '시스템공학연구소'였다. 난 전산 연구생 신분으로 40명의 동기와 전산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단 한 번도 변기에 휴지를 넣어 본 적 없는 단순한 내가 화장실에 가서 큰일을 봤다. 깔끔하게 밑을 닦고 휴지를 버리려 하는데 휴지통이 없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 유행했던 문구는 이랬다. 휴지는 휴지통에! 결국 머릿속은 혼자서 우왕좌왕했고 난 빠르고 단순한 판단을 빛의 속도로 마쳤다. 휴지를 들고 강의실로 갔다. 아팠던 배가 가라앉고 속도 편해서인지 발걸음도 가벼웠다. 난 휴지를 강의실 뒤편 휴지통에 넣었다. 말이 휴지통이지 폐지를 담는 빈 상자였다. 잠시 후 수업이 시작되고 다시금 쉬는 시간이 되었다. 친구들의 코가 벌렁벌렁 움직이더니 급기야 상자 주변 아이들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 야! 어디서 똥냄새 안 나냐?
- 응. 그런 거 같어. 너 방귀 뀌었냐?
- 아니!
난 한쪽 구석에서 카지노 쿠폰한 모습으로 잠자코 있었다. 진실을 밝히는 순간 몰매를 맞을 게 뻔했다. 지금에 와서 밝힌다. 얘들아, 그땐 미안혔다. 내가 너무 카지노 쿠폰혔지? 좌우당간 솔찬히 미안혔다잉! 으하하. 아래 화장실 사진은 당시에 빠른 판단을 내렸던 그곳이다. 아마도 3 사로에 있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단순함은 무모함으로 코 평수를 넓게 만드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지 십 년이 훌쩍 지났다. 그때 강의실에 함께 있던 친구 중에 재윤이와 성수는 지금도 만난다. 29년을 유지한 인연이다. 조만간 만날 기회가 올 것 같다. 다시 한번 더 정중히 사과하고 그날 카지노 쿠폰 퍼졌던 향기를 기억하는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