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필사 :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쓴다는 것'에 대해서
자기 결정은 가능성에 대한 인지력, 즉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p15)
지금까지 우리의 사고, 소망, 감정, 기억 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달리 표현해 본다면, 자기 결정의 의미는 우리가 그것들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업입니다. (...) 그러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문학이 있습니다.
(...)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성공과 실패) 현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하는 것은 자기 결정을 추구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문하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질문의 답은 오직 여유로운 가능성의 장 안에서 여러 가지로 입장을 바꿔보는 정신적 활동을 할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앞서 자기 결정에 있어서 자아상의 서술적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았습니다. 문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 문학이, 아니 문학만이 우리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절정을 향한 드라마적 전개이며 이 부분이 자아상의 핵심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p27~29)
- 피터 비에리 『자기 결정』 (2015, 은행나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봤다. 절절하게. 이게 문학이 아니라면, 뭐가 문학일까 생각했다. 좋은 작품은 많은 이야기를 낳는다. 가족주의라는 틀이 조금 무겁고 오히려 좁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래서 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아무튼, 오늘 나는 드라마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셋째 아들, 동명의 죽음 전후 서사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셋째 아들이 사고로 사라졌다. 작고 차가운 아이를 안고 오열한다. 가족은 모두 말을 잃고 자기 탓을 한다. 큰 딸은 태풍이 부는 날 자전거를 탄 자신을. 둘째 형은 애기를 돌보지 않은 자신을. 아비는 그날 축대를 쌓으러 간 자신을. 그리고 어미(애순)는 그 모든 순간의 자신을 탓한다. 애기들만 두고 나간 것. 나가기 전에 혼낸 것. 안아주지 않은 것. 옆집 이모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 평소에 방파제에 서서 남편을 기다리게 했던 것. 그 모든 순간을....
화면 밖에서 무너지는 그들과 함께 울며, 나는 (마치 그들이 현실 속 인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에게 펼쳐질 이후의 시간이 너무 두려웠다. 상처받을까 봐 걱정됐다. 예전 방송국에서 참사 특집 방송을 만들 때 봤던 자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유족을 향해 쏟아졌던, 인간 이하의 말들, 촬영 테이프에 담겨있던 '태교를 잘못한 탓'에 아이가 죽은 것 같다며 자책하는 부모의 눈물 같은 것이 아직도 생생했다.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들을 지옥으로 몰고 가던 세상의 모진 말들이 떠올랐다. 그뿐인가. 이런 현실을 반영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 나오는 2차 가해 장면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이 회차 바로 전의 에피소드가 너무 행복했다. 새로운 배의 선장이 된 남편은 딸과 아내를 태운다. '배에 여자가 타면 재수 없다'라는 속설이 강하게 작용하던 시절이었다. 아내(애순)는 머뭇거린다. 그때 딸이 탄다. 무심코 딸을 잡은 애순은 딸의 해맑은 얼굴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네가 타면 재수 없대'라고 이 아이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걸. 그렇게 애순은 딸을 위해 자신의 편견을 부순다.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호기롭게 용왕님께 소리를 지른다.
그걸 지켜보던 나는 시원하지만, 불안했다. 삶은 늘 호락호락하지 않다. 게다가 드라마에서는 너무 행복하면 다음에는 분명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오는 게 법칙이다. 분명 애순에게 힘든 일이 닥칠 것이다. 그때 애순이 이 순간을 어떻게 해석할까. 작가가 이 순간을 다시 꺼내 상처를 주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나 지레 걱정됐다. 모진 말에 피를 철철 흘릴까 봐. 아니, 스스로를 상처 낼까 봐. 누가 뭐라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옥으로 갈까 봐.
그러나 다음 회차, 아들의 죽음이라는 가장 극한의 순간에서도 <폭싹 속았수다는 '익숙한 서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재수 없음의 금기를 명백히 깬 순간'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인과가 없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애순 역시, 그 순간을 가져와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지 않는다. 모진 말을 예사로 뱉던 시댁 식구들도, 아이 잃은 어미에게 가시 돋친 한마디를 하지 않는다. 비록 환상일지라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인간으로, 이웃으로 지킬 선이 있다는 걸. 그렇게 애순은 살아낸다. 최악으로 치닫지 않는다. 스스로와 가족을 지킨다. 기억을, 자신의 서사를 결정할 '자기 결정' 능력이 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다정함을 보여준다.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한다. 음식을 가져다 둔다. 가만히 지켜본다. 어두운 밤, 혹시나 나쁜 마음먹지 않을지 걱정한다. 마음을 쓴다. 감싼다(이 장면에서 나는 혼자, 4.3의 상흔을 봤다. 저 시절, 제주도에 살면서 4.3과 연결되지 않은 이는 없다. 상처 없는 집은 없다. 그들은 안다. 갑자기 삶을 뺏기는 처절한 심정을.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의로 함께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는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임상춘 작가가 보여주는 이런 미덕이 참 고맙고 좋다. 환상이라도 해도 좋다. 폭력적인 클리셰대로 흐르지 않는 이런 지점들이 예쁘다. 끝까지 '동명'을 놓지 않는 이야기도 고맙다. 어떤 아픔은 완치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 보듬을 수 있다. 비록 판타지더라도 '문학적 상상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꼭짓점에 문학소녀 '애순'이 있다.
애순은 시를 쓰는 몸을 가지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평생 대단한 시를 썼다거나,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도 항상 꽃핀을 품었다. 끝 모를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늘 살아냈다. 넘어져도 그때의 감정을, 상황을 해석하고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물성이 있는 '시집'이 나온 건 노년이지만, 그는 언제나 어릴 때부터 쭉, 시인이었다. 자신의 삶으로 늘 (현실에서도, 비유적으로도) 시를 썼다. 그것은 그녀 혼자의 힘이 아니었다. 가족, 이웃, 돌아가신 엄마, 의붓아버지와 재혼한 여자, 우연히 여관에서 마주친 언니... 그리고 바당. 그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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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는 <어쩌다 필사라는 동아리가 있다. 4년 됐다. 처음에는 단순한 필사로 시작했다. 이후 책을 함께 읽고, 서로에게 편지도 썼다. 자기 이야기를 돌아가며 쓰고, 지역 신문연재도 했다. 그렇게 읽고 쓰는 힘들이 모여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다(우리 마을에는 독특한 투쟁의 역사가 있다. 이는 <어쩌다 관장-스핀오프 1을 참고하시길). 어떤 이는 기사를 쓰고, 어떤 이는 자료를 정리하고, 어떤 이는 인터뷰를 했다. 사진을 모으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우리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갔다.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마을에서 한참 열심히 반대 운동을 하시다가 이사를 가신 분을 만났다. 마을책을 드렸더니 휘리릭 보셨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갑자기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도 나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그는 붉은 얼굴로 변명하듯 말했다.
"이 시간이 이렇게 기록되어 나오니까, 그때 생각이 너무 나서... 정말 기분이 좋네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붉은 눈으로 함께 웃었다.
자신의 역사를 직접 기록하는건 힘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남들이 볼 땐 흔한 문집처럼 보일지도 몰라도, 그 과정을 함께 한 이들에게는 다르게 읽힌다. 무엇보다 '지금 내 시간을 해석하고, 기억해 쓴다'라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 페터 비에리의 말 그대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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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을 자던 벌레와 개구리가 봄에 놀라 뛰어나온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추웠다. 펄펄 눈마저 왔다. 그렇지만 나는 봄의 마음을 품고 도서관으로 갔다. 화도,부담도 조금씩 내려놓았다. 일 년간 도서관에서 절기를 제대로 살아보기 위한 계획을 짰다. 각 달마다 각기 다른 운영진이 맡아서 절기 관련 행사를 해보기로 했다. 지원 사업도 도전했다.
드라마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속았수다에는 이모 공동체가 나온다. 엄마도, 가족도 없는 애숙 곁에는 항상 그들이 있다. 뭐라도 먹이고, 같이 머리채도 잡고, 백일장에 애순이 쓴 시를 슬쩍 내기도 한다. 그 서사 위에 애순의 삶이 흐른다. 든든하다.
운영진들과 함께 도서관 일 년의 계획을 짜다 보니 이렇게 다채로울 수가 없다. 각자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이 넘쳐났다. 혼자 써 온 얄팍한 계획서가 부끄럽다. 일 년이 풍요롭게 금방 채워졌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목탁을 두드려서 없애야 할 것은 화나 부담이 아닌, 나의 오만함이었다. 화도 부담도 사실은 나로 인해 도서관이 크게 변화하거나, 새로운 일을 할 수 온라인 카지노 게임고 무의식 중에 믿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미 쌓아온 서사가 있다. 기록한 경험도 있다. 그래서 도서관 스스로가 나아갈 수 있는 '자기 결정'의 힘이 있다. 무엇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이모 공동체 같은 연대가 우리에게는 있다. 각자의 삶은 사계절을 모두 지날 수밖에 없지만, 누군가 넘어져 울고 있으면 가만히 와서 슬쩍 먹을 것을 두고 갈 이웃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렇게오랫동안 함께 읽고, 쓰고, 지켜온 공통의 서사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러므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앞으로도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갈 힘이 있다.
그것도 문학적이고, 시적으로!
추신
지원사업도 선정되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