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기 싫은 맘이야
지지리도 끝나지 않는 소송이 있다. 코로나 전부터 시작된 공정거래 사건인데 아직도 계속 중이다.
이 일이 터질 때만 해도 공정거래법의 '공'자도 들어본 적 없는 경력직신입 나부랭이였다. 분명히 친절한 직속 상사가 처음부터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듣고 또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생소한 행위요건들과 경제분석과 관련 판례들은 읽고 또 읽어도 제자리걸음.
사법연수원에서 들었던 공정거래법선택과목 교재를 펼쳐보기도 했지만 도움 되었을 리 없다. 이 법에서 말하는 공정한 행위와 불공정한 행위 사이 스펙트럼은 아무래도 경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스쳐간교과서 따위로는절대 실무의 풍파를 막아내지 못한다.
지금은 몇 년간 그 풍파를 몸으로 맞서며 사람이 좀 닳았다. 이메일로 정성껏 정리해서 전달한 의견과'얼라인'이 안 된 로펌 서면 초안에 한숨을 푹푹 내쉰다."그럼어떻게 방어하실 건데요"라면서 다소짜증 섞인 요구를 하고는 후회하기 일쑤다.
왜 문제 되었는지 알 길 없으나 문제 삼으려면 문제가 된다. 이 사건에 관계된 담당자분말씀처럼, "안 한 걸 안 했다고 밝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몇 년째 그 일을 하며 거쳐간 정부기관과 사법기관만 몇 개다. 딱히 좋지 않은 처분과 판단을 수차례 받으며 맷집만 강해진다.
오랜만에 마라톤 같은 이 사건에 관해 담당로펌과 다 같이 대책 회의를 하기로 했다. 아침 열 시. 집에서 회의 장소까지 가려면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날씨마저 따라주지 않는다. 입춘이라는데 혹한기 한파가 닥치다니. 그렇지 않아도 좀 부담스러운 회의인데 뚜벅이에게는 가혹한 무료 카지노 게임길이었다.
오랜만에예전 처음 이 사건을 마주할 때처럼 긴장을 했다. 팀장님이 새로 오신 후 처음으로 이 사건을 상세히 들여다보는기회다. 그간 생각보다 잘 진행되어 왔고 희망적인 전개가 가능하리라 보고해 왔지만, 예리한 팀장님 눈에 어떤 쟁점이 걸려들지 모른다.
평소와는 다르게 일주일 전부터 챙겼다. 로펌에는 자료를 얼른 만들어 보내라고 일러두고, 새로울 것 없는 기록들을 읽고 또 읽어본다. 이제는 정리가 될 만도 한데 잘 안 풀리는 약한 쟁점들이 여전히 남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진다.
회의 전날퇴근하고이를 닦다가내일 어떻게 가지, 생각하니 다시그 목에 걸린 가시가 거슬린다. 게다가 한파다. 춥다고 택시를 타고 가기엔 아침 교통체증에 멀미할 것 같고, 지옥철에서 한 시간을 내리 서서 갈 생각을 하니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회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해진다니 결코 좋은 사인이 아니다.
'아침부터 여는 카페 없나?'
언젠가부터 무료 카지노 게임을 주저하게 되는 날이면 오히려 일찍이 집을 나선다. 회사에 한 시간 일찍 가든, 아침부터 여는카페를 들러서 커피를 한 잔 하든 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그냥 하자'는마음으로만집을 나서기엔좀무력한 기분이 들어서 싫다.뇌를 속여보기로 한다. 도살장 끌려가듯 무료 카지노 게임하는 게 아니라,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그 일을 즐겁게 시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찾아보니 마침 정말 좋아하는 분위기에 좋아하는 빵을 파는 카페를 찾았다. 평소라면 아침부터 당이 오른다는 이유로 빵식을 하지는 않겠지만, 좀 더 특별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날에는 예외를 두어도 괜찮다. 어느새 거슬리던 일생각은 잊었다. 빵과 커피 한 잔을먹으며 호텔 조식 분위기를 낼 생각에 미리 기분이 좋아진다.
실은 매번 헐레벌떡 무료 카지노 게임 준비를 하는 편이다. 빠듯하게 준비하고 빠듯하게 가서 자리에 앉으면 시동 걸리는데 한참이다. 고시생 때 시간을 쪼개 쓰며 고착된습성이라 익숙해진 나쁜 버릇이다. 이번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각성한다. 미리미리 좀 가서 여유롭게 생각이란 것도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하면 좀 좋냐?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가 있는 사람이 한번 되어보자, 올해는 야심 찬 신년 다짐을 해봤다.
미팅장소 근처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는 것은 상당한 행운이었다. 딱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드립커피와 빵 한 조각을 주문했다. 안쪽 자리 깊숙이 자리를 잡고 통창 밖의 도시 풍경을 멍 때리고 잠시 바라보았다.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시선의 여백을 즐기는 시간이 좋다. 어려운 회의를 앞둔 마음의 부하가 확 가라앉는다.
영감이라는 단어는 숨을 들이마시다 또는 숨을 불어 넣다를 뜻하는 라틴어 inspirare에서 왔다. 폐가 공기를 끌어들이려면 먼저 안을 비워야 한다. 마음이 영감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환영할 공간이 필요하다. 우주는 균형을 추구한다. 이러한 결핍을 통해 우리는 에너지를 초대한다.
삶의 모든 것에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영감을 위한 공간을 만들려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수행이 도움된다.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릭 루빈
무언가 해야만 시간을 잘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지금은 이걸 하고, 이다음엔 이거, 그다음은... 그렇게 시간을 채워나가는 게 곧 하루하루를 보람차고 생산성 높게 사는 법이라고 여겼다.
의도적인 빈 시간을 가져보니 알게 되었다. 어떤 공백의 시간은 에너지를 가져온다. 릭 루빈은 음악가라 영감 타령을 하나 싶지만, 직장인에게도 어떤 영감은 필요하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 차분한 마음가짐이라든가 일종의 용기 같은 것, 오늘 꼭 정리돼야 하는 이슈에 관한 실마리라든가. 영감님이 오게 하려면 비우는 시간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커피 한 모금을 하면서 노트북을 켜고 다시 기록을 읽는다. 매일 쏟아지는 이메일과 메신저 속에서는 '부러뜨려야 할 중요한 이슈'를 다시 생각해 볼 여력이 없다. 약속된 시간에 앞서 만든 공백은 이렇게도 효용이 있다. 한정된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따져보며 집중해 갈 수 있었다. 물론 목엣가시(?)가 내려가는 번뜩하는 영감이 왔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온 게 있다.
친절한 베이커가 메뉴 테스트를 하고 있다면서 시식빵을 주었다. 갓 구운 브리오슈 번이었다.
화색이 되어서 얼른 빵을 뜯어 한 입 먹어보았다. 은은한 단맛과 버터향이 입안에 감돌았다. 어느새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기록은 뒷전이다. 다시 멀리 창을 바라보며 큰 덩어리 하나를 야금야금 다 먹어치웠다. 회의 시간이 거의 다가왔지만 준비는 충분히 했으니 괜찮다.
역시 아침에는 든든하게 탄수화물을 먹어줘야 무료 카지노 게임 건가? 이런 작은 횡재에즐거우면 되었다는 풍족한 기분과 함께, 쫄아봐야 쓸데없다 될 대로 돼라, 무료 카지노 게임 용기인지 기세도 솟아났다.
마침 도착했다는 팀장님 연락이 왔다. 빈 빵접시와 커피 소서를 착착 쌓아놓고 미팅을 하러 갔다.
회의는 다행히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논의 끝물에도 약한 고리에 관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아 혼자 전전긍긍했다.
이거 어느 타이밍에 말 꺼내야 하나?
결국 굳이 굳이 디테일을 짚고 넘어가는 건 걱정 많은 실무자인 내 몫이다. 회의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손을 조금 떨었던 느낌은 기분 탓이었으리라(염소목소리 안 된 게 어디임).
연차가 쌓이면 압도감을 느끼는 일이 줄어들까 했는데, 그저 다채로워질 뿐이다. 그만큼 무료 카지노 게임하기 싫은 마음도 가지각색이다.
그럴 때면 무료 카지노 게임한다, 를 커피 마시러 간다, 고 해보자. 한 영업일의 시작을 좋아하는 일로 치환하는 전략은 꽤 쓸모 있다.
내일도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회사에 갈 생각이다. 맛있는 커피를 사들고 가야지.
- 오늘의 힌트: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릭 루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