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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Feb 21. 2025

2-12. 죽어서 신이 된 남자

관운장

한국에는 사람이 없다고 해요. 신만 살고 있다네요. 조금만 뛰어난 사람이면 노래의 신, 공연의 신이고 멋진 드레스를 걸치면 여신이고 심지어 보컬 그룹의 이름이 god(신)되는가 하면대놓고 idol(우상)을 내세웁니다. 개나 소나 신을 갖다 붙이는 건 신이나 되어야 살아낼 수 있는 경쟁사회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라나요. 그러면서도 정작 역사는 드라마로 배우는 형편이니, 연암의 표현을 빌리면 '수호전을 정사(正史)로 여기며 오랑캐처럼 사는 것'이 우리 사회이기도 합카지노 게임

연암이 청하(淸河) 길에 만난 한 묘우(廟宇)에는 좌성 우불(左聖右佛) 이라고 강희 황제의 어필로 습니다. 좌성이란 관운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운장 관우입니다. 관우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사람입니다. 유비, 장비와 더불어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이촉한의오호대장의 하나습니다. 그의 도덕과 학문을 높이 찬양한 주련도 있답니다. 명(明)나라초기에그의이름을함부로 부를 수 없다 하여 패관기서에서까지도 모두 관모(關某)라 일컫더니 청나라시대에오면 아예 관성(關聖)이나 관부자(關夫子)라 불렀습니다.


천하의 사대부들이 이제 관공을 학자라고 높이기에 이르렀습니다. 학자는 제 몸의 사욕을 눌러 예법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관공(關公)의 정의와 용맹으로는 예법에 이미 돌아왔겠지만, 굳이 학자라고 부르는 것은그가 《춘추(春秋)》에 밝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관우는 나중에 추승되어 제(帝)라 일컫게 됩니다. 평생 신하의 입장에서 충성을 바치던 자에게 '제'라는 칭호를 붙이면 그가 과연 ‘제(帝)’의 칭호를 달갑게 여기겠습니까. 영혼이 살아 있다면 명분에 어긋난 것을 받지 않을 것이며, 영혼이 사라졌다면 이렇게 아첨한들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이러다가는 《수호전》을 정사로 삼으며 공자와 안자를 내쫓고 석가를 모시는 일이 없겠느냐고요.


연행에 동반한 연암은 가는 곳마다 많은 것을 보고 관찰하여 기록합니다. 그런데 가는 데마다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관제묘입니다. 궁촌 벽지라도 사람 몇 호만 살면 반드시 사치한 묘우를 떠받들어 지어 놓았습니다. 제사에 어찌나 정성이 대단한지 소먹이는 아이와 곁두리 먹이는 지어미들까지도 뒤떨어지기가 두려워 달려듭니다. 책문(柵門)에 들어온 뒤 황성까지 2천여 리 사이에 새로 지은 것과 묵은 것 혹은 크고 작은 수많은 관제묘가 서로 마주 바라다보고 있답니다.


관제묘는 마을회관도 됩니다. 팔도하에서는 글방 훈장이 숙소가 되고,열하에서는 관리들과 왕자들이 거처하는 곳입니다.특히 영험이 있는 관제묘에서는 정성을 바칩니다. 요양 중후소같은 데에서는 예물을 바치고 절하며 길흉을 점치며,창대까지 참외를 바칩니다.청석령 고갯마루에서도 참외를 바치며 향을 피우고 신수를 점치는 색다른 역할도 합니다. 연경 관묘에서는 관우를 삼계복마대제신위진원천존(三界伏魔大帝神威鎭天尊)으로 봉했네요. 구요동성에서는장비와 조자룡,엄안도 모셨답카지노 게임. 광녕성희대(戲臺)연극무대까지도 차려지는 곳입다.


이 모든 관제묘에'제'(帝)가붙었습니다. 라클레스는 죽어 신이 되고 관우는 죽어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관우는 황제(관성대제)를 넘어 신이 됩니다. 행여 송구스럽게도 관우와 이름이 겹치지 않도록 황제 쪽에서 먼저 스스로 피휘(避諱)를 할 지경이 됩니다. 관제묘는 명나라 말기부터세워져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생겼습니다. 서울 숭인동의동관왕묘가 그것입니다. 중국의 역대 황제마다 관우를 우대하여 시호를봉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연경의 관제묘메 있는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威遠鎭天尊關聖帝君)입니다.


공자의 사당이 문묘라면 무묘는 관우의 사당입니다. 전국 각지에 관묘를 세우도록 선포하고 관제묘에도 봄, 가을에 성대히 제사를 지내게 했답니다. 공자야 그 업적이 뚜렷하여 누가 이의를 달 사람이 없겠지만 관우를 공자에 대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아닌 거 같네요. 연암이 한 말도 이것일 것 같구요. 죽은 사람은 평화롭게 잠들도록 놔둬야지, 왜 자꾸만 불러내요? 산사람이 자기의 필요에 의해 죽은 자를 오라가라 하는 거지요. 뼈도 다 삭아버려 넋도 혼도 없게 되었을 관우가 얼마나 성가시겠어요!


연암은 중국의 시장도 관찰합니다. 성경에서는 술집들이 오색찬란하게 늘어섭니다. 궁벽한 곳인데도 가재도구와 식물이 처음 본 것에다가 문패며 간판들이 사치·화려함을 다투어 겉치레만 천금이 들었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되고 재신(財神)이 도와주지 않는다네요. 그 재신이 곧 관공(關公)이라고 향불을 피워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품이 가묘(家廟)보다 더합니다. 생전에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자를 가지고 사후에 돈을 잘 벌게 해주는 돈의 신을 만들다니, 중국이란 나라는 알다가도 모를 나라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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