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카페의 구석자리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이곳에서 절기 편지를 시작했습니다. 일 년 동안 편지를 쓰며 날씨와 계절을 온전히 통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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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채운 건 오해와 외로움, 착각과 편견, 미움과 그리움, 슬픔과 어리석음, 상처와 회복, 나와 당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이야기,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 나는 겁이 많은 사람. 그래서 가끔 용감해집니다. 매우 용감한 사람은 눈치챌 수 없는 한 걸음의 용기를 낼 때가 있지요. 갇혀 있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문이라도 두드려야 합니다. 계십니까.
- 최진영 '작가의 말' 『어떤 비밀』 (난다, 2024)
그래서, 카지노 게임 추천전략이 도대체 뭐냐고 물으신다면(이렇게 질질 끌다가 이제야) 짧고 굵게 대답하겠다.
[도서관과 절기]다.
우리 도서관은 사실상 거의 매달 무언가를 한다. 크게는 단오행사나 마을 축제를 하고, 일상적으로는 북토크나 각종 교육, 동아리 활동 등을 하고, 작게는 셀 수 없도 없다(진짜임).
이번 겨울 방학만 봐도 아이들이 매일 나와 문해력 수업을 하고, 일일 수학을 하고, 청소년들은 고전 소설 읽기와 논술 잡지 읽기를 카지노 게임 추천. 또 그 사이사이 성인 인문학, 청소년 인문학 수업이 있고 바이올린 동아리가모여 연습을 카지노 게임 추천. 또한 과학 만들기 특강도 했고,키링바느질로 만들기도 카지노 게임 추천. 최소한의 수업료를 받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것들이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그때그때 닥쳐서(?) 카지노 게임 추천. 크게 방향성을 잡고, 일 년을 계획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쳐내듯 막(그런데 '잘')카지노 게임 추천.
그렇다면, 이걸 체계적으로 다듬어도서관을잘 표현할수 있지 않을까. 뭔가 크게 방향을 잡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걸 잘 담으면 의미 있는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책이라는 것이, 기획이라는 것이. 세상에 없던 그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한 끗 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근데 그 '한 끗 차'가 사실 전부다. 흔히 말하는 불가능하지만모두가하고싶어 하는방향성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하고,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고, 익숙하지만 또 새로운 것-에 맞는 '한 끗 차'. 그것에 딱 맞는 것이 '계절과 날씨'. 즉 절기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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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부터 '절기'를 떠올렸던 건 아니다. 내가 관장이 될 줄 몰랐던 시절(관장 뽑기 약 한 달 반 전), 나는 최진영 작가의『어떤 비밀』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날이 추웠다.쌀쌀카지노 게임 추천.제법 두툼한재킷을 입긴 했지만, 추웠다. 옷깃을 여몄다. 집으로 돌아가 스카프라도 하나 할까 했으나 시간이 없었다. 20분 간격인 광역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그날은 작업 중인 책을 위한, 마지막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광역버스를 타고, 강남역에 내려 다시 2호선을 타야 카지노 게임 추천. 강남역에 내리니 12시. 해가 떠 있는데도 바람이 차다. 다행히 지하철 안은 한산하다. 자리를 잡고,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경험상 인터뷰 직전에는 너무 인터뷰 생각에 골몰하기보다는, 딴짓을 하는 것이 좋다(물론 이는 충분히 인터뷰 준비가 됐을 때의 이야기다).
인터뷰는 대화다. 어제까지 나는 각종 루트를 통해 그에 대해 최대한 공부카지노 게임 추천. 제대로 묻고, 최대한 잘 듣기 위해서다. 사실, 사람들은 알고 보면 모두 매력이 넘친다. 하나하나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정말 나 같은 하찮은 이가, 이런 대단한 이를 만나도 될까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샘솟는다. 내가 만날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명하거나, 어떤 분야에서 대단히 성공해서가 아니다(물론 그런 분들도 많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나태주 시인의 유명한 시구처럼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았'기에 그렇다. 아,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이들이여.
그래서 가는 동안은 딴짓이 필요하다. 인터뷰하러 가서 너무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건, 앞에 앉은 이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팬미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적절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가급적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나의 경우는 아이템과 직접 상관없는 책 읽기를 가장 선호카지노 게임 추천. 특히 지하철이라면 더 좋다! 규칙적인 흔들림과 익명의 시선(아무도 나를 보지 않으나, 모두가 보고 있는 이런 장소. 대표적으로는 카페가 있다)이 최적의 독서 환경을 제공한다. 대학 시절 나는 환승 없이 지하철 편도 50분 거리를 통학했는데, 그 시간 덕분에 나의 독서의 질과 양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날 내 손에 들린 건 내가 모시는(?) 작가님 중 한 분인, 최진영 작가의 신작 산문 『어떤 비밀』이다.『어떤 비밀』은 최진영 작가가 쓴 절기 편지와 그에 대한 작가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나는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모두 읽었다. 작가님의 문장을, 소설 속 인물을, 주제 의식을, 이 모든 것을 통해 냉철하지만 끝끝내 '사랑'을 놓지 않는그의소설들을 추앙카지노 게임 추천. 이번 에세이는 그 소설들의 이면을 보여준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책을 넘겼다. 그날도 그랬다.
그러다 갑자기, 덜컥거리며 주위가 밝아졌다. 눈을 들어보니, 2호선의 지상구간, 당산역이다. 책에서 튕겨져 나와 현실을 본다.앞사람 머리 위로 햇빛이 들어와 후광이 둘러져있다. 창밖은 황량한 느낌인데, 의자에 고인 빛에는 온기가 감돈다. 그때 방금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입동, 땅속에서 잠들어 있던 겨울이 천천히 일어나고 있을 거예요."(p266)눈이 번쩍 떠졌다. 이건 계시다(역시, 오 나의 작가님이다). 핸드폰 달력을 봤다. 놀랍게도, 오늘이 입동이다. 아침부터 왜 춥지 했는데, 왜라는 질문이 사실은 무색했다. 당연히 추워야 한다. 입동이니까. 겨울로 들어가는 구간(절기는 특정 날이라기보다는, 그 시기를 의미한다)이니까. 그런데도, 나는 하늘 한번 쳐다보지 않고, 그저 춥다고 투덜거리며 버스 시간만, 지하철 배차 간격만 보고 있었다.
그날의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사실, 인터뷰를 끝내고 오면 더 사랑에 빠진다. 그러면 또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글이 팬레터가 되면 안 되니까. 아무튼!) 지하철 역으로 가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생각해 보니 하루종일 빵 한 조각과 커피 두 잔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집중했던 인터뷰를 끝낸 뒤라, 긴장이 풀리기도 했다. 내가 사는 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긴 거리를 가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광역버스에 달린 검은 봉지(경기도민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광역버스에는 검은 봉지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고속도로에서 정차할 수없으니 급하면 저 봉지를 쓰라는 것인데... 막상 누군가(나를 포함)가 저 봉지를 쓴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상상만으로 두렵다)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포장마차가 보였다. 그래 저기다. 나의 구원의 장소. 따끈한 어묵 국물을 먹을 수 있는 곳. 내장을 따라 따뜻함을흘러 내려보낸다. 조금씩 온기와 생기가 돌아왔다. 어묵 꼬치에 간장을 찍으며, 다시 '입동'을 떠올렸다. 여전히 춥지만, 어쩐지 억울(?) 하진 않았다. 당연카지노 게임 추천. '겨울로부터 세상이 비롯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p267)는데,세상이 태어나려면 당연히 춥겠지. 이해가 됐다. 어묵 국물의 온기를 느끼며, 갑자기 내 세계가 훌쩍 커진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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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장에 뽑힌 것은 이 인터뷰가 있은 지, 약 한 달 반 후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찌나 캄캄했던지... 꼭 내 마음 같았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당연했다. 밤이 가장 긴 '동지'였으니까.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는 심정으로, 나는 목탁을 샀었다.
그러부터 또 얼마 뒤, 베란다에 서서 목탁을 두드리고, 마음을 다스리려 했으나 다스려지지 않는 어느 날. 눈이 펑펑 내렸다. 결국 아이들도 휴교를 할 정도로 많이 왔다. 날짜를 보니 '소한'과 '대한'사이.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시점이니 또 당연카지노 게임 추천.
그렇다. 너무 당연한 것을 못 보고, 못 느끼고 있었다. 꽁꽁 닫혀있었다. 닫힌 세계에 사는 나는, 나만 보고, 나만 힘들고, 내 위주로만 생각카지노 게임 추천. 바람을 따라, 햇볕을 따라 불어오는 생기를, 변화를, 성장을 나는 외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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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절기를 느끼고 마을 도서관에 리듬을 실어보자.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과 사람들에게 기대 함께 나아가자. 관장이 정말 힘들기만 한 일일까. 이토록 머리를 쥐어뜯고, 목탁을 쳐야만 하는 일일까(어느 정도는 맞.... 허허허) 이왕 마을 도서관 관장이 됐다면 활짝 열어보자. 나의 마음도, 자연도, 도서관도. 열려야 한다.
나는 그 답을 '도서관과 절기'에서 찾아보려 한다. 절기에 맞게, 도서관을 활짝 그리고 재미있게 열어보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게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문이라도 두드려야 '(p16) 하니까.
아직 (감사하게도) 정식 관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절을 뒷배 삼아 두드려보는 거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달력을 본다.
입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