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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7. 2025

착한 무료 카지노 게임(10:1-42)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가는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집단과 집단이 전쟁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예수는 사역의 활동 범위를 넓히자마자 집단의 배척을 받게 된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간의 오래된 앙금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삶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 그만큼 집단의 견제를 받기가 쉬워질 수 있다. 집단 간의 갈등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집단은 타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생산해 낸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냉혈한이며 선을 행하지 않는 자로 여겼다. 그들은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무료 카지노 게임들이라고 다를 없었다. 그들은 예수를 배척했고 적대시했다.


이런 일을 겪었던 예수에게 유대인 율법 학자가 찾아왔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율법에 뭐라고 적혀있습니까? 선생님은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했습니다"

"옳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예수의 말은 들은 율법 학자는 자기의 올바름을 내세우려는 마음으로 예수께 다시 물었다.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이 질문은 예수를 곤경에 빠뜨릴 만한 질문이었다. 예수가 사마리아인도 이웃이라고 말하면 그는 사마리아인들의 악행을 수없이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가 유대인을 이웃으로 한정한다면 그는 왜 유대인의 관습을 따르지 않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타 무료 카지노 게임을 혐오하고 내 무료 카지노 게임을 옹호하려는 사람들은 늘 이런 관점을 견지한다. 타 무료 카지노 게임을 배척해야 하는 근거를 수없이 쌓아 놓고, 내 무료 카지노 게임을 옹호할 만한 이유도 수없이 쌓아놓는다. 심지어 근거가 부실하다 해도 상관없는 예도 있다. 어떻게든 타 무료 카지노 게임을 배척하고, 내 무료 카지노 게임을 옹호하는 일에 열을 올린다.


그때 예수가 착한 사마리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도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죽어가는 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사마리아인.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인가?


나사렛에서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를 찾아왔을 때 예수는 말했었다. "누가 내 가족입니까? 내 가족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에 예수를 따르겠다고 말한 자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예수를 따르겠다고 말한 자에게 예수가 말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억누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희생을 강요당하고, 얽매인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 무료 카지노 게임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할 때 개인은 자유를 빼앗긴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개인을 규정할 수 없다. 개인은 무료 카지노 게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신의 형상이다. 창조주가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데 누가 사람을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니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개인을 판단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특정 집단에 선한 것이 없다고 단정 짓는 일은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 신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건 사람이 여전히 신의 형상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도 선을 행할 수 있고, 유대인도 그렇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도 신이 기뻐하는 일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웃이 된다는 건 그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예수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자, 예수는 일흔두 명의 제자를 파송한다. 그들은 어느 집에나 들어가 평화를 전했다. 어떤 집단에 소속된 사람인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따져보지 않고 그렇게 했다. 그들은 타인이 베푼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느 도시에서나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들을 배척한다면 먼지를 털고 나왔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떤 호의도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억지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누구인지,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 다른 집단에 소속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신의 자녀가 신의 자녀를 만난다. 신의 자녀들이 서로 만날 때는 평화를 선언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며, 사랑을 나눈다.


내가 마리아와 같이 신의 편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사랑하며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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