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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희 Apr 11. 2025

가면 假面

속뜻을 감추고 겉으로 거짓을 꾸미는 의뭉스러운 얼굴을 하다.


아침 여덟 시,
출근길에 선 나는
이미 ‘괜찮은 카지노 게임’이다.

말수는 적지만
제 할 일은 척척 해내고,
누군가 서툰 결과물을 내밀면.


“오~ 멋진데”라고 치켜세워주는 카지노 게임,
급한 결재가 올라오면
조용히 마감 시간보다 먼저 처리하는 카지노 게임,
조직 안에서 다들 눈치 보며 기피하는 일에는
“내가 할게”라고 나서는 카지노 게임,
안도감의 표정으로 손을 잡는 카지노 게임들의 미안함에는 "괜찮아, 나 일 잘하잖아!"라며 유쾌하게 웃는 카지노 게임,
나는 이곳에서 그런 카지노 게임이다.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한랭해진 회의분위기를
모두가 유쾌한 가벼운 농으로 전환시키고,
그마저도 어려워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죄송하다고 말하는 카지노 게임,
어찌 보면 만만해 보일만도 한데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카지노 게임,
잘 웃었고
말도,

시간도,

잘 나누었고,
무엇보다 그늘이 없는 카지노 게임이었다.

나는 자주 고개를 끄덕였고,
눈을 마주쳤고,
거의 항상
“괜찮아요” 또는 "좋아요"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이 오면,
카지노 게임들보다 조금 일찍 혹은 조금 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식당에 모일 때
나는 혼자 밖으로 돌았다.

그리고는 그늘만 골라 걸었다.
나무가 늘어선 좁은 인도,
빌딩의 그림자가 어깨를 덮는 골목,
냉풍기가 돌아가는 기계실 뒤편,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땐 어딘지도 모르는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곤 했다.

나로 숨 쉬는 시간
5분, 길어야 7분.

오롯이 혼자인 시간.
물도, 전화기도, 지갑도, 카지노 게임도없는
가면을벗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


그저 그림자만 따라 걸었다.
그림자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카지노 게임처럼,
땅에 붙은 발자국처럼,
그렇게 걸었다.

그때의 나는
사라진 카지노 게임이었다.
비로소 보이지 않는 카지노 게임이 되었다.

한계치에 다다를 때면 퇴근시간이 되었다.
차에 올라타 문을 닫는 순간
몸 안에서 무엇인가
‘쓱’ 하고 떨어져 나갔다.

하루 동안 쓰고 있던
웃음과 정확함과 공손함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새까맣게 선팅된 차 안에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마저

봐주기가 어려웠다.

나는
신경질적인 공벌레가 되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숨소리보다 심장박동소리가 더 가까운 가슴에 귀를 대고
몸을 말았다.
조용히 나로 돌아갔다.

그렇게 고개를 들면 집 앞이었다.
문을 들어서면
나는 다시
공벌레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나에게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그 일은
나를 꺼내 카지노 게임들 앞에 내놓는 일이다.
8시간을 위해
16시간을 충전해야 했다.
그 시간마저도 모자라 토하기 전까지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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