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힘, 기억의 형태
일상의 힘, 기억의 형태
캄보디아를 오가던 나의 여행은 10년이 되었고,2019년 12월 졸업식을 끝으로 banteay prieb은 문을 닫았다. 마지막 졸업식은 여느 해 졸업식과 다르지 않았다. 진지하게 졸업장을 받아 든 학생들은 설레는 얼굴들이었다. 점심 이후엔 운동회를 하며 맘껏 뛰고 웃었다. 저녁엔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춤을 추었다. 다음날 학생들은 새벽부터 떠날 준비로 분주했다. 이별이 어색한 학생들 중 몇몇은 울기도 하고 서로를 꼭 안아 주면서 인사를 했다. 아침이 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떠났고 빈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집들이 곧 철거된다는 것이다. 장소가 사라질 테니 사람들은 돌아올 곳이 없다.
한국의 친구들은 내가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반티에이 쁘리읍에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을 돕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고 싶었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차별받는 그들이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배운 것은, 먹고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일’이었고 그것은 내가 잊고 있던 삶의 보편적인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반티에이 쁘리업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쳐 직업을 갖게 하는 학교의 의미를 너머,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집(home)의 역할을 해왔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 주었다.
30년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생활을 지켜주던 낡은 나무집에서 녹슨 못을 뽑아내니, 너무 쉽게 허물어졌다. 여기저기 집들을 해체하는 것을 보다가 뽑혀 버려진 못 들을 주워 담았다. 해체되는 집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벽이었던 나무판자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쓰던 평상 침대 나무를 모았다.
장소는 사라졌지만 그곳에 있던 일상의 기적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집은 십자가가 되었다.' 이 보잘것없는 십자가는 반티에이 쁘리읍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희망을 목격하고 함께 했다. 학생들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며 학교 내에서 종교활동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티에이 쁘리읍을 교회보다 더 종교적인 장소라고 생각했다. 신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면 신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어느 때보다 회복과 치유가 필요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반티에이 쁘리읍이 보여준 ‘일상의 힘’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희망이 되어 전해 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