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Demons
1949년. 워싱턴 D.C. (Washington, D.C.) 외곽, 현대미술연구소(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s)의 갤러리 로비.
워싱턴 D.C.는 미국의 심장이자, 프리메이슨들이 설계한 암호화된 도시였다. 미국의 은밀한 역사를 고스란히 누적하고 있는 만큼, 범접할 수 없는 중압감과 위엄, 그리고숨 막히는 권세가 대기중을가득채우는 도시였다.
현대미술연구소의 로비는 마치 신전 내부와 같았다. 사방은 텅 비어 있었고, 천장은 성당처럼 높았다. 차가운 조명 아래 먼지가 흐릿하게 떠다녔으며, 창을 타고 흘러내린 빛은 감옥 창살 처럼 그림자들을 만들었다.
따각, 따각.
흑백의 격자무늬 바닥에 차가운 구둣발 소리가 정막을 깨고 갈라져 나갔다. 그 소리는 카트를 끌던 멀린스의 귀를 자극했다. 멀리 거인들이 내려다 보는 텅 빈 공간에서 그림을 올려다 보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어딘가 미국 여성이 아닌 듯 해 보였다. 그렇다고 관광객도 아닐 것이다. 그는 호기심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힐마 클린트를 아십니까?”
여인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런던에서 만난 적이 있지요.”
포쉬 발음. 말투에서 이미 영국 귀족 출신임을 알 수 있었다.
“유스타스 멀린스입니다(Eustace Mullins). 저도 유럽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다시 한 번 그를 훑었다. 그녀 역시 그가 유럽인이 아니라 미국인임을 금세알았다.
멀린스는 이어서 말했다. “군인이였죠. 지금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공부했지만 작가가 되려고요.”
멀린스는 유럽의 전쟁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미술과 문학을 공부한 그는 전쟁 중 행정병으로 근무했고, 제대 후 국방부 주선으로 이곳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글을 쓰신다고요? 그럼 플레밍 부부(Fleming couple)를 아시나요?”
“그럼요 네 잘 알죠. 우리 미술관의 강사로 오십니다.”
“그럼, 혹시…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 순간, 로비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멀린스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전쟁 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전쟁 후엔 반역자이자 파시스트라는 낙인찍힌 자.
“글을 쓰는 사람 모두는 그를 알죠.”
여성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는 도로시 셰익스피어 파운드((Dorothy Shakespear Pound). 그 사람은 제 남편입니다. 플레밍 부부소개로 이 미술관에 왔어요. 아마도 당신이 플레밍 씨가 말하던 그 청년인가 보네요.”
세인트 엘리자베스 병원(St. Elizabeths Hospital), 워싱턴 D.C. (Washington, D.C.) 남동쪽 외곽.
붉은 벽돌에 병원 건물은 마치검은 유령의 실루엣처럼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바람은 담장 너머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쳤고, 낙엽들은 마치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처럼 병원 앞에서 원을 그리며 돌았다. 하늘은 낮게 깔렸고, 그 위를 까마귀가 묵직하게 가로질렀다. 이곳은 단순한 수용 시설이 아니었다. 전쟁과 이념이란 미친 망령이 머무는 장소였다.
차가 철제 게이트를 서서히 통과하자,멀린스는 심장이 천천히 고동쳤고입 안은 말라붙었다. 그가 긴장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운전을 하던 플레밍 씨가 말카지노 게임 추천.
"괜찮아요. 그는 섬세하고 지적입니다. 당신을 아주 좋아할 거예요. 금세 친구가 될 겁니다."
멀리서 도로시 부인이 천천히 마중 나왔다. 그녀는 몇 가지 병원의 규칙을 설명해 줬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복도 끝에 다다르자 그들은 멀린스를 두고 자리를 옮겼다.
멀린스는 무언의 긴장을 안고 노크했다.
“컴인.”
문을 열자, 축축한 어둠과 오래된 책장의 냄새, 그리고 단정하게 정리된 침상과 책상,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침상에 걸터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그가 방문자를 돌아보았다.멀린스는그 장면이 마치찰스왕의 초상화 처럼위엄 있는 군주의 모습과같이 보였다.
“전쟁에 참전카지노 게임 추천지?이리와 앉게.” 파운드가 말카지노 게임 추천.
단 한 마디에 위엄과 자상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순간멀린스는 본능적카지노 게임 추천 깨닭았다. 자신은 이 남자를 숭배 할 것이라고.
봉인이뜯겨졌다. 이제 로마에서 들었던 단파 라디오의 애끓는 절규 소리가다시 되살아 날 것이다. 에즈라는 이 청년에게 자신의 영혼을 옮겨 심고, 이 병원을 빠져나갈 것이다. 에즈라의 복수는 미국인의 정신에영원히기생하는 악령이 되는 것이였다.
멀린스는 매주 수요일 면회를 배정 받았다. 에즈라 파운드를 만나고자 하는 인물들은 많았다. 멀린스는 큰 혜택을 받은 거였다. 그만큼 에즈라는 멀린스를 마음에 들어했다.
문학계에서 에즈라의 명성은 대단했다. 특히 런던에서의 활동으로 그는 거장 반열에 올랐었다. 훗날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작가로 인정받는 T. S. 엘리엇(T. S. Eliot) 등 많은 문인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멀린스는 거장의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에즈라의 비서 역할을 맡았다. 수감 중인 그를 대신해 외부 자료를 수집했고, 도서관과 아카이브를 드나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원고를 검토받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에즈라가 요청하는 문헌들을 조사하며 그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었다.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점차 그의 사상의 통로가 되어갔다.
처음 멀린스가 느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에즈라의 사유에 서서히 잠식되어갔다. 어느 날, 멀린스는 에즈라에게 조심스레 그의 전기를 쓰고 싶다고 말카지노 게임 추천. 그는 잠시 침묵한 후 허락했고, 멀린스는 그 순간 자신이 진정한 수제자로 인정받았다고 믿으며 깊은 감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 모든 흐름은 도로시가 설계한 질서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에즈라를 만나고자 병원을 찾았고, 그녀는 그들 사이에 은근한 경쟁심을 유도카지노 게임 추천. 그렇다. 그들이 받은 순번은 하나의 컬트가 됐고, 에즈라는 그 세계의 교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멀린스가 병원을 드나든지 3개월 정도 지날 무렵이였다. 잔디밭는 초록으로 물들었다. 그날 파운드는 1달러 지폐를 꺼내 들며 멀린스에 보여주며 말했다.
"자네 이거 보이나? 이 피라미드와 전시안. 그 아래 라틴어 문구가 보이지?"
"네 선생님. 보입니다."
“Novus Ordo Seclorum. 신세계질서. 놈들의 계획인 거야.”
'계획? 무슨 소리지?'
멀리스가 돈을 받아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전까지 숱하게 1달러 지폐를 보았지만 그 도안의 의미를 생각해보지 못한 터였다.
“자네, FRB(미연방준비위원회)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걸 보게. 발권자 표기를 보라구. 이건 미국 정부가 발행한 돈이 아니야. 유대인 놈들의 돈이지.”
"그러네요. 중앙은행이 아니네요. 준비위원회? 특이한 이름입니다."
"자네가 이걸 좀 알아내 줘야겠어"
그날 이후 멀린스는 병원과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기록보관소를 분주히 오가기 시작했다. 때론 음모의 단서를 쫓는 탐정이었고, 때론 파운드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사제 같았다.
도서관의 먼지와 씨름하던 중 그는 한 신문 기사를 찾게 된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지 1920년 6월 19일자 기사였고, 그 기사엔 1910년 조지아주 잭킬 아일랜드(Jekyll Island)에서 진행된 비밀 회의에 대한 언급이 담겨 있었다.
기사를 훝어보는 그의 얼굴은 점점 심각하게 굳어갔다. 마침내 그의 입에 외마디탄성이 흘러나왔다.
기사에 의하면, '그 회의는 정부와 국민 모두를 배제한 채, 극소수 금융엘리트들이 철저히 은밀하게 설계한 '비공식 헌장'과도 같았다. 이 모임의 결과는 3년 뒤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의 제정으로 이어졌고, 미국 경제의 심장을 민간 소수 자본이 틀어쥐는 전환점이 되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아 이거구나!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어. 이게 말이 되나? 왜 이걸 아무도 몰랐던 거지?”
'세상에 파운드가 옳았어. 그의 말이 맞았어. 우리가 속았던 거야.'
그 순간, 멀린스는 돌이킬 수 없는 경계선을 넘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모은 정보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고, 오히려 후자가 왜곡되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성은 서서히 침식되었고, 그의 내면엔 오직 파운드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쳤다.
“나는 지금껏 워싱턴의 꼭두각시들한테 속아 있었던 거야. 프리메이슨, 그리고 진짜 유대인이 아닌 자들 그들이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었어. 오히려 히틀러가 이 더러운 위선을 꿰뚫고 있었던 거지.”
그의 정신은 붕괴되고 있었다.
1952년. 에즈라와 멀린스 그리고 도로시가 여느 때와 같이 병원 마당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멀린스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했지?"
"네 스물 다섯살입니다."
"오~ 스물 다섯살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가 그 나이였지"
멀린스는 물끄러미 도로시를 바라보았다.
도로시 세익스피어 파운드. 아내라기보다 에즈라 파운드라는 세계에 사로잡힌 영혼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이제 멀린스에게도 익숙했다. 파운드가 만들어낸 자기 중심적 세계 속에서, 그들은 점점 자기 삶의 방향을 잃고 그의 궤도 안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에즈라가 말했다.
"나는 스물셋의 나이로 유럽카지노 게임 추천 갔어. 그래, 런던 찰링크로스 로드(Charing Cross Road)였지. 거기서 도로시를 만났지."
그의 말에 도로시는 에즈라를 바라보았다. 평소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는 일은 드물었다. 오랫만에 그녀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
에즈라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을 단숨에 사로잡는 묘한 마성을 지니고 있었다. 1885년 미국 아이다호 헤일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에 두각을 나타냈고, 해밀턴 대학(Hamilton College)을 우등으로 졸업한 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07년, 불과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인디애나 주의 와버시 칼리지(Wabash College)에서 문학 강사로 채용되었지만, 기숙사에 불러들인 여학생과의간통사건카지노 게임 추천 해임되었다.
그러나 파운드는 이 사건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일은 오히려 그가 미국을 떠나 유럽 문단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1908년, 스물세 살의 나이에 그는 곧 영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파운드는 문학의 중심지 런던으로 건너가, 각종 문학 살롱과 사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고전 문헌과 현대시를 아우르는 그의 탁월한 식견과 언어 감각은 곧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그는 수많은 문인, 평론가, 예술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파운드에게 평생의 후원자가 되어준 W. B. 예이츠(W. B. Yeats)와의 인연은 특별카지노 게임 추천. 예이츠는 자신이 거주하던 스톤즈 타운하우스에 그를 초대하여 함께 작업하기도 했으며, 오랜 친구인 올리비아 셰익스피어(Olivia Shakespear)를 소개해 줬다.
당시 영국은 에소테릭 오컬티즘인 신지학(Theosophy)이 문학, 미술, 철학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는데, 올리비아 셰익스피어(Olivia Shakespear) 또한 오컬트 단체인 '황금새벽회(Golden Dawn)'의 일원으로 예이츠와 함께 상징과 의식의 세계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었다. 이는 파운드가 신지학풍 잡지 『뉴 에이지(New Age)』에 기고하는 계기가 된다. 그로 인해 파운드의 명성은 전 영국에 알려졌다.
화가 클린트, 칸딘스키 모두 신지학의 영향을 받은 모더니즘 화가였다. 올리비아는 그런 런던의 예술가들의 대모와 같았고, 도로시 역시 미술을 공부하며 늘유명예술인들을 접할 수 있었다.
1909년, 올리비아는 딸 도로시에게 곧 미국의 젊은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집으로 찾아올 것이라 말했다. 스물네 살의 도로시는 이미 그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고, 유럽 문단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던 파운드를 직접 만날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실제로 마주한 순간, 그녀는 그의 존재감에 단번에 매혹되었다. 그날 밤, 도로시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들어봐요. 에즈라! 에즈라! 그리고 세 번째로 에즈라! 그는 정말 아름답고도 인상적인 얼굴을 가졌어요. 이마는 높고, 눈 위로 도드라져 있었고, 길고 섬세한 코는 작은 붉은 콧구멍으로 끝나 있었죠. 입은 이상하게도 쉬지 않고 움직였고, 형태조차 잡히지 않는 신비한 인상이었어요. 턱은 각지고 가운데가 살짝 갈라져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창백한 얼굴빛에 회청색 눈동자, 부드럽게 말린 황갈색 머리카락이 어우러져 있었어요. 눈은 크고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인상 깊었고, 손가락은 길고 균형 잡혀 있었으며 손톱은 놀랍도록 아름다웠어요."
형기왕성한 에즈라와 도로시는 빠르게 가까워졌고, 런던 사교계에서도 주목받는 커플이 되었다. 에즈라는 주변에 젊은 시인과 예술가들을 모으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학적 흐름을 이끌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미지즘(Imagism)'이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에즈라가 있었다.
1914년, 런던에서의 파운드의 생활도 변하고 있었다. 전쟁의 그림자가 도시를 덮으며 예술가들은 하나둘 흩어졌고, 문학 살롱들은 쇠락했다. 파운드 역시 생활은 궁핍해졌고, 출판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 해 런던의 겨울은 길고 어두웠고, 에즈라 파운드와 도로시 세익스피어는 전쟁 기간 동안런던의 무기력하고 피폐해진 분위기에 실증을 냈고 함께 런던을 떠날 궁리를 시작한다.
1920년. 마침내 전쟁은 끝났고 둘은 새로운 창조적 공동체를 찾아 파리로 이주했다. 승전국이었던 파리는 여전히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같은 작가들이 모여드는 예술가들의 마지막 성지였고, 파운드 부부도 그 흐름에 합류했다. 같은 해, 둘은 파리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설레는 기분카지노 게임 추천 새출발을 꿈꿨다.
한편, 패전국이 된 독일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 황제를 위해 전장에 나섰던 독일제국군 청년들은, 갑자기 공화국으로 바뀐 조국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여기에 더해, 볼셰비키 혁명으로 붕괴된 제정 러시아의 난민들이 유럽 각지로 몰려들며 공포와 혼란을 확산시켰다. 온갖 음모론이 퍼져나갔고, 그중에서도 '시온의정서'는 유대-볼셰비키 공포를 전 유럽카지노 게임 추천 확장시키는 강력한 불쏘시개가 되었다.
동시대의 젊은이들은 질문하기 시작카지노 게임 추천. "전쟁은 왜 시작되었는가? 왜 이렇게 허망하게 끝났는가?" 누군가는 이 거대한 전쟁의 공허함과 몰락에 답해야 했다. 에즈라 역시 이 질문을 놓지 못했다.
에즈라는 런던에있을 때,『뉴 에이지(New Age)』 편집장 알프레드 리처드 올라프(Alfred Richard Orage)는 파운드에게 클리퍼드 휴 더글라스(C. H. Douglas)의 '사회신용론(Social Credit)'을 읽어보라 권했었다. 은행가와 금융 엘리트들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논리였다.그후에즈라는 머리에선 이 이론이 떠나질 않았다.
더글라스의 경제학 이론에 겹쳐 당시 유행하던 '시온의정서'의 음모 이론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유대자본론'이다. 마침 유대금융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은 시오니즘을 지원하며 유대국가 건설을 외쳤다. 유럽엔 반유대주의 물결이 고조되고 있었다. 암울한 시대의 울분을 영양분 삼아, 독버섯 같은 사상들이 자라나고 있었으니 바로 파시즘의부상이였다. 에즈라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었다.
1921년. 독일 뮌헨의 맥주홀에서는 극심한 패전 후유증 속에서 하나의 극단적 운동이 움트고 있었다. 툴레협회(Thule-Gesellschaft)라는 민족주의오컬트단체는 아리안 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 이념을 퍼뜨리며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띈 인물이 있었다. 막 전장에서 귀환한 군인, 아돌프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전쟁은 왜 시작되었는가? 왜 이렇게 허망하게 끝났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유대인과 볼셰비키를 지목했다.
"우리는 전장에서 패전하지 않았다. 패전은 후방에 관료들과 유대인들의 배신 때문이였다. 그들은 혁명을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이기던 전쟁을 두고 항복을 선언했다."
맥주홀 연설장에서 히틀러는 청중을 사로잡았다. 분노와 굴욕을 온몸으로 대변해주는 이 젊은 청년에게 사람들은 열광카지노 게임 추천.
이탈리아는 더욱 급진적이었다. 전후 혼란과 경제 붕괴 속에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참전 군인과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해 1919년 '전투 파시스트(Fasci di Combattimento)'를 결성했다. 그는 거리의 폭력과 언론 선동을 무기로 삼아 민심을 장악했고, 불과 몇 년 만에 1922년 로마 진군(Marcia su Roma)을 성공시키며 이탈리아 왕국의 총리 자리에 올랐다.
무솔리니역시 유럽의 경제 불황과 모든 문제의 원인을 유대인과 그들의 혁명, 금융시스템 탓으로 돌렸고 쿠테타 이후 실제 물가가 잡히자 그것이 사실이였음 증명하듯 선동했다.
무솔리니는 불안을 질서로, 좌절을 군사적 규율로 포장했고, 새로운 '강철 같은 국가'를 약속하며 대중의 갈망을 파고들었다. 파시즘은 이제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을 휩쓸어갈 광풍의 서막이 되고 있었다.
1924년 가을,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점점 불안해지는파리정세를 떠나 이탈리아의 소도시 라파로(Rapallo)로 거처를 옮겼다. 이유는 단순했다. 파리의 생활비는 너무 비쌌고, 유럽 문단은 점점 그를 외면했다. 이탈리아는 싸고, 조용했으며, 무솔리니가 이끄는 새로운 질서가 움트고 있었다.
그들의 첫 집은 바닷가에서 가까운, 작고 허름한 아파트였다. 습기가 자욱한 방 안에서 도로시(Dorothy Shakespear)는 조심스럽게 찬장을 정리카지노 게임 추천. 식량은 거의 남지 않았고,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파운드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로시가 입을 열었다.
"에즈라, 이대로는 겨울을 날 수 없어..."
그는 그 즈음현실과 단절된 세계에 살고 있었다. 에즈라 파운드는 1920년대 중반 이미 문단 주류에서 밀려나 있었다. 포스트워(Postwar) 시대의 문학은 변화했고, 그의 실험적 시도는 낡은 것으로 간주됐다. 더구나 미국 내 보수적 정치관계자들과도 갈등을 빚었다. 파운드는 점점 고립되었고, 자신을 이해해줄 '새로운 토양'을 찾아야 했다.
이탈리아, 특히 무솔리니가 추진하는 파시즘 국가 모델은 파운드에게 매혹적이었다. 혼란스러운 자본주의 대신 강력하고 질서정연한 국가. 서구 문명의 기원이였던 로마제국의 부활. 그는 그것이 예술과 인간성을 구원할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에즈라가 올가 라지(Olga Rudge)를 처음 본 것은 작은 실내악 공연장이었다. 무대 위,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음악은 격렬했지만 정제되어 있었다. 파운드는 그 모습에서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을 느꼈다. 공연이 끝난 뒤, 올가는 파운드를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왔다.
"공연, 어땠나요?"
파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카지노 게임 추천.
"당신은 음악이 아니라, 신을 연주했어."
올가는 짧게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빠른 공감대가 형성됐다. 예술에 대한 이상, 세상에 대한 환멸. 파운드는 도로시에게서 느끼지 못한 열정과 생동감을 올가에게서 보았다.
올가 라지는 젊고 진취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파운드는 그녀를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예술의 동반자"로 여겼다. 도로시와의 결혼은 의무였고, 올가와의 관계는 열정이었다.
도로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위대한 시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도로시의 심리는 점점 종속적이 되어갔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가 필요로 하는 한 곁을 지키기로 카지노 게임 추천.
1929년, 뉴욕 증시가 붕괴카지노 게임 추천.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실업자 행렬이 거리를 메웠고, 은행들은 무너졌다.
라파로의 작은 아파트에도 그 파장은 미쳤다. 식료품 가격은 치솟고,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신문을 읽던 파운드는 탁자를 주먹카지노 게임 추천 내리쳤다.
"금융 유대 자본가들의 사기야! 세계를 조종하려는 음모라고!"
그는 점점 더 극단적인 경제 이론을 신봉하기 시작했다. '정당한 경제 질서'를 복원해야 한다는 열망은 무솔리니 파시즘에 대한 신념으로 이어졌다.
에즈라 파운드는 대공황을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금융 권력(특히 유대인 금융가들)에 의한 구조적 음모로 해석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금융 착취에 맞서는 유일한 방벽"으로 보았다. 이러한 신념은 1930년대 그의 라디오 연설과 글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1933년, 그는 직접 무솔리니에게 편지를 보냈고, 무솔리니의 사무실에서 짧은 면담까지 허락받았다. 파운드는 그 이후 더욱 확고한 파시스트 지지자가 된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세계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파운드는 침울한 라파로의 아파트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그는 분노했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그의 눈에는, 정치가들이 아니라 "금융 유대인"들이었다. 도로시는 그의 곁에서 신문을 접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남편은 더 이상 현실을 다른 눈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건 그저 또 하나의 대륙 전쟁이 아니야, 도로시. 이건 그들이 벌이는 금융전쟁이야."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도로시는 대꾸하지 않았다.
에즈라 파운드는 제2차 세계대전을 단순한 국가 간의 충돌이 아니라, 세계 금융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체제 재편 시도로 보았다. 그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민주국가들이 유대 금융세력에 조종당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해갔다.
1940년, 파운드는 이탈리아 국영 방송인 라디오 로마(Radio Rome)에 제안을 넣었다. 미국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선전 방송을 자신이 맡겠다는 것이었다. 무솔리니 정부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작은 스튜디오, 금속성 냄새가 나는 마이크 앞에서 파운드는 첫 방송을 시작카지노 게임 추천.
"미국인이여, 당신들의 나라가 팔리고 있다! 깨어나라!"
그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맹렬히 공격했다. 매 방송마다 그는 금융 음모론을 반복했고, 이탈리아와 독일의 체제를 노골적으로 칭송했다. 파운드가 제작한 방송은 1940년부터 1943년까지 200건 이상이었다. 주요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유대 금융가들이 세계를 조종하고 있다.
루스벨트는 금융 자본가들의 꼭두각시다.
민주주의는 부패하고 실패한 제도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새로운 문명의 지도자다.
그의 방송은 미국 정부에 의해 전시 선전물로 분류되었고, FBI는 모든 내용을 기록해 반역 혐의를 쌓기 시작했다.
1941년 12월, 진주만이 공격당하고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소식은 라파로에도 순식간에 퍼졌다. 도로시는 창가에 서서 말카지노 게임 추천.
"이제... 모두 변했어."
그러나 파운드는 오히려 더욱 광적으로 변카지노 게임 추천.
"이건 전 인류의 전쟁이야! 저 악마들을 몰아내야 해!"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앙되었고, 방송은 더욱 극단적인 언어로 물들어 갔다.
1944년 6월,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상륙카지노 게임 추천. 유럽 대륙의 균형은 급격히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다. 이탈리아 역시 연합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라파로의 거리도 변해갔다. 기운 없는 군인들, 긴장한 시민들, 그리고 무너져가는 건물들. 스튜디오에 선 파운드는 여전히 외쳤다.
"비겁한 자들의 승리가 아니다! 미국은 깨어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절규에 가까웠다. 마이크를 붙잡은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도로시는 스튜디오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이 어떤 세계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1944년 이후, 파운드의 방송은 점점 이성적 논리를 잃어갔다. 그의 언어는 분노, 절망, 비난으로 가득 찼다. 그는 전쟁의 현실을 부정했고, 무솔리니 체제의 몰락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이미 "미친 시인"(the mad poet)이라는 별명이 돌고 있었다. 그는 고립되었고, 자신의 확신 속으로 더 깊이 침잠해 갔다.
(악령2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