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드라마 작가반엔 같은 꿈을 꾸는 지망생들로 가득했다.
수강생은 모두 여자였다.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연령은 다양했다. 분위기가 좋았다. 첫날, 우리 반의 반장을 뽑고 싸이월드 클럽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우리는 어찌어찌 모두 클럽에 가입해 소소한 정보를 나누었다.
정해진 수강 기간 동안 방송작가가 되기 위한 다양한 실습을 해보는 과정이었다. 예능 작가, 다큐 작가, 라디오 작가의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며 피드백을 받는. 그러다 우연히 인맥이 닿으면 막내 작가로 들어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심장이 뛰었다. 매 주차 과제를 성실히 해내고 제출했다.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해 대학도 휴학했다. 가족들은 모두 꿈을 지지해 주었지만 마음속 불안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돌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절실하게 매달렸다. 편도로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카지노 가입 쿠폰음에도 힘들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균열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부터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2009년 1월카지노 가입 쿠폰던가. 과제를 하려고 컴퓨터를 켜는데 위가 조이듯 아파왔다. 데굴데굴 구르다가 쓰러지곤 결국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내가 하고 싶은 일카지노 가입 쿠폰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해.
- 언니가 지원해 준 돈을 아깝게 버릴 수 없어.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해.
- 지난 수업부터 반장이 나오질 않는 건, 예능 작가님에게 컨택을 받아 취업했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아닌 걸까?
갖가지 잡념은 예민하고 불안한 기질을 타고난 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무리 교육원 과제라고 하지만 매주 기획안을 짜 내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태생이 진지한 나는 예능 쪽엔 완전히 젬병이었으며 그나마 비빌 언덕이라고 생각했던 다큐 부분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좋아하는 것은 소소한 일상 공유, 소통인 나에게 다큐의 세상은 어마어마했다. (당시 다큐는 시사 쪽이 워낙 강했다. 지금도 정치, 사회면을 가장 어려워하는 나에게 다큐는....)
다른 동기들은 한 번 정도는 꼭 칭찬을 받곤 했는데 나는, 호명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니 잘 해낼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사실 난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그것도 대중을 상대로 방송을 만들기 위한 일에는 부족한 사람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트렌드에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방송작가가 되기에 나는 너무나 세상의 변화에 둔 한 사람이었다. 남들이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날 때, 나는 그래도 예전에 쓰던 것이 좋은 거라면서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스트레스에 약간 개복치인 나는, 초 단위, 분 단위로 발 빠르게 돌아가는 방송국의 생활이 상상만으로도 덜컥 겁이 났다. 난 사실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취미로 좋아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그깟 꿈이 뭔가, 싶었다.
어쩌면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품어온 꿈이라는 허상 속에서 나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힘드니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정말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맞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취업은 해야 했다. 대학교 졸업반이 다 되도록(당시 휴학을 해서 4학년 2학기만 남아있는 상황카지노 가입 쿠폰다.) 토익, 토플 점수 하나 제대로 챙겨두지 못한 상황카지노 가입 쿠폰다.
그때, 생각난 것이 카지노 가입 쿠폰럽게도 그토록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던, 학교였다.
- 그래. 나에겐 교원 자격증이 있었지.
- 그래. 나 엉덩이 붙이고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거 잘하잖아.
- 교생 실습 할 때도 꽤 잘하지 않았던가?
끔찍이도 싫었던 기억은 막막한 미래에 압도되어 미화되고 말았다. 정신없고 소란했던 학교는 잊히고 '4시 30분'이면 퇴근하라던 방송만이 떠올랐다. 어이없는 아침 방송을 강요하던 것은 사라지고, 아이들과 소통하던 깨알 같던 기억만이 남았다.
마침, 우연히 방문한 서점에서 임용고시 기출문제를 몇 문제 풀어보니 얼추 맞히는 것을 보고 냅다 진로를 바꿔 버렸다. 옆에 있던 남자친구는 한술 더 떠서 나를 설득했다.
- 사실 예전부터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너는 방송작가는 별로 안 어울려. 너는 선생님이 더 잘 어울려.
- 네가 쓰고 싶은 글은, 선생님이 되어서 여유 시간에 써도 되잖아.
라며 친한 친구는 나를 응원했다. 응원일지 모를 말을 들으며 나는 10년 넘게 품어온 꿈을 단숨에 접었다.
- 나는 작가가 될 거야. 미리 사인 받아 둬.
떠벌렸던 말을 다시 주워 담는 일은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 번 마음이 바뀌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방송작가는 높은 확률로 못할 것 같으니, 차라리 임용고시를 보자, 는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불과 일주일 안에 결정되고 만 것이다.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임용고시를 보겠다고. 대신 작가 교육원은 끝까지 이수를 하겠다고. 그건 오랜동안 품어온 내 꿈에 대한 예의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덧붙였다.
- 그래. 여자가 하기에 좋은 직업이지. 방학이 있고, 연금도 있고, 정년도 보장되고. 얼마나 좋니.
라던 엄마는 내심 좋은 눈치였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작가는 박봉이었고 대우도 좋지 않았다. 체력이 약한 나를 걱정하던 엄마는 평소에도작가가 뭐가 그렇게 좋니, 하며 말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달랐다. 내가 여태껏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은 대부분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우아했고 무서웠고 어려웠다. 이 모든 단어가 함께 어우를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그랬다.
나쁠 것 없었다. 시험 보는 건 자신 있었고 돈이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그리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특별한 사명감 따위는 품지 말자. 그냥 솔직히 잘리지 않는 철밥통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자고 마음먹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무시하고
때로는 경멸했던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아니 사실 간절히 입성하기 위해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됐다.
20대의 한가운데였다.
에필로그이자 뒷 이야기 하나.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2009년 3월 즈음엔가. 작가 교육원에서 다큐 부분 강의를 해주신 한 작가님께 전화가 왔다. 자신이 아는 프로덕션에서 막내 작가를 구하고 있는데 해볼 생각 있느냐면서.
쿵쾅-쿵쾅-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마침, 뜻대로 공부가 되지 않아 우울하던 때였다.
- 네. 좋아요.
한 마디면 방송국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카지노 가입 쿠폰던 것이다.
하지만, 거절했다. 감사하지만 저는,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솔직한 이유를 말하자, 그 작가님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며 전화기 너머로 안타까움을 전해왔다.
흔들리지 않았냐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었고 모든 가족들은 나의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함께 노력해 주던 때였다. 이제 와서 다시?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뒷 이야기 둘.
이제야 말하지만 2009년도에 다큐 프로그램 기획안을 짤 때, 내가 선택한 것은 '상담, 치유, 힐링'카지노 가입 쿠폰다. 2009년도에도 사람들은 늘 현실에 지쳐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기사를 왕왕 보았던 것을 포인트로 잡아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힐링을 콘셉트로 일반인을 섭외해 어려움을 듣고 상담을 해주며 치유해 준다는 내용카지노 가입 쿠폰던 것 같다.
당시 수업 때는 주목받지 못해 역시 난, 실력이 없다며 자책했던 기획안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강의 해주신 작가님이 따로 코멘트를 달아주신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 기획 의도가 좋아요. (내용은 조금 손 봐야겠지만) 현대인의 외롭고 힘든 마음에 집중해서 풀어내려는 의도가 좋습니다.
와 같은 말카지노 가입 쿠폰던 것 같은데 훗날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도 큰 힘이 되었다. 실력 없음에도 까불던 사람은 아니었구나. 그래도 감각이 있는 사람카지노 가입 쿠폰네. 하며, 스스로 다독이곤 했더랬다.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예측한 것처럼(?)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었고 어느 순간 방송의 트렌드는 힐링과 치유로 뒤덮이는 것을 보며 흐뭇, 했던 기억이 있다.
방송작가를 했어도 잘했으려나?
웃자고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