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3. into the Storm
2017년 1월. 워싱턴의 FBI 본부 국장실. 스피커에선 녹취된 전화통화 내용이 반복해 들렸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국과 외교문제를 두고 거래를 한 것이죠.”
수석 분석관이 감청 녹취가 든 메모리를 국장의 책상 위로 내밀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제임스 코미(James Comey) FBI 국장은 짧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로건법 위반으로 엮을 수 있어. 백악관으로 간다.”
문제의 녹취는 2016년 12월,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과 주미 러시아 대사 세르게이 키슬략(Sergey Kislyak) 간의 통화였다.
2016년 12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정보기관의 분석을 통해 확인되자, 보복 조치로 외교관 신분을 가장한 러시아 정보요원 35명을 미국에서 추방하고, 러시아 정보기관이 사용하는 시설 두 곳을 폐쇄하는 제재를 단행했다. 플린은 이러한 조치가 발표되기 직전, 러시아 측의 강한 반발을 우려해 키슬략 대사에게 조용히 대응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1월 24일, FBI 요원 두 명이 백악관을 찾았다. 면담에서 플린은 통화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 일은 오히려 위증을 한 꼴이 되었다. 꼼짝 없이 코미 국장의 함정 수사에 걸려들었다. 그는 위증 혐의로 기소됐고 연일 언론 보도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결국 그는 국가안보보좌관 선임 24일 만에 자진 사임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첫 낙마자였다.
마이클 플린. 그는 3성 장군으로 군 정보 분야의 베테랑이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모두 겪은 실전 지휘관이였고, 합참 정보부서, 중동 현장 사령부를 거쳐, 2012년엔 정보 계통에 최고의 자리인 국방정보국(DIA) 국장에 임명된 입지적 인물이였다. 그의 동생 찰스 플린도 현역 4성 장군으로, 미 육군 태평양 사령관을 맡고 있었으니, 최고의 군 엘리트 가문이였다.
2016년 대선에서 플린은 초기부터 트럼프 캠프에 합류해 외교·안보 자문을 맡았고, 대선 승리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길은 창창대로였다.
플린은2014년, 33년간 복무한 미 육군에서 전역했는데, 그 이유는 오바마 행정부의 콜린 파웰 국방부장관과의 의견 충돌이 주된 이유였다. 퇴역 후 그는 '플린 인텔 그룹(Flynn Intel Group)'이라는 정보컨설팅 회사를 설립하고 중동·유럽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로비와 분석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국영 미디어 RT와 접촉하며, 2015년 RT 주최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만찬을 가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논란이 됐다. 그는 이 행사에서 강연료 명목으로 약 4만 5천 달러를 수령했고, 이 때를 기점으로 그의 회사는 러시아의 기업들로부터 지속적인 후원을 받았다.
그 무렵부터 플린은 미국 보수 진영과 밀접한 유튜브 채널, 라디오 방송 등에 자주 등장하며 기존 언론과 정보기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QAnon 진영에서 회자되던 이른바 '딥스테이트', '글로벌 엘리트' 음모론에 대해 묵인하거나 사실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며, 극우 민병대 커뮤니티와 점차 가까워졌다.
"정보기관과 군 고위층 일부는 국가를 배신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국민에게 닿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국가 안보의 수호자가 아니라, 정보전의 내부 고발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 시기부터 플린은 QAnon 진영에서 '우리를 대신해 싸우는 장군(Our General)'이라 불리며 신화적 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던 2020년 11월 중순, 시드니 파월(Sidney Powell)은 워싱턴 D.C.의 한 호텔 로비에서 조용히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클 플린이었다. 그는 최근 몇 달간의 법적 소용돌이 속에서 반복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들었다고 했다. 독립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 연방 검찰 시절부터 보여준 고집과 기개, 무엇보다 '시스템에 맞서는 자'라는 평판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러시아 내통 의혹을 추적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크로스파이어 허리케인 작전'은 트럼프 정권 취임 후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결국 뮬러 특검으로 이어졌다. 플린은 이 수사의 첫 희생양이 되었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변호사가 아니라 정치적 싸움에 맞설 수 있는 투사였다.
그가 첫마디를 꺼냈다.
“시드니, 당신은 싸우는 사람이잖소. 나 같은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변호사요.”
파월은 한때 연방 검찰에서 날고 기던 법률가였다. 수십 년간 텍사스 북부 지방검찰청에서 일하며, 마약 카르텔부터 화이트칼라 범죄자까지 수백 건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강단 있는 여성 검사'로 유명했던 그녀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부패를 쳐내는 철의 법률가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연방 검찰을 떠난 이후, 그녀는 '자유헌법센터' 같은 보수 법률 단체와 손잡으며 점차 우익 진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2019년, 플린의 항소를 맡으면서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플린은 자신의 유죄를 번복했고, 파월은 그의 기소가 오바마 시절부터 짜인 정치 공작이라 주장했다. 그녀는 이를 '깊이 썩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반란'이라 불렀다.
“그를 지키는 건 헌법을 지키는 거예요.” 그녀는 폭스뉴스 생방송에서 단언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이상한 쪽으로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플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는 점점 더 음모론적인 자료에 의존했고, QAnon 커뮤니티의 환영을 받으며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플린은 이미 그 안에 있었고, 그녀는 점점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러시아 게이트는 끈질기게 트럼프 행정부를 괴롭했다. 러시아 해커들이 민주당 서버를 해킹해 위키리크스에 정보를 넘긴 정황, 러시아 측 인사들과 트럼프 캠프 요원 간의 이메일·접촉 내역, 선거 개입과 그에 대한 은폐 시도, 그리고 사법방해 가능성까지.
뮬러 특검의 수사 과정카지노 게임 추천 기소된 인물은플린을 시작으로, 폴 매너포트(Paul Manafort), 리처드 게이츠(Rick Gates), 조지 파파도풀로스(George Papadopoulos), 마이클 코언(Michael Cohen) 등 모두 트럼프 캠프의 핵심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탈세, 외국정부 접촉, 위증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거나 협상을 맺었다.
2019년 3월, 뮬러 특검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판단했으나, 그러나 그것이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의 공모였는지에 대해선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트럼프가 수사에 대해 반복적으로 사법방해를 시도한 정황은 보고서 2권 전체에 걸쳐 상세히 기술되었다.
한편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뮬러 특검의실패는정치적 '무죄 선고'로 여겨졌고, 러시아게이트는오바마와 '딥스테이트'의 사악한공작으로 간주되었다. QAnon 커뮤니티에선피자게이트에 이어 힐러리 클린턴과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등을 글로벌리스트라며 악마화하는콘텐츠가더욱 기승을 부렸다.이 음모론은 모두 트럼프의 정적만을 대상으로 했다.
예컨대,힐러리는 비밀 군사법정카지노 게임 추천 이미 사형당했고 현재 TV에 나오는 인물은 '더블바디(대역인물)'이라는 둥, 펠로시는 '검은 귀족(Black Nobility)'이라 불리는 이탈리아계 마피아 가문 출신이며, 바티칸 내부의 프리메이슨과 결탁해 세계를 조종하고 있다는 주장이 떠돌았다.8kun(구 8chan) 사용자들은이런 허황된 스토리를 진지하게 믿었고,매일 Q의 암호 메시지를 해독하며 '딥스테이트 몰락'의 날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것을 '폭풍이 온다(The Storm is coming)'라고 불렀다. 이는 Q가 남긴 가장 유명한 암호 중 하나로, '때가 되면 트럼프가 군과 함께 악의 세력, 즉 딥스테이트를 일거에 척결하고 정화할 것'이라는 일종의 종말론적 신화였다.
이제 트럼프 지지자들은 현실 정치와 음모적 상상이 뒤섞인 내러티브 속에 갇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마이클 플린과 시드니 파웰 역시 한때는 제도권 인사였지만, 지지자들의 광신적 믿음에 기대며QAnon이라는 컬트적 세계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했다.
2020년 11월 3일, 미국 대선 당일.
공식 개표가 시작된 밤, 미국 전역의 시청자들이 TV와 유튜브 스트리밍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개표 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반에는 예상대로 트럼프가 경합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플로리다, 오하이오, 텍사스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머쥐었고,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 조지아에서도 우세한 흐름이었다.
그러나우편투표 개표가 시작되자이변이 일어났다.바이든의 득표수가 갑작스럽게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미시간과 위스콘신에서는 바이든이 수십만 표를 단숨에 따라잡고 역전하는 장면이 생중계 됐다. CNN의 진행자가 말을 잇지 못하던 순간, 소셜미디어에는 "장대높이뛰기 같은 기현상"이라는 문구가 트렌딩에 올랐다.
심야 시간,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의 일부 카운티에서 개표가 중단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분위기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트럼프는 이튿날 새벽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Frankly, we did win this election. We want all voting to stop. This is a fraud on the American public."(솔직히, 우리는 이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모든 투표를 멈추길 원합니다. 이는 미국 국민을 향한 사기입니다.)
현직 미국 대통령 입카지노 게임 추천 선거부정이선언된 것이다.이를 지켜보던전 세계인이경악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선거 불복 선언이자, 곧바로 시작될 정치 전쟁의 포고문이었다. 그는 개표 조작, 투표기 해킹, 불법 우편투표 의혹을 제기하며 즉시 법적 대응에 착수했다.
그는 시드니 파월(Sidney Powell),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 린 우드(Lin Wood)를 포함한 10여 명의 법률가로 구성된 전담 변호인단을 소집해 '선거 뒤집기' 작전에 돌입했다. 기자회견은 호텔 주차장, 주청사 앞, 지하 벙커를 가리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전 세계가 이들의 입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갈수록 황당해졌다.
그렇게 미국은, 11월 3일 선거 다음 날부터 이듬 해 1월 6일까지, 장장3개월 동안 그야말로 '좌충우돌', '엉망진창'.한 편의 코미디 같은 난장판정국이 펼쳐졌다. 매일같이 가짜 뉴스, 근거 없는 주장이 반복되며 '선거가 도둑맞았다(stop the steal)'라는 구호와 함께 전국에 우파들을 결집시켰다.
트럼프의 변호인단 전면에 나선 3인방은 단순한 법적 대응을 넘어, 출처가 불분명한 괴담들을 '전략적 정보'로 포장해 전국에 퍼뜨리는 데 앞장섰다.
우선, 시드니 파월(Sidney Powell)이“우린 크라켄을 풀 것이다(We're going to release the Kraken)”라며 포문을 열었다. 지지자들은 이 의미를 알 수 없는한 마디에도 숨겨진암호를 찾아가며, 절박하게 희망을 숨결을 불어넣었다.그들은 하루 하루 피가 마르게 대반전의 시간만을 고대했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CIA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스카이텔(SCIAytl) 서버 팜을 습격해 선거 데이터를 회수했고,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CIA 국장 지나 해스펠(Gina Haspel)이 부상 또는 사망했다"는 소식이였다.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트럼프가 딥스 무리를 일시에 척결하기 위해 함정을 판 것이라 믿었다. 드디어 '스톰작전'을 개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스카이텔(SCIAytl)'의 실체는 고사하고, 죽었다는 해스펠 본인은 멀쩡하게 공개 석상에 나타났다.
또한, 도미니언(Dominion Voting Systems)과 스마트매틱(Smartmatic)의 투표 시스템이 죽은 우고 차베스(Hugo Chávez)의 베네수엘라(Venezuela) 정권에서 개발되어 전 세계 공산주의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QAnon 진영의 확증편향과 맞물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주류 언론이 감추고 있는 진실이라며 텔레그램과 8kun에서 진짜 '뉴스'처럼 유통되기 시작했다.
가짜뉴스에 의한 희망고문은 계속됐으나 현실 상황은 어쩐 일인지 끝까지 반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로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의 선거 결과 인증에 대한 절차만이 남았다. 이제 모든 희망을 그 날에 걸었다. 전국의 극우 인사들은 워싱턴 D.C로 몰려들었다. 2021년 1월 6일 직전까지 약 3만 명이 수도에 집결 했다. 그중 95%가량이 QAnon 추종자들이였다. 이 중엔 극단적 무장 민병대인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 오스 키퍼스(Oath Keepers)도 있었다. 운명의 날, 마침내 펜스가 트럼프의 요청을 거부하자 이들은 자제력를 잃었고 모두가 트럼프의 입에 집중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내전이 개시 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