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주말 오후 3시 58분.
낮은 채도의 회색과 흰색인테리어 덕분에 마음이 안정되는카페에서, 벽 쪽 나만 노트북 화면을 볼 수 무료 카지노 게임 곳에 앉아 이 글을 쓴다. 내 곁에는 짙은 녹색의 따뜻한 유기농 그린티 라테가 있다.
3달 전 2월 초에도 똑같이 이 카페의 네모난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두고 일하고 있었다. 그때와 분야는 같지만 다른 내용을 노트북으로 번역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살며일이 없을까 봐, 손가락만 빨고 있을까 봐 걱정하던 어두컴컴한 날들도 있기에, 계속 이 자리에 앉아 번역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은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요즘 연락이 뜸했던 무료 카지노 게임과의 일이 떠올랐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이유 없이 주기적으로 떠오르곤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낡지만 튼튼한 흰색 삼성 노트북만을 믿고 내 방에 앉아 일하던 시절, 나는 프리랜서로서 실적을 쌓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이력서에 차곡차곡 써 내려가는 실적이 프리랜서의 가장 큰 무기이기에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늘리려고 고군분투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힘들기보다는 잘 되고 싶어서 이 일에 푹 빠졌었다. 그러나 주야장천 여기저기 번역 회사를 찔러보며 일감을 낚아채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옆에서 부모님이 보기엔 그저 종일 노트북만 보고 있는 철없는 딸로 보였나 보다. 나중에 번역도 아닌 우연히 공저로 글을 써서 참여한 책을 엄마에게 주었을 때 비로소 엄마는 '연경이가 첫걸음을 뗐다'는 표현을 썼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도 몇 달간 방에 앉아서 번역했지만 엄마의 눈에는 그저 노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서로 대화가 부족해서 부모님이 쉽사리 프리랜서를 직업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걸까? 글쎄, 모르겠다. 내가 자막 작업한 드라마와 영화가 나왔음에도, 스리슬쩍 게임 번역 같은 걸 언급해 왔음에도 엄마는 화가 날때 항상 나에게이렇게 소리쳤다.
"맨날 방구석에만 틀어박혀서 노트북만 보고 무료 카지노 게임 기, 뭔 큰 소리고?!"
'방구석', '틀어박히다'. 단어 선택이 자극적이다. 이렇게 글로 쓰니 또다시 괜스레 슬퍼진다. 이 밖에도 '저래가지고 선도 못 볼 거다'라는 둥 여러 가지 엄마표 상처 주기 대사가 있었고, 엄마의 막무가내 대사는 인정받고 싶던 내 마음에 생채기로 자리 잡았다. 노력이 아무리 주관적이라지만 가족이 아닌 친구들도 열심히 산다고 나한테 엄지를 척 추켜올렸는데 부모님이 시큰둥해하자,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에게 '프리랜서로도 열심히 잘살고 있어요'라고 증명하기를 포기했다. 나만 즐겁고 보람찬 걸로 만족하려고 애썼다.
몇 년 후 내가 번역한 도서를 받은 엄마 친구의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 한마디에 그제야 엄마는 나를 인정한 듯 보였다. 나의 우물쭈물하며 내뱉은 100마디 말보다 주위 사람의 1마디가 엄마를 치켜세워준 듯 보였고, 김빠지는 결말에 허무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후에는 내가 혹시나 고생할까 걱정이 되는지 매번 수입을 물어보고 내가 대답하면 그제야 안심하고 인정해 줬다. 수입이 프리랜서라서 뒤죽박죽 하다는 말로 운을 떼는 데도 항상 묻는다. 돈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증명하고 앉아 있는 나를 나중에 되돌아보면 왜인지 진절머리가 나고 후회막급한 마음이 올라온다. 물질적인 덩어리들도 당연히 좋지만 가족에게 돈을 이야기하면서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다니. 껄끄럽다. 이 세상에서 나만 이런 기분인 걸까? 내가 이상하더라도 이게 진짜 감정인걸.
몇 달 전 부모님은 일주일 동안 '고양이 밥 주기' 미션을 주고 일본 미에현으로 떠났다. 부모님의 밭에 매일 오후 3시에 오는 하얀 빛깔에 몽실몽실하고 둥근 발을 지닌 길고양이가 무료 카지노 게임데, 비록 길고양이지만 부모님이 군청에 건의해서 중성화 수술을 추진할 정도로 애정을 쏟은 아이인지라 자신들이 없을 동안 나에게 먹이를 주라고 부탁한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3시에 밭으로 가서 밥 주기.' 감히 일하는 날에 이 미션을 할 수 있다고 가볍게 치부한 나는 첫날부터 당혹스러워했다. 거참 신기하게도 프리랜서는 여행 가거나잠시 자리를 비우면 누가 훔쳐보기라도 하는 듯 업무 연락이 쏟아질 때가 많다. 업무 연락이 많은 시간대인 오후 2~4시에 왕복 30km인 밭까지 운전을 했는데, 일주일 동안 쉴 새 없이 업무 연락이 왔다. 다코야키나 오코노미야키 정도의 일이 아니라(일의 양을 표현할 때 비유 삼아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일본 여행 정도에 상당하는 규모의 일이었다.
번역뿐만 아니라 그다음 주에 예정된 통역도 있었는데, 담당자가 어지간히 꼼꼼한 사람이었던지라 나의 평범한 통역 인생에서 갑작스러운 사전 온라인 회의가 가장 많았다. 담당자는 몇 시간 뒤, 하루 뒤에 회의 참석 가능 여부를 물었고 회의 시간은 2~3시였다. 3시에 맞춰서 밭에 도착하려면 전체 참석을 못 하기에 어찌어찌 사정을 말해 직전까지 회의를 하고 밭으로 운전해서 간 후,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땡볕 아래에서 스마트폰 밝기를 최대로 해서 운전할 때 온 메일에 답장했다**. 그 후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질 체력인 나는 이미 해롱해롱했다. 어쩌다 보니 바빠서 내 밥은 못 먹고 고양이 밥을 주러 가는 상황이 펼쳐졌지만, 짙은 노란빛 눈의 고양이가 야옹 하며 움직이는 몸짓 하나하나에 푹 빠져버려서 힘들어도 마음은 항상 밭으로 향해 있었다. 암, 고양이는 잘못한 게 없었다.
그래도 화가 솓구칠 때는 고양이에게 버럭 할 순 없으니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징징댔다. '나, 놀고 무료 카지노 게임 거 아니라고요!다른 직장인은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듯이 나도 똑같다고요! 걔들이 무더운 날 회사에서 일하다가 왕복 30km를 운전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겠어요? 나도 그렇다니까요!'
카카오톡 메시지로 쿠션 언어 없이 내지르고 나니 고양이 밥 때문에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어 괜히 무료 카지노 게임께 죄송했다. 하지만 잠시 후내가 고생했다고 생각하니 또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몇 시간 후에는 뜬금없이 고양이 덕분에 무료 카지노 게임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서 기분이 좋았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향한 감정은 도대체 몇 개이길래 이토록 다양한 생각이 드는 건지혼란스러웠다.
무더운 날씨에 어찌할 바를 몰라 밭에서 동동대던 나처럼, 무료 카지노 게임과의 관계도 여전히 안개 속이다.
**ps.밭에 다녀온 그다음 주에는 오후 2~3시에 급히 답장해야 할 메일이 훨씬 적게 왔다. 하늘에서 누군가가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내가 바쁠 때 일을 몰아주는 게 분명하다...!
-프리랜서 김연경
#에세이 #번역과의로맨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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