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천 기슭에 제법 무성하게 자란 뽕나무 두 그루가 있다. 천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 시화공단 쪽으로 가다 보면 옥구3교를 지나자마자 보인다. 평소 출퇴근길에는 무슨 나무인지 모른 채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나간다. 그러다 오디가 열리는 오월 말이 되면 비로소 뽕나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번 열리기 시작한 오디는 어느새 가지마다 다닥다닥하다. 조그만 알이 포도처럼 엉긴 오디는 처음에 연두색이었다가 점차 적황색으로 영글어 간다. 그러던 것이 농익으면 까매진다. 유월에 들어서니 뽕나무는 진초록 나뭇잎과 그 사이로 보이는 오디로 울긋불긋하다.
출근길을 멈추고 잠시 짬을 내 뽕나무와 오디를 바라보며 옛 생각에 젖는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남녘 시골 고향에서는 오디를 오도개라고 불렀다. 아침마다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던 그 시절, 돈 구경이라고는 설에 받는 세뱃돈이 전부였다. 당연히 군것질거리는 그때그때 자연에서 나는 것들뿐이었다. 오도개, 삐비, 보리밥 열매, 앵두, 단수수, 참외, 감자, 무시, 고구마 등등.
집 앞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에 우뚝한 뽕나무에 열린 오도개가 익어 가면 보이는 족족 따 먹었다. 그러다 보면 손이며 입가며 옷이며 검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얼룩덜룩해진 옷을 보면 엄마는 기가 찬 표정으로 나무랐다. 그러면 할머니는 ‘애들은 다 그렇게 큰다’며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나는 키가 작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오도개를 따 먹으려고 나무에 올라가곤 했다. 그러다 미끄러져 긁히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만병통치 연고를 발라주었고 어느새 상처는 아물었다.
뽕나무에 누에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털이 삐죽삐죽 잔뜩 난 나방 애벌레만 여기저기서 꿈틀거렸다. 키가 닿지 않는 가지를 폴짝 뛰어 잡으면 나방 애벌레가 머리며 어깨에 후드득 떨어졌다. 기겁하며 몸서리치면서도 한 손으로 가지를 잡고 다른 손으로 벌레를 털어냈다.
따르릉대는 소리에 비켜서며 뽕나무 밑 도로를 보니 으깨진 오디로 거뭇거뭇하다. 바빠서일까, 공단 초입에 있어서일까? 아무도 오디를 따 먹는 것 같지 않다. 가끔 날아오는 새들이 오디를 쪼아 먹을 뿐.
그러던 어느 퇴근길, 뽕나무 밑에 세운 자전거와 한 여자가 눈에 띈다. 그녀는 하얀색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입은 20대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로 보인다. 고개를 쳐들고 천연덕스럽게 오디를 따 먹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돌아다본다.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는다. 무엇이 그녀의 발길을 뽕나무 아래서 멈추게 했을까? 어릴 적 머나먼 남방의 고향에서 오디를 따 먹던 기억?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
그녀가 떠난 뽕나무 아래서 나도 하늘거리는 초록 잎들 사이사이로 손을 뻗어 오디를 딴다. 달짝지근한 그 맛은 여전하다. 이제 여름이 깊어 가면 오디는 다 떨어지겠지. 하지만 내 어릴 적 추억도 그녀의 그리움도 무르익어갈 거야. 점점 더 달큼해지는 오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