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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견 Apr 25. 2025

9화 악령2

chapter9. demons 2

몰락


1945년 봄, 로마는 폭격의 상흔과 폐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이미 밀라노 근처에서 총살당해 거꾸로 매달린 시체로 발견되었고, 그의 마지막 충성자들은 무리 지어 알프스를 넘거나, 독일로 도피하려다 사살되었다. 독일 역시 패망 직전이었다. 파운드가 찬미하던 제국들은 하나둘, 흔적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도로시는 매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미군의 진격 소식을 메모지에 적었다. 가끔은 옆방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독백, 아니면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인지 모를 넋두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에즈라, 이제 그만둬야 해요.”


평상시 자기 의견을 내지 않던 도로시였다. 그러던 그녀가 방문 밖에서 애원을 하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죽었고, 로마는 폐허가 되었어요. 그리고 당신의 방송은 이제 아무도 듣지 않아요. 독일도 곧 무너질 거예요.”


그녀 등 뒤로 바닷 바람이휘몰아 치자에즈라가 있던 방문이 힘 없이 열렸다.


끼이익-


고개를 떨군 에즈라의 처연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도로시는 그의 가죽 서류가방을 바라보았다. 이미 찢어진 손잡이, 빽빽한 글씨가 쓰인 원고들. 그것은 그의 마지막 방어선이자, 믿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그것이 그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미국인이잖아요. 미군에 항복해야 해요. 파르티쟌들은당신을죽일거예요. 그전에먼저 움직여야 해요."


잠시 침묵. 그리고 파운드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마치 그것이 하나의 의식인 듯, 그는 자켓을 걸치고, 서류가방을 집어들었다.


“도로시. 오마르를 부탁해.”


오마르는 이 부부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1945년 5월 2일, 이탈리아 루카(Lucca) 인근, 깊은 올리브 나무 숲 속. 전날 밤 폭우로 진흙탕이 된 산길을 급히 오르는 남자. 에즈라 파운드였다. 그는 단정치 못한 트위드 재킷에, 손에는 묵직한 가죽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수십 편의 원고와 음성 대본이 고이 접혀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 북부 전역에는 레지스탕스(Partigiani)들이 들끓고 있었다. 파시스트로 의심되는 자는 현장에서 즉결 처형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미군이 로마를 해방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북쪽으로 도망친 파시스트 잔당과의 교전은 계속되었고, 민간인 복장은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에즈라 파운드는 연합군에 자진 투항하기 위해 길을 서둘렀고, 도중에 레지스탕스를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루카 숲 속을 지나는 순간,정식 군복이 아닌붉은 팔대(Partigiani)의 완장을 찬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 나는 미국인입니다. 미국 영사나 연합군 연락 장교를 만나고 싶습니다.”


"Fermo! Mani in alto!" ("멈춰! 손 들어!")


“저는 시인입니다. 무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한 청년이 그를 짓누르듯 밀쳤고, 다른 이는 그의 가방을 거칠게 빼앗았다. 가방에서 쏟아진 종이 더미들 위로, 진흙 발자국이 찍혔다. 젊은 대원 하나가 원고를 들춰보며 말했다.


“이 자는 무솔리니를 찬양했다. 나치의 라디오에 출연했던 놈이다.”


그러자 청년들이 흥분하며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잠깐!"


나무 뒤에서 담배를 피던 한 남성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담배를 내던지며 말했다.


"미군들이 찾던 그 놈이군."


잠시 후,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에즈라는 양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던져지듯 실렸다. 밤하늘은 별빛 하나 없었고, 엔진 소음만이 산길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새장


1945년 5월 중순, 에즈라 파운드는 미국 제5군에 정식으로 인계되었다. 미군은 즉시 그를 반역죄 혐의로 체포했고, 곧장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피사(Pisa) 인근에 위치한 미군 야전 수용소로 이송했다. 수용소는 광활한 평지 위에 철망으로 둘러쳐진 공간이었고, 수감자는 콘크리트가 아닌 땅 위에 놓였다. 그는 철창으로 된 개별 감금소, 일명 '게이지 케이지(gage cage)'라 불리는 노천 감옥에 홀로 구금되었다.


낮에는 작열하는 햇볕이 그의 얼굴을 태웠고, 밤에는 이슬이 옷과 종이를 적셨다. 빗물이 번지는 원고를 바라보며 그는 멈추지 않고 시를 써내려 갔다. 그 고통의 시간, 에즈라는 '피사 송가(Pisan Cantos)'를 낳는다.


그의 정신은 분명히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문장은 그 흔들림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철창 너머에서 보인 하늘, 맨발로 밟은 흙, 모포 없는 밤의 추위. 한밤중, 철창 안에서 그는 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낙원을 쓰려 했지만, 그 말들이 나를 배신했다. 나는 진실을 전하려 했지만, 그 진실은 독이 되어 나를 덮쳤다.” ("I tried to write Paradise. Don’t move. Let the wind speak. That is paradise." – The Pisan Cantos, Canto LXXXI)


짐승 우리 같은 곳에서 그는 계속 적었다. 손톱이 부러지고, 입술이 타들어 가도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피사의 수용소카지노 게임 사이트총 25일을 보냈다.파운드는 그의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 미군 야전 수용소의 일반 구금 구역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이곳은전범 또는 반역 혐의자로 분류된 이들이 섞여 지내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조롱과 경멸, 그리고 때때로 신체적 린치에 가까운 학대를 당했다.


동료 수감자들은 그를 “무솔리니의 괴벨스”라 부르며 식판을 엎었고, 그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누군가는 그가 잠든 밤, 침낭을 걷어차고 발로 찼고, 또 누군가는 몰래 찢은 그의 원고 조각을 구덩이에 던졌다.


“이탈리아 놈들보다 너 같은 놈이 더 역겨워.”


어떤 날은 파운드가 밥줄을 기다리다 말없이 돌아서자, 누군가가 그를 뒤에서 밀쳤고, 이마가 자갈 바닥에 찢어졌다. 군의관은 상처를 꿰매주며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왜 이리도 많은 이의 증오를 받는 겁니까?”


파운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시절 기록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몇몇 구절은 그가 훗날 'The Pisan Cantos' 후반부에 암시적으로 담아냈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


그는 혼잣말로, 혹은 꿈속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되뇌었다고 전해진다.


"They beat me because they cannot unwrite me." (그들은 나를 지우지 못하니, 대신 때리는 것이다.)


1945년 11월, 에즈라 파운드는 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는 워싱턴 D.C.의 육군 구금소에 수감되었고, 반역죄로 대배심에 회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해진 것은 단순한 법의 심판이 아니었다. 여기서도 군 간수들의 냉소와 조롱, 동료 수감자들의 야유는 이어졌다.


“파운드? 그 나치 개 같은 시인 놈 말인가.”


욕설은 날마다 쏟아졌고, 식판은 바닥에 던져졌다. 파운드는 다시 철창 뒤에서 시를 쓰려 했지만, 손에 쥘 펜도, 펼칠 종이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일 밤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보았고, 때로는 아무도 듣지 않는 허공에 중얼거렸다.


“I cannot make it cohere.” – Canto LXXXV


점점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침묵 속으로 침잠해 갔다. 주변 병사들은 그를 “미친 늙은이”라 불렀고, 조롱은 더욱 거칠어졌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그를 기억하는 몇몇 문인과 지인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아치볼드 맥리시' 같은 이들은 그의 정신 상태를 문제 삼아 법정 기소 대신 치료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결국, 1946년 1월, 법원은 에즈라 파운드가 형사재판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워싱턴 D.C. 인근의 세인트 엘리자베스 병원(St. Elizabeths Hospital) 정신병동에 강제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무렵 도로시와 아들도 국해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풍운을 품고 런던으로 떠난지 38년이 흘렀다. 23살 야심 찼던 청년은61세의 미친 노인이 되어 정신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르시시스트


그는 이 병원에서 무려 12년을 보냈고, 해마다 석방 심사를 위한 정신감정위원회가 열렸다. 절차는 반복적이었고, 항상 전담의사, 심리학자, 법의학 자문위원 그리고 FBI 요원이 포함된 혼성 평가단이 참여했다. 그들은 파운드에게 반복해서 질문했다. 때로는 유도적이었고, 때로는 조롱에 가까운 음색이었다.


“이제 자신을 파시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자신의 국적을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파리카지노 게임 사이트 로마로 이주하셨죠?”

“지금은 자신이 교화되었다고 믿으십니까?”


에즈라는 매번 비슷한 질문에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가만히 손등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들고,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젊은 정신과의사를 쳐다보았다.


“또 시작이군. 나는 변한 게 없네. 세상이 바뀌는 거야.”


그의 말은 시대착오적이고 알레고리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시적 연극성과 교묘한 반격의 언어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평가단은 그것을 망상적이라고 판단했다. 보고서에는 반복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갔다


"환자는 여전히 과장된 자기 인식을 보이며, 자기애적이고 망상적인 사고 패턴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죄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며, 자신의 이념에 대해 어떠한 후회도 표하지 않는다."
"The patient continues to exhibit grandiose self-conception, and ideation consistent with narcissistic and delusional patterns. He rejects the premise of guilt and remains ideologically unrepentant."" – Psychiatric Review Board Smmary, 1952


에즈라를만나기 위해 병원으로찾아드는 수 많은 사람들.그들이 병원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설 땐,마치 헐리우드 유명인과 독대라도 한 것 처럼 호들갑을 떨고 상기되었다.그들에게 에즈라는 더이상 반역자도 정신병자도 아니였다.


도로시는 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들을 보았다. 그녀는 에즈라를 독점하는 것이 사랑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가 올라라는 여성 사이에서 혼외 자녀를 출산했을 때 조차 항의하지 않았다. 어차피 진짜 신임 받는 건 자신이고, 자신 외엔 모두 에즈라의 도구일 뿐이라는 우월감과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야말로가장 악랄하게 착취당한 가엾은 여성일 뿐이였다.


에즈라카리스마가있었고 매혹적인 언변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자신은 추앙받아야 마땅하다 생각했으며,타인의 감정에 신경쓰않았다. 관계를 수단으로만 간주했다.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지닌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였다.


파운드에게 인간관계란 자신의 세계관을 강화시키는 도구였고, 심지어 그의 아내 도로시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세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조력자였지만, 동시에 그의 절대적 자아를 위한 하나의 부속품처럼 취급받았다.


그는 절대 후회하지 않았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자신은실수가 없고 늘 옳은 판단을 하기 때문에 탄압받는 거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현실 인지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판단의 기준은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한가, 아닌가였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그의 주변에 끌어들이면서도, 동시에 소리 없는 착취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극단주의자나음모론자들의 성격 특징 중 하나가 방어적 나르시즘이다. 그것의 패악은 악령의 빙의들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그 신념은 전염된다. 이데올로기 감염은 정신적 전염병이고 요건만 갖추면 재발되므로 박멸도 어렵다.


병원은 점점 기묘한 장소로 변해갔다. 그곳은 에즈라 대학이였고 교회였다. 비록 갇혀 있는 몸일지라도 사람들을 조종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로시 셰익스피어(Dorothy Shakespear)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찾는 이들을 분류하고 관리했다.


FBI 내부 문건에 따르면, 그가 입원한 12년 동안 병원을 다녀간 사람은 총 3,800여 명에 달했다. 도로시는 FBI의 눈을 피해 메모와 노트카드, 봉투 정리함으로 하나의 '면회자 기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종의 비공식 비서실이었다.




MAKE IT NEW


어느 날, 키가 크고 칠한얼굴의 청년과 에즈라가 밝게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멀린스(Eustace Mullins)는 그가 신경이 쓰였다.도로시에게 물었다.


친구는 누구입니까?”


“존 캐스퍼(John Kasper)예요. 에즈라는 그를 당신 만큼이나 좋아하죠.


1951년 가을, 유스타스 멀린스 (Eustace Mullins)는 도로시 셰익스피어 (Dorothy Shakespear)로부터 받은 쪽지 하나를 들고 뉴욕 (New York)의 한 주소를 찾아갔다. 붉은 벽돌 건물 사이, 철제 간판에 작은 흰 글씨로 쓰인 이름이 보였다. “MAKE IT NEW.”


그 문장은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가 즐겨 인용하던 구절이었다. 중국 성인, 공자의 '날로 갱신하라.'란격언카지노 게임 사이트 따온 것이였다. 과거 런던의 모더니즘 청년 문학가들은 에즈라의 이 표어에 열광했었다.


딸랑 소리를 내며 서점 문이열렸다.낡은 나무 바닥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서점 안은 책 냄새와 먼지로 가득했고, 진열대는 각종 극우 문헌과 에즈라와 모더니즘 작가들의시집, 금속 활자 냄새가 뒤섞인 팸플릿들로 가득했다. 고개를 들자, 한 남자가 안쪽 카운터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멀린스 씨군요.”


존 캐스퍼 (John Kasper)는 짙은 테 안경에, 검은 코듀로이 재킷 걸친 그는 전형적인 뉴요커였다. 호쾌하고 호기심이 잔뜩 묻은 표정이였다. 그는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감정이 앞서 움직이는 활동가 유형에 가까웠다. 이미 멀린스와 친구라도 된 듯 친근했다.


“도로시 여사가 보냈습니다. 책을 구상 중입니다.”


멀린스는 낡은 서류봉투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는 연방 준비제도의 역사, 그 설립 과정의 불투명성, 민간 소유 은행가들의 권한, 그리고 ‘금융 기생충’이라 불리는 엘리트 계층에 대한 자료를 차례대로 설명했다.


“이건 단순한 비판이 아닙니다. 구조를 폭로하는 겁니다.”


캐스퍼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 책, 우리가 함께 만들죠. 인쇄소는 제가 압니다. 사람들도 있고요. 우리가 이런 책을 세상에 내놓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날 이후, MAKE IT NEW의 지하 창고는 멀린스의 집필과 캐스퍼의 편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은 편집실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사이, 서점 밖 골목에서는 두 남자가 늘 그 건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연방 법무부 소속도, 명확한 조직도 아닌, '비공식 작전' 전문 감시자들이었다.


1952년, 『The Federal Reserve Conspiracy』가 자비 출판되었다. 표지는 단순했고, 인쇄 상태는 조악했지만, 내용은 충격적이였다. 책은 빠르게 우익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었고, 특히 중서부 지역의 팜플렛 서클과 백인 민병대 조직에까지 퍼져나갔다.


FBI는 즉각 대응했다. 서점 전체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었고, MAKE IT NEW에 드나드는 인물들의 사진이 채증되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 멀린스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럽게 연방요원 두 명에게 체포당했다. 명목은 '세금보고 누락 및 허위 출판물 유통' 혐의였다. 체포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루어졌다.


“유스타스 리 마빈 멀린스 씨?”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 요원이 팔을 잡고 다른 이는 서류를 내밀었다.


“당신은 연방조세법 제26조 및 통신법 위반 혐의로 체포됩니다.”


몇 주 뒤, 그는 혐의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그 석방은 단순한 법리의 결과가 아니었다. 배후에는 분명한 조율과 로비가 있었고, 그가 속한 네트워크는 이미 정치권 안팎의 거물들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확장되어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서적 출판인을 넘어, 실체를 갖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급진화


1950년대 중반, 유스타스 멀린스 (Eustace Mullins)는 단순한 음모론 저술가를 넘어 미국 극우운동의 대표 인물로 떠올랐다. 『The Federal Reserve Conspiracy』의 성공 이후, 그는 연이어 민간 중앙은행과 국제금융 엘리트에 대한 책을 펴냈으며, 그 주장은 점차 과격해지고 종교적 색채와 인종주의적 프레임을 띠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한 이론서에 그치지 않았다. 미시건 (Michigan), 텍사스 (Texas), 아이다호 (Idaho) 등지의 백인 민병대는 그의 책을 ‘교본’으로 삼았고, 그는 점차 이들 집단의 지도자급 연설가로 초청되기 시작했다. 연단 위에 선 멀린스는 날이 갈수록 공격적인 어휘를 사용했으며, “공산주의와 유대금융의 결탁”을 주장하며 청중의 열광을 이끌었다.


1953년, 멀린스는 네오 나치인 '국가 르네상스당(National Renaissance Party)'에 가입했다. 그는 당내에서 가장 젊고, 가장 학문적으로 무장된 이론가로 부상했고, 곧이어 입헌 민병대들과 연계하여 미국 내 극우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아갔다.


이제 그의 사상은 ‘파운드의 후계자’라는 정체성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대 초, 『The Biological Jew』를 통해 멀린스는 노골적인 유전적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며, 히틀러식 우생학 담론을 정당화하는 노선을 택했다. 그는 반스 리뷰(The Barnes Review)에 정기적으로 기고했고,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과 나란히 활동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는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를 넘어,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영향력은 점차 제도권에도 닿기 시작했다. 그는 한때 미국 석유산업위원회(American Petroleum Industries Committee)의 하청 정보분석가로 위장, ‘반유대주의적 여론조사 결과’를 수집하고, 내부적으로 유통할 선전 자료를 정리·배포한 적이 있었다.


1954년, 미국 하원 비미국활동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는 정기 보고서에서 유스타스 멀린스(Eustace Mullins)를 "네오파시스트 계열의 선동가"로 정하며 그의 저서와 연설 활동을 직접 언급했다. 위원회는 멀린스가 극우 네트워크의 주요 연결점 중 하나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반유대주의와 반공주의를 결합한 이념적 선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로 인해 그와 관련된 민간단체들에 대한 감시도 대폭 강화되었다.


또한, 그는 조셉매카시 (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의 비공식 자문역으로도 활동했다. 이 일로 훗날 트럼프의 변호사이자 멘토가 될로이 콘 (Roy Cohn) 보좌관과 몇 차례 만남을 가졌다.그 과정카지노 게임 사이트 상원의원들의 은밀한 동성애 스캔들, FBI 내부의 공작 문서 일부를 접했다고 한다.



현대 음모론의 씨앗


멀린스의 저작 활동은 단순한 개인의 편견이 아니었다. 그는 최고의 문인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에게 훈련받았고, 그의 이데올로기를 물려받아 이를 보다 포괄적이고 기능적인 교리로 발전시켰다. 그의 각 저서는 시대의 불안을 흡수해 하나의 해석틀로 바꾸는 '도구서(道具書)'였다. 그의 저작들은 단순히 논쟁적인 수준을 넘어서며, 미국 내 반유대주의 및 극우 네트워크에서의 영향력을 점차 확장시키는 중간 숙주(슈퍼 감염자) 역할을 했다.


1967년 『The Biological Jew』: 유대인을 ‘생물학적 기생자’로 규정하며, 유전학을 왜곡해 유대 민족 전체를 병리학적으로 비하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실재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며, 나치 독일의 인종 정책을 일정 부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멀린스는 이 책을 통해 미국 내 극우 그룹 내에서 '지적 반유대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하였다.


1987년 『The Curse of Canaan』: 성경 창세기의 함(Ham)의 저주 설화를 기초로, 인류를 '기생자'와 '창조자'라는 이분법으로 나눈다. 이 책은 기독교 근본주의와 인종주의를 결합하며, 유대인을 역사적 음모세력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백인 아리안 혈통을 ‘선민’으로 신격화한다. 많은 우파 목회자들과 민병대 리더들이 설교와 연설에서 인용했다.


1988년 『Murder by Injection』: 미국 의료체계를 통째로 음모의 산물로 규정한다. 록펠러 재단과 미국 의학협회(AMA), 공중보건부가 백신과 약물, 심지어 암 치료마저도 자본과 유대 세력의 통제 아래 조작되고 있다는 주장을 편다. 이 책은 이후 백신 음모론, 현대 의료 불신 담론의 기초로 반복 인용되었다.


1992년 『The World Order』 개정판: 프리메이슨, 로스차일드, 국제연합(UN), IMF 등을 연결해 현대 음모론의 '그림자 정부(Shadow Government)' 서사의 핵심 구조를 확립했다. 그는 세계를 조종하는 '숨겨진 엘리트'가 존재하며, 이들이 미디어·교육·경제를 통제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이후 QAnon, 민병대 운동, 극우 유튜버 및 팟캐스트에서 반복적으로 차용되었다.


ZOG(Zionist Occupied Government, 시온주의 점령 정부)라는 개념이 바로 그 세계관의 응축이다. 이 용어는 1980년대 생존주의자(Survivalist) 운동과 백인 민병대(Militia) 그룹들 사이에서 퍼졌는데, 이 개념은 단지 정부를 불신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 전체가 유대인 엘리트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절망적 확신을 담고 있었다.


멀린스의 이론은 ZOG 개념의 핵심적 기반 중 하나로 기능했다. 『The World Order』와 『The Biological Jew』는 이 서사의 '이론적 근거'로 반복 인용되었고, 극단적 생존주의자들은 이를 진리처럼 외웠다. 미국 중서부와 남부 산악지대에서 무장훈련을 하던 이들은 연방정부를 '적'으로 인식하며, 멀린스를 그들의 예언자로 불렀다.


그는 결국 테러를 실행하진 않았지만, 그가 구축한 언어는 수많은 공격의 명분이 되었다. 그가 남긴 문장은 누군가의 총구 끝에서 되새겨졌고, 그의 이름은 FBI의 극단주의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디 오더, 빌 쿠퍼, 아리안공화국군, 티모시 맥베이. 알렉스존스... 그리고 모든 혐오의 정치


멀린스는 결혼하지 않았고, 정식 주거지 없이 버지니아 (Virginia) 지역의 오래된 트레일러 하우스나 컨테이너 박스에서 홀로 거주했다.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고, 전화조차 끊긴 지 오래였다. 그는 고립 속에서 자신만의 '전장'을 유지했다. 책상에는 수십 년간 수집한 문서, 노트, 편지들이 빽빽히 쌓여 있었고, 주변은 폐쇄된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고립은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많은 음모론자들의 공통된 운명이기도 했다. 그들은 세상을 부정하고, 체제를 거부하며, 자신이 옳다는 확신 안에서 점점 사회와 단절된다. 그리고 그 말단은 종종 비극적이다. 테러리즘, 총기난사, 혹은 외딴 황무지에서의 고독사. 미국 극우운동의 많은 전사가 그렇게 사라졌다.



미끼


1958년,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는 12년간의 강제 수용 끝에 마침내 석방되었다. 워싱턴 D.C. (Washington D.C.)의 세인트 엘리자베스 병원(St. Elizabeths Hospital)에서 그는 사실상 국가가 처분을 미루고 있던 존재였다. 그러나 지식인 사회의 서명운동과 법조계 인사들의 탄원이 이어졌고, 그의 정신이 법적 판단을 감당할 수 있다는 진단이 다시 내려지면서 석방이 결정되었다.


그 석방 과정의 그림자에는 유스타스 멀린스 (Eustace Mullins)의 손길도 있었다. 그는 언론에 익명 기고를 하거나 극우 인맥을 통해 보수 정치인들에게 파운드 석방을 요청하는 편지를 돌렸다. 그러나 석방 이후, 에즈라 파운드는 멀린스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Venice)로 돌아온 파운드는 더 이상 말이 많지 않았다. 한때 수천 개의 문장으로 제국과 문명을 재단하던 그는, 이제 바다를 바라보며 침묵을 택했다. 그는 멀린스를 제자라 부르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떠올릴 때에도 “그는 너무 멀리 갔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도로시 셰익스피어 (Dorothy Shakespear)마저도 결국 그 곁을 떠났다. 오랜 침묵, 고집, 그리고 무심함 속에서 그녀는 점차 파운드의 세계 밖으로 밀려났고, 말년의 파운드는 병색이 짙은 얼굴로 혼자 남게 되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말로써 제국을 욕하고, 언어로 전쟁을 부추기던 선동가는 말년을 침묵으로 봉인했다. 그는 더 이상 쓰지 않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파편화된 문장과 무수한 해석, 그리고 비어 있는 의자뿐이었다.


그러나 파운드와 멀린스의 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그들이 남긴 사상과 문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파운드의 고전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교리'를 조직했다. 더 강력하고, 더 폐쇄적이고, 더 폭력적인 방향으로. 그의 이론은 단지 해석의 틀에 그치지 않았고, 행동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었다.


PC통신의 시대가 열리자 그의 말은 저장됐고, 복사됐고, 번역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인터넷이 도래하자빠르게 조잡한 말들이 악령처럼 퍼졌다. ‘ZOG’, ‘백신 독살’, ‘그림자 정부’, ‘일루미나티’,'카자리안 마피아', 'NWO', '딥 스테이트’, 모두남긴 언어의 변종이었다.


마치 에즈라는 악령은 영원히 죽지 않고 멀린스의 책으로 살아남아, 미끼에 걸려드는 자들을 자기 대신 영원히 정신병동에 감금시켜 놓으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멀린스가 에즈라의 떡밥을 덥썩 문 것 처럼, 음모론의 입문자라면아마이 말을처음으로듣게 될 것이다.


"너 혹시 그거 알아? FRB가 민영 은행들 소유라는 걸? 그 주인이 누군지 알면 아마 깜짝 놀랄껄?"


'이 난해한 개인, 에즈라', 에즈라의정신병동은 이념의 미로이며,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적 망상 공간이다. 그리고 그 미로의 중심에는 반유대주의 음모론이라는 토끼굴이 있다.


어떤 이들은 반딥스테이트 운동은 백인우월주의와 관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둘은 결국 음모론이란 어미 배에서 나온 썀쌍둥이일 뿐이다.


음모론에 빠진 자들은 자신이 깨어났다고 믿지만, 실은 더 깊은 환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그 뚜껑을 열면 에즈라의 환영은 당신에 영혼에 악령 처럼 부활할 것이다.


"멀린스... 여기 1달러 지폐를 봐봐. 이 피라미드와 전시안, 그리고 아래 라틴어를 잘봐봐. 신세계질서 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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