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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Apr 19. 2025

결국 카지노 게임 사장이 됐다

박건우, <서점2, 2024

카지노 게임

책을 스스로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기억상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부모님이 책 읽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언니와 늘 붙어 다녔고, 언니가 먼저 해 본 일을 따라 하며 컸다. 언니가 읽은 책만 물려받아 읽었다. 중학생, 고등학생, 무려 대학생이 되고서도 그랬다. 그런데 자꾸 따라 하다 보니 독서 체력이 올라갔고 대학교 2학년부터는 혼자 도서관에서 전공 서적 외에도 교양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도서관 냄새가 나를 설레게 했다. 짙은 회색, 암녹색, 적갈색 등의 하드커버로 다시 제본된 낡은 책이 지닌 물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 수업 대부분을 혼자 들었던 내가 공강 시간에 주로 머무는 곳은 도서관과 학생회관 2층에 자리한 교보문고가 됐다. 점점 나만의 취향이 생겼고, 그럴수록 책이 더 좋아졌다. 새 책도, 헌 책도, 신간도, 고전도 모두 좋았다. 나중엔 그림책까지 취향을 넓혔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추천하는 책을 읽는 언니가 있고, 디자인과 미술경영을 전공한 나는 디자이너와 큐레이터를 거쳐 38살에 카지노 게임 사장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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