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구실하며 외치고 싶었어, 나도 실력 있다고
꿈과 희망의 나라에 다녀온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가야미디어는 잡지 회사 특성상 늘 사람으로 북적였다. 퀵 기사님과 택배 기사님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미팅 참석차 방문한 브랜드 담당자,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 외부 필자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건물 1층에는 커피숍이 있었고 지하에는 <에스콰이어와 <모터트렌드의 하우스 스튜디오도 있었다. 더욱이 매체가 5개나 있어 외근을 나가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는 에디터 선배들이 많았다. 6층짜리 건물의 밀도가 한없이 높게만 느껴졌다. 출근하지 않고 누워 있던 한적한 내 방이 그 높은 밀도와 비교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마음 한편에 막연한 불안감이 깔렸다. 틈날 때마다 채용 플랫폼을 뒤져도 에디터를 구한다는 공고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찾아봐 준다고 했지만 마냥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이나마 다시 꿈과 희망의 나라에 가고 싶어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떠났다. 처음 간 일본 여행지로 나고야를 택했던 건 조금 황당한 이유였지만, (친구가 클럽에서 사귄 일본 친구들이 나고야에 살았다) 나가시마 스파랜드무료 카지노 게임 놀이기구도 실컷 타고 나고야 명물인 장어덮밥도 배 터지게 먹었다. 나쁘지 않은 여행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모터트렌드 진우 선배로부터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 왔다.
“<모터매거진 편집장님이 한번 보고 싶다는데 이력서 보내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감사하다고, 일본 여행 중이라서 돌아가면 바로 이력서를 보내겠다고 전화를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기분 좋게 여행을 마쳤다. 집에 도착해 짐도 풀기 전에 앞서 <탑기어에 지원했던 이력서 파일부터 열었다. 바꾼 내용은 없었지만 오탈자는 없는지, 맞춤법은 틀리지 않았는지 한 번 더 검토무료 카지노 게임. 진우 선배가 카톡으로 보냈던 <모터매거진 편집장님 명함을 확인하고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편집장님. 진우 선배 소개로...”라며 운을 띄운 짧은 내용이었지만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몇 번을 망설였는지.메일 주소는 잘 적었는지, 이력서 파일은 잘 첨부됐는지, 혹여 거슬리는 말투를 사용한 건 아닌지 몇 번이고 다시금 확인무료 카지노 게임.
<모터매거진 편집장님께 메일을 보낸 뒤 진우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무료 카지노 게임. 선배는 잘해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툭 끊었다. 진우 선배는 평상시 말수가 많지 않고, 종종 ‘라떼’를 시전하며, 술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다. <모터트렌드에선 마감이 끝나면 꼭 다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식사는 2차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선배들 술자리에 따라가고 싶었던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어른들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까 넌 먼저 들어가라.”
그럼에도 존경하고 따랐던 건 무엇보다 나를 인정해 준 사람이었고, 예상치 못한 순간 드러나는 ‘츤데레’ 같은 면도 괜히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전화를 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우 선배는 내게 카톡 메시지 3개를 연달아 보내왔다.
“모터매거진은 가야미디어와는 많이 달라. 회사 규모가 작고 시스템도 여기랑은 달라. 뭐 아주 좋은 회사라고는 할 수 없어. 그런데 네 나이에 일 안 하고 펑펑 노는 것보다는, 기자나 에디터 직함 달고 일하는 게 나을 거 같다. 네가 거기 가서 일을 하든 안 하든 내가 불편한 처지는 아냐.”
“판단은 네 몫.”
“신중하라.”
자리가 없어 인턴으로 근무했던 <모터트렌드나 그토록 염원했던 <에스콰이어에 들어가진 못했다. 그렇지만 낮은 곳에서 시작하더라도 다시 도전해 볼 순 있다. 진우 선배가 말한 그대로. 인턴이나 어시스턴트 기간을 연장한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정식으로 에디터 직함을 먼저 얻는다면, 더 좋은 길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 전문지에서 시작해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가 된 성현재 선배의 사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며칠 뒤 <모터매거진 편집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9월 24일 12시 30분, 면접 일정이 잡혔다. 3호선 신사역에서 뵙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식으로 에디터가 됐다. ‘에디터 스쿨’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빨랐다. 2015년 10월부터 <모터매거진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양재동에서 1년 2개월의 시간을 보낸 뒤 퇴사했다. 다만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해피 엔딩이 아닌 책임을 굳이 찾아야 한다면 당연히 내게 있을 테지만 어디에도 터놓지 못할 나대로의 고충도 깊었다. 시간이 지나고서 그 시절을 돌이켜 볼 때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면접부터 무언가 꼬여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꼬인 실타래를 열심히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다 풀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풀 수 없는 실타래를 풀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집무료 카지노 게임 신사역으로 가려면 대화역무료 카지노 게임 지하철을 타는 게 가장 빠르다. 준비를 마치고 10시 50분쯤 집무료 카지노 게임 나왔다. 대화역무료 카지노 게임 신사역까지 3호선을 타면 1시간 5분쯤 걸린다. 대화역까지 가는 버스도 타야 하니 여유 있게 출발하지 못한 셈이었다. 늘 비겁한 말이지만 ‘하필이면’ 대화역으로 가는 버스가 ‘그날따라’ 배차 간격이 길었다.대화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11시 30분이었다. 역사로 뛰어 내려가며 15분쯤 늦을 거 같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모터매거진 편집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면접 자리에 지각이라니. 발을 동동 구르며 신사역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반대로 전화가 걸려왔다. 5번 출구로 올라오면 검은색 인피니티 Q50이 보일 건데 타라고. 첫 면접부터 늦은 나는 이유를 물을 자격이 없었다. Q50이 보였다. 호흡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BMW 행사 때문에 영종도 드라이빙 센터에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 그래요. 오늘 늦었으니까 피차 양해 좀 해요.”
택시도 아니고 처음 만난 사람 차에 탑승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편집장님은 선배 한 명이 퇴사하는 바람에 <모터매거진에 사람이 필요해진 상황이며, 진우 선배가 칭찬을 많이 하길래 만나보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어색한 분위기의 검은색 차는 빠르게 한남대교를 지나 한강을 건넜다. 강변북로에 들어섰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내일부터라도 가능합니다!”
“연봉은 2,000 정도 생각하는데, 괜찮죠? 하는 거 봐서 잘하면 더 올려줄 수도 있고.”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1일부터 출근하는 걸로 하고. 참 어디 내려주는 게 편해요? 역 앞에 내려주면 되나? 영종도로 빠져야 해서 일산까지는 못 가는 데.”
“편집장님 편하신 데 아무 데나 내려 주셔도 됩니다!”
강변북로무료 카지노 게임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로 빠지기 전 가장 가까운 역에 내렸다. 그때 이후로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용해 본 적 없는 6호선 마포구청역이었다. <모터트렌드무료 카지노 게임 인턴 생활을 마칠 때 정식 선배가 흘려줬던 연봉 정보고 자시고 고민할 새가 없었다. 2,000만 원이면 월 실수령 급여로는 인턴 때 받던 금액보다 50만 원밖에 늘어나지 않은 연봉이지만 당시 상황에선 계산할 틈도 없었다. 지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통보였으니까. 달리는 차 안무료 카지노 게임 결정된 월급 150만 원짜리 에디터의 양재동 연이빌딩 출근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회사의 개념을 버젓한 단독 건물을 사용하는 곳으로만 인식무료 카지노 게임. 여태 봐왔던 회사의 모습이 그랬다. 아빠가 근무했던 당시 마포의 건강보험공단 본사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대치동의 가야미디어도. 그런데 출근하기 전 지도로 검색해 본 <모터매거진은 예상과는 달랐다. 출근하는 날 직접 마주한 연이빌딩은 예상보다 낯설었다. 1층에는 어린이집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대형 화물차들이 ‘삑삑’ 거리는 경동택배 영업소가 위치무료 카지노 게임. 주변에는 빌라촌과 식당 건물이 뒤섞여 있었다. 일하는 데 지장은 없을 테지만 첫 직장에, 첫 출근하는, 사회 초년생의 부푼 마음을 가라앉히기엔 제격이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순 없었다. 벌써부터 실망해서는 안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목표부터 세우는 건 여전무료 카지노 게임. “열심히 해보자, 여기서 실력을 인정받고 더 넓은 판으로 가보자. 이곳은 다음 스텝을 위한 도약대다.” 연이빌딩 2층 <모터매거진 사무실의 문을 열기 전 속으로 되뇌었다. 박카스 광고에 출연하는 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천장 등이 반쯤은 꺼진 듯 마치 어르신들 바둑 두는 기원이 연상되는 <모터매거진 사무실에 들어섰다. 시야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뻘쭘하게 한적한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때마침 편집장님이 들어왔다. 편집장님은 한쪽은 구석무료 카지노 게임 김준혁 선배를 불렀고 또 다른 구석무료 카지노 게임 살림을 총괄하는 김태후 팀장님을 불러 내게 소개했다. 편집팀과 디자인팀과 경영지원팀이고 뭐고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이 <모터매거진 일원의 전부였다.며칠 뒤 편집장님 지인 중 한 분이 외부 프리랜서로 편집 디자인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태후 팀장님의 아버지가 <모터매거진의 창업자이자 오너라는 사실도.
사무실 맨 안쪽 허리 높이의 책장을 오른쪽으로 끼고돌면 나오는 자리가 내 차지였다. 아늑하진 않았어도 구석진 만큼 집중하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출근하고 맞은 첫 번째 주말에는 용산 리더스키에 방문해 레오폴드 무접점 키보드도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모름지기 에디터라면 본인 키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개똥철학’에 근거한 소비였지만 잡지사에 첫 직장을 얻은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는 제격이었다. 좋아하는 일로, 하고 싶었던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대견했다. 대학 졸업 후 공백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터매거진이 비록 근무 환경이나 연봉이나 복지에서 대기업과 견줄 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1일이면 기획안이 이미 나와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지만 <모터매거진은 마감이 다소 늦은 편이었다. 정식 에디터로서의 첫 번째 업무는 11월호 기획안 구상이었다. 새로 출시된 차종을 리스트업하고 최근에 발간된 다양한 자동차 콘텐츠를 확인하며 겹치지 않는 콘텐츠를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차마다 지닌 매력을 어떻게 해야 잘 끄집어낼 수 있을지, 각각의 모델이 지닌 값어치가 어떤 성격과 특징에 근거하는지, 표면적인 성능 외에 새롭게 발견해 낼 수 있는 특징으로는 무엇이 있는지를 '나'만의 관점으로 발견해 ‘짠’하고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내가 챙겨야 할 정체성이 기존 콘텐츠들과의 작은 차별화를 만들어내는 지점에 있다고 보였다.
사흘 정도 준비해 기획안을 완성했다. 편집장님, 준혁 선배와 함께 간략한 회의를 거쳐 최초 8개 꼭지를 배당받았고, 추후 늘어서 최종적으론 11개 꼭지에 내 이름이 박혔다. 출근한 지 닷새째 되던 날 다 함께 시승했던 쉐보레 트랙스, 르노삼성 QM3, 쌍용 티볼리를 묶어 소개하는 '소형 SUV 비교 칼럼'이 시작이었다. 자동차 전문지 에디터로 시승하고 촬영하고 취재하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그렇게 첫 번째 마감을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몇 달 전 <모터트렌드 태영 선배가 했던 말의 의미를, 이름 석 자 옆에 에디터라는 직함이 붙은 명함을 받아 들며 깨달았다.
“비싼 차 타고 연예인 촬영해서 대단해 보이는 거 같아도 결국 회사원이야 에디터도.”
첫 달 <모터매거진에서 밖을 나돈 시간은 2주 정도. 야근까지 합한다면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콘텐츠 제작 외에도 손이 많이 가는 잡무가 많았다. 기획하고 촬영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 말고도 처리해야 하는 자잘한 일과, 조직이란 위계 안무료 카지노 게임 담당해야 할 역할도 엄연했다.어깨너머로 경험해 봤어도 처음 모든 걸 혼자서 직접 하려니 버거운 감도 없진 않았다. 그럼에도 한 달, 두 달 마감을 치러 내며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동시에 에디터로서의 직업적인 기준도 세워 나갔다. 기획, 촬영, 행사, 미팅, 외고, 원고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매거진 업무를 반복하며 나만의 스타일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기획
자동차 전문지에서 차를 한대만 다루는 건 큰 기획이 필요 없다. 촬영 시안만 고민하면 된다. 어떤 모델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차와 비교해 소개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곧 기획의 시작이었다. 단순하고 단편적인 사실만으론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실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정렬하느냐에 따라 콘텐츠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차를 구입할 때 겪는 고민의 과정도 최대한 콘텐츠에 많이 담아내고 싶었다.당시 내가 첫차로 고민했던 폭스바겐 폴로, 피아트 500C, 미니 쿠퍼 S를 각각 시승하고 비교하는 연재 칼럼을 만들었던 것도 그래서다. (지금은 사라진) 네이버 매거진 캐스트에서의 독자 반응도 좋았다. 세 차종이 직접적인 비교 대상으로 자주 거론되진 않았지만, 작고 재미있는 차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기획이라고 여겼다.
촬영
서울 도심에서 달리는 차를 패닝샷으로 멋지게 찍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생각과 현실은 원래 다른 법이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선택지는 늘어날 테지만 마감에 맞춰 촬영을 끝내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비교적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담기 위해 부단히 돌아다녔다. 해외 자동차 잡지를 보며 궁금하기도 했다. 왜 유럽이나 미국 자동차 매거진 사진은 퀄리티가 좋은 걸까. 왜 국내 포토그래퍼는 그런 퀄리티를 내지 못하는 걸까. 매거진에서 포토그래퍼에게 지불하는 비용이 문제인가? 위도와 경도 차이에 따른 빛의 각도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정말 그럴까? 주어진 조건 안무료 카지노 게임 멋진 사진을 뽑아내기 위해 포토그래퍼에게 어떤 디렉션을 주어야 할지 늘 골머리를 앓았다.
행사
자동차 브랜드는 신차를 출시하면 소개 행사를 마련하거나 중요도에 따라 시승 행사를 진행한다. 자사 상품을 널리 알리기 위한 홍보팀이란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인기 차종이나 변화가 적은 연식 변경 모델일지라도 브랜드와의 관계 형성을 위해 매체에선 꼭 사람을 보내는 게 관행이었다. 매달 적게는 2~3건, 많게는 4~5건의 행사를 다녀오기 일쑤였다. 행사 기사는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우라까이’ 방식으로 작성했어도현장무료 카지노 게임 보고 느낀 나만의 시선을 최소 한 줄 이상 담으려고 노력했다. 브랜드가 자사 제품이 좋다고만 늘어놓은 보도자료를 똑같이 옮기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독자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수동적으로 브랜드에게 좋은 일만 해선 안 됐다.
미팅
홍보 담당자들은 매체와 정기적으로 자리를 마련한다. 내 첫 미팅은 당시 한국 GM(쉐보레) 홍보 담당자와의 저녁 식사였다. 술로 악명이 높았던 편집장님 탓에 베이징덕이 맛있던 경리단길 마오에서 연태고량주를 연신 들이켰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술자리는 3차까지 이어졌다. 자리를 파할 땐 홍보 담당자가 담배도 사주고 대리를 불러 비용까지 내주는 걸 보며 극한직업이다 싶었다. 동시에 이래도 되나 싶었다. ‘기자 대접’이라는 행위 자체를 혐오하게 된 계기였다. 그 뒤로는 미팅 자리에서 술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어디 가서 스스로를 지칭할 때도 기자 대신 에디터라고 소개했던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더욱이 알아야 할 사실을 전달하는 직업이 기자라면, 에디터는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를 가공해 전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기자일 수도 없었다.
외고
산업이나 기술적인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나 특정 인물이 아니면 풀어내지 못할 이야기의 경우 외부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청탁을 위해서는 필자를 섭외하고, 주제를 논의하고, 원고료를 흥정하고, 마감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네 과정 모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이럴 거면 차라리 공부해서 직접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도한 대로 원고가 오지 않아 수정을 요청하고, 일정을 지키지 않아 말을 빙빙 돌려가며 시쳇말로 ‘쪼아야’ 할 때가 많았다. 공손한 말투로 마감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건 항상 부담스러웠지만 의도한 대로, 재미있는 원고가 도착했을 때의 쾌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편집자'로서 얻을 수 있는 크나큰 기쁨 중 하나였다.
원고
주장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항상 고심했다. 그렇다면 원고가 꼭 기승전결에 맞춘 ‘통글’ 형태일 필요는 없다고, 꼭 이야기를 쪼개 소제목을 달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2015년에는 세단 형태인데 생뚱맞게 차고를 높인 ‘S60 크로스컨트리’라는 모델이 있었다. 볼보는 ‘오프로드 성능’이라는 두 단어로 차의 성격을 설명했지만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왜 세단의 차고를 높였을까? 관심을 가질 예비 고객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이 무엇일지, 그 궁금증에 어떤 답을 줄 수 있을지 나부터 묻고 답하며 시승했던 과정을 Q&A 형태로 옮겨 원고를 작성했다. 내용뿐만 아니라 원고의 형태에도 차별화를 주며 콘텐츠에 색다른 의미와 재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업무가 익숙해지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에디터로서 커리어를 내디딜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모터트렌드 선배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모터매거진에서의 세 번째 마감이 막 시작될 무렵 명함을 챙겨 들고 가야미디어로 향했다. 매체는 다르지만 같은 업계이기에 내가 만든 콘텐츠가 어떤지 선배들의 평가도 내심 받아보고 싶었다. “저 잘하고 있죠?”라며 자랑도 하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편집장님을 포함해 모든 선배가 자리에 있었다.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차마 말은 꺼내지 못했다. 가져온 명함만 한 장씩 꺼내 돌렸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지난 시간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는데 대뜸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구나. <모터매거진에 갔다던 친구가.”
“아, 네… 안녕하세요!?”
처음 본 사람의 인사에 어리둥절했다. 인수 선배는 내게 인사를 건넨 사람이 <모터트렌드무료 카지노 게임 일했던 김미한 선배라고 소개했다. <모터트렌드 과월호를 들춰보며 선배의 이름을 봤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 이름은 과월호 기사무료 카지노 게임 종종 봐왔습니다(웃음).”
“너 기사 재밌게 잘 쓰더라? 지난달에 S60 크로스컨트리 쓴 거 봤어.”
“정말요? (웃음)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봐. 행사장에서 종종 보자고.”
처음 만난 선배에게 칭찬을 다 받았다. 사무실을 나와 길을 걷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목표했던 차별화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인사치레였을지 몰라도 이제 막 에디터가 된 사람에게는 트로피가 따로 없었다. 비도 오지 않는 평범한 대치동 골목길이었지만 처음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에디터에게는 어디선가 진 켈리Gene Kelly의 싱잉 인 더 레인Singing In The Rain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내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마치 증명이라도 해주듯, 흥겨운 멜로디가 입과 귀에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