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나를 꺼내며
조용한 단체방에 아침 일찍 알람이 연달아 울린다. 흔한 경조사 공지도 아니고, 뻔한 안부 인사도 아니고, 관성 같은 생일 축하도 아니다. 아무 말도 없이 묘한 글귀가 쓰인 사진이 여러 장 공유된다. 습관처럼 확인만 해두고 빠져나올 생각에 이미지를 클릭했는데 보자마자 답답해진다. 대체 누가 헛된 수고를 굳이 하고 있는지 올린 이를 살핀다. 아주 가까운 관계라 잘 아는 사람이다. 이런 부류의 글을 읽지도 믿지도 않으며 남에게 퍼 나를 인물이 아니다. 뭔가 일이 터진 걸 직감한다. 바로 옆에 있던 아내에게 기막힌 사연을 전한다. "파랑, 네 아이디 해킹당했어!"
파랑을 통해 사방팔방 뿌려진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전부 아는 내용이다. '함부로 포기하지 않고,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게으름을 이겨내고, 도전과 경험을 반복하고, 긍정적인 말버릇을 가져라.' 진지한 글씨체로 적힌 누군가의 글자 앞에서 나 또한 진중하게 의도를 추측한다. 혹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을 싫어하는 나 같은 인간을 괴롭히려고 이러는 걸까. 논리가 빈약하다. 나처럼 특이점을 가진 이가 많지도 않을 것이며, 있다 치더라도 직접 얻는 수확이 적다. 남의 계정을 뚫었다면 사칭으로 금품을 털어가는 게 피싱의 정도일 텐데. 할 수 있는 신고와 예방조치를 다한 뒤, 추가 피해를 예상하며 며칠을 보내지만 아무 일도 없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미궁에 빠지기 직전, 나름 책을 두 권 내 본 작가의 본능이 답을 던진다. '이 사람, 자기 책 홍보했구나.'
쓴 글과 만든 책을 알리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해왔다. 극단적이지만 기발한 방식에 놀라며 단숨에 그를 이해한다. 여전히 가능성이 큰 마케팅은 지인 판매다. 살기 바쁘지만 관계 때문에 시간을 내어 한 번은 살펴준다. 또한 품질과 관계없이 팔을 안으로 굽히며 따뜻하게 바라봐준다. 하나 아무리 마당발이라도 아는 사람 수에는 한계가 있다. 전혀 모르는 타인의 가까운 관계를 무궁무진한 타깃으로 삼고 국민 메신저의 대대적 활용을 결심한 해커 작가의 마음을 알아챈다. 악랄한 수단은 단죄되어 마땅하지만 범행 동기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밀실 사건을 풀어버린 명탐정처럼 굉장한 추리를 아내와 주변에 공개하지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읽고 있는 당신도 여기까지 흘러온 사고의 주인이 기이하게 보일 테지만, 카지노 게임으로 글을 써 보고 온 맘 다해 책을 엮어보면 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알리고 싶은 치열한 절박함을.
사실 책은 홍보가 전부여서는 안 된다. 아니, 그럴 거로 생각지 못했다. 출산에 비유될 정도의 카지노 게임 과정이 너무도 어려워서 그다음이 있을 거라는 짐작은 무리였다. 연애와 결혼, 임신과 탄생을 거치는 자식 같은 책을 바라보며 기적이 있다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구나 싶었다. 한 글자로 시작한 글이 책으로까지 도달하는 건 차마 돈을 걸 수 없는 도박이다. 엑셀 시트에 정리된 투고 출판사를 세다 보면 숙연해진다. 속 보이는 거절 답장과 그조차도 받지 못한 치욕을 돌아보면 더욱 엄숙해진다. 단순 감사로 끝낼 일이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이룬 난 춤이라도 춰야 한다. 그것도 수만 번쯤. 기쁨의 춤을 추고 나서 신나게 세상에 달려 나오면 상상치 못한 전쟁이 기다린다. 내 아이 말고도 수없이 많은 친구가 저마다의 가치를 내세우며 뽐낸다. 한 해에 수 만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저자의 입으로 베스트셀러라고 떠드는 걸 빼고 나면, 남도 다 아는 책은 몇 권 없다. 3억 분의 1이라는 극악의 확률을 극복해 낸 정자처럼 불가능을 굴복시켰다며 출산의 영광으로 기세등등할 짬이 없다. 자기 이름도 밝히지 못한 채 사라질 게 빤하니 여기저기 알리는 데 목숨을 건다. 나만 보고 말 책이라면 지난한 생고생을 사서 할 이유가 없으니.
승산없는전투를치르다보면작가와영혼의파트너, 출판사의야속한입장이절로파악된다. 펜으로써서팬을만들려는작가지망생보단, 팬이확보된유명인에게펜을주며작가로모신다. 구독자몇만명이라고찍힌책이쏟아지는상황이익숙하다. 작가분류카테고리에유튜버가있으니말다했다. 인스타에서흔히보이는공감글귀계정은팔로워를모아카지노 게임제안받으려는의도가다분하다. 분하지만내가출판사사장이라도실패확률이낮은전략을택할테다. 제아무리글이훌륭해도누가읽어야좋은줄알것아닌가. 욕이라도잔뜩먹어서노이즈마케팅이라도하고싶지만, 내용을모르니악플을달아줄사람도없다. 웃픈상황이불보듯뻔한데도불구하고맨바닥에서뒹구는나와책을만든출판사는그저천사다. 다시감사의춤을추는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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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세상의 무관심에 지쳐 책과 단둘이 있을 때가 있다. 꼭 그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우리 둘 사이에 끼려는 사람이 없어서이긴 하다. 아무튼 서로 바라보고 있으면 별생각이 다 든다. 이걸 나만 좋자고 만든 건가, 여기만 모셔둘 거면 혼자 낑낑댈 것을 괜히 출판사를 괴롭힌 건가, 그나마 선심 써준 지인은 산 뒤로 이렇다 말이 없는 걸 보니 책이 별로인가, 내 책이랑 저 위에 걸려있는 남의 책이랑 뭐가 그렇게 다른 건가, 그걸 아직도 모르니 여기 아래 붙어 있는 거겠지. 말이 없는 분신을 향해 고해성사 같은 고민 상담을 잔뜩 하고 나면 그나마 속이 가벼워진다. 어디서도 풀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이 앞에서는 공공연하게 꺼낸다. 묵묵히 글을 적다가 막혀 갑갑해지면 문득 바람을 쐬듯 책장을 넘기면 시원해진다. 카지노 게임 날 알아주는 둘도 없는 친구를 향한 마음이 점점 진해진다. 누구에게 이렇게나 빠진 적은 없었는데.
무엇에 카지노 게임이란 말을 듣고는 비웃어 왔다. 기껏해야 많이 좋아하는 걸 가지고 유난스럽게 부르는구나. 돌아보니 모든 걸 바쳐 사랑해 본 적도, 할 자신도 없어서였다. 이제는 놀리던 그 말을 속으로 되뇐다. 난 책에 카지노 게임이구나. 아니라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 하루도 빠짐없이 즐거운 고통 속에 하얀 바탕을 검은 글자로 채우는 새벽을, 모두가 외면해도 혹시 모를 단 한 명을 위해 꿋꿋이 책을 알리는 의지를, 더 나은 다음 책을 위해 계속되는 새로운 시도를. 매사에 효율과 가성비를 따지는 계산기 같은 내가 할 수 없는 행동투성이다. 푹 빠져서 앞뒤 재지 않고 전력투구하는 모양새가 낯설다. 온몸을 짜내도 땀 말고는 나오지 않을 메마른 나에게 눈물을 만들어 내보인 것도 책이다. 책을 쓰다 받은 응원으로, 책을 읽고 보내준 감사 편지로, 책을 인정해준 소식으로 전에 없던 촉촉함이 머문다.
첫번째독자가영원히작가본인이듯내책은어쩌면결국나만의작품일지도모른다. 이러니저러니좋은말다가져다붙여서밖에가져다팔더라도나를넘을수있는팬은없다. 남이아무리알아줘도내가만족스럽지못하면소용없다. 이론상백번옳지만잘팔릴것같은유혹을떨쳐내는건어렵다. 인정에목이마르다보면지독한갈증에눈이돌아가애먼데한눈을팔게된다. 괜히상위권을살피며유행에슬쩍올라타는걸고민한다. 눈한번딱감고사람들이듣고싶어하는소리로가득하고지당해서뭐라할말이없는승률높은카지노 게임쓸까말까. 자신을버린채거짓을지어내만드는건도리가아니다싶어그만두려하다가도, 속안의검은협상가가절묘한합의안을내놓는다. 수단방법가리지말고일단널리알려지고난다음에쓰고싶은걸쓰면된다고. 그럴듯해서홀라당넘어가다가눈앞의먼저태어난책이그거아니라고고개를젓는다. 네말이맞는다. 난그러려고너를쓰지않았다. 행여망하더라도내가하고싶고, 나만할수있는, 내게좋은글로채우고말테다.
카지노 게임 내고 나면 점점 잊는다.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는 초심부터 쉽사리 흔들린다. 천성이 유물론자라 손에 닿는 물질이 나타나자 여기에 집착하다 다른 걸 놓친다. 고심 끝에 완성한 문장도 대부분 까먹는다.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것처럼 볼 때마다 새롭다. 귀한 서평에 적힌 인용 문구가 어색하다. 한참을 들여다봐야 그때 왜 그렇게 썼는지 떠오른다. 두툼한 물건의 존재에 안심하느라 정신을 놓아 버린 탓이다. 기억 못 하는 건 이게 다가 아니다. 거듭된 실패를 무릅쓰고 계속 도전하는 오디션 참가자에 완전히 감정 이입하며 이번에 안 돼도 다음에 또 할 거라고 벼려둔 각오가 무뎌진다. 연거푸 넘어졌다 바로 선 칠전팔기의 아픔이 선명해서다. 상처의 통증을 알고도 또 다치는 건 버겁다. 그저 누구에게라도 닿기를 바라던 간절함도 흐려진다. 욕심에 파묻혀 감사를 깜빡하느라. 단 한 명을 바라던 소박함이 다음엔 열 명으로, 그다음엔 곱절로 늘어난다. 소중한 독자에게 충분히 고마워하기도 전에 그물 밖의 수만 명을 기대하며 뛰쳐나간다. 든든한 지원자가 될 뻔한 팬이 건넨 악수를 뿌리친 줄도 모르고.
글을쓰고카지노 게임만들며또다른삶을겪는다. 여느경험처럼얻고잃는다. 창작의고통과기쁨을알고, 자신을바라보는순간을접하고, 살아가고싶은방향을가늠한다. 반대편에선기대에따른실망으로마음이깎여나가고, 존중받지못한관계를끊어내고, 한계에맞설수록자신감이줄어든다. 신경의실재조차희미하던무미건조한인생을휘몰아치는감정의도가니로바꾼다. 설렘, 초조, 흥분, 불안, 열렬, 허탈, 절실, 단념, 안도, 아픔, 다행. 사전속단어를넘지못했던굴곡이내안으로생생하게들어온다. 분명히훌쩍자란나를느끼면서도남이몰라주면말짱도루묵이될것같은긴장도여전히 떨치지못한다. 기승전홍보에미쳐서지나온귀중한과정을덮어두고지낸까닭이다. 온통만들어낸책에만둘러싸여사방을가로막고지낸다. 이러려고쓴게아닌데도. 세계를향해마음을열려던몸부림이오히려고독해질위기로돌아온다. 혼자가될위협을피하느라바쁜요즘이다.
책은끝이카지노 게임다. 내가하려는이야기의시작이다. 글은수단이다. 목적이카지노 게임라. 잊지만않으면언제든다시처음그자리로돌아올수있다. 나는말을하고싶다. 입을달고나왔지만이야기할기회가별로없다. 잘듣고배우라고만하지내생각을묻는일은드물다. 침묵이금인줄알고참다가더이상못견디고이제막입을뗐다. 뒤늦게여기나라는사람이이렇게살고있다외치며티내려한다. 나와어울리는소통방식은쓰기로정했다. 주의가산만한내겐주변에아무도없는게유리하다. 오직나와글, 둘이대화하는시간에는안을오롯이들여다보고꺼낼수있다. 앞으로언제까지쓸지모르겠으나할말이없어질때까지쓸거라는확신은있다. 타자를치는모습조차신기했던과거엔책으로나를만날줄몰랐다. 그때도지금도책이란꽤나무겁고어려운대상이니. 만약미래를알았다면진작에겁먹고돌아섰을지도모른다. 읽을줄만알던녀석의주인이되고나니쓰길잘했다는개운함이가득하다. 우린상당히잘어울린다는환상을내마음대로품는다.
아빠가 책을 더 많이 써서 꼭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아들의 응원을 받아 들곤 생각에 잠긴다. 몇 권을 더 써야 작가로 봐줄지로 시작한 고민은 작가란 무엇인가에 머문다. 쓰는 무리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 난제. 누가 작가인가. 오늘 아침에 썼으면? 책을 냈으면? 행위와 결과물은 증거로 확실해 구분이 쉽지만 석연치 않다. 먹고사느라 어쩔 수 없이 책과 다름없는 보고서를 글자로 채우던 시절에 난 작가가 아니었다. 그때와 지금을 맞춰 보면 작가의 경계를 결정짓는 건 마음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글로 말하고 싶으면 작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우러나와 쓰면 그 순간 영락없이. 어제 쓴 글과 이름 박힌 책은 현재의 작가를 보장하지 못한다. 작가로 살려면 앞으로도 계속 쓰면서 떠들어야 한다. 책으로 잘못 향했던 카지노 게임을 바로잡는다. 다시 쓰기로 돌아온다. 나의 글쓰기는 이제 시작이다. 겨우 책 두 권이 아니라. 어렵게 찾은 카지노 게임을 오해하지 않고 흩어지지 않게 붙들며 가겠다. 쓰고 싶어 쓰는 나를 놓치지 않고.
왜 난 글을 쓰게 되었을까. 쓰면서도 몰랐다. 스스로 물어본 적도 없었다. 마음이 원했고 몸이 따랐다. 카지노 게임 데서 멈추지 않고 책으로 엮었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를 채우는 새벽을 좋아하게 된 사연.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답답한 이유를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