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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윤 단남 Feb 13. 2025

딱딱한 것보다는 부카지노 쿠폰운 게 좋아

우리 활의 곡선미가 제시카지노 쿠폰 국궁이 나아가야 할 방향

세계 어느 민족의 활을 보더라도 직선 일색의 활은 없다. 시위에 화살을 걸어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한 탄력은 결코 직선에서 나올 수가 없다. 곡선이 있어야 기운이 흐르며 점차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에너지가 맺히는 지점을 만들 수가 있다. 흐르는 것은 본디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흐른다. 상류에서 하류까지 흐르는 강물이 그렇고, 우리 몸의 혈류가 그렇다.


그중에서도 우리 활은 그 곡선미가 그 어느 활보다 우수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활 장비를 전문으로 리뷰하는 서양의 유튜버들도 국궁에 쓰이는 활의 심미성과 탄력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이 전통방식으로 만든 각궁이 아니라 카본 소재로 만든 개량궁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카지노 쿠폰Y브랜드 개량궁을 리뷰카지노 쿠폰 활 전문 유튜버 (ⓒArmin Hirmer)


우리 전통 활은 곡선이 지다 못해 아예 둥글다. 활을 얹기 전(시위를 걸어 화살을 날려 보낼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의 모습만 보면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까무러쳐도 그것이 '활'이라는 것은 추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카지노 쿠폰전통(화살통)과 각궁 (ⓒ국가유산이미지)



곡선미야 말로 크게는 동양의, 작게는 동이족의 후예인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나 사상에 녹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통 춤의 유려한 춤선, 한복에 나타난 풍성한 곡선미, 전통 한옥 기와에 나타난 똑 떨어지는 듯한 곡선이 눈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동양 문화의 곡선미라고 할 수 있다.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고, 인체의 이 장기와 저 장기는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기관으로 구분짓는 카지노 쿠폰 합리주의와 이성이 발달한 서양의 세계관이라면,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동양은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갖는다. 어떤 대상을 둘로 나누면 그것은 서로 같지 않은 독립적인 하나로만 보는 게 아니라, 둘로 나뉘어도 결국 큰 하나를 대변하는 존재들로 보는 카지노 쿠폰 동양의 음양오행론이다. 부분을 전체를 담고, 다시 전체는 또 부분을 담는다.


카지노 쿠폰최선 명무의 춤선.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보유자 (ⓒ전북일보)


나는 국궁계가 우리 활을 닮은 곡선미가 낭낭한 세계관을 구축하길 바란다. 그게 내가 지향하는 싹수있는 활쏘기의 지름길일 것이라 굳게 믿는다. 곡선미가 지닌 가치는 단연 외유내강이리라.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깃들어 있고, 그 강인함 속에서 다시 부드러움이 피어난다. 그것은 획일적인 통일이 아니라 다양성이 자연스러운 지극한 조화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



곡선미와 다양성이 녹아든 복장


칼각으로 다림질이라도 해서 입어야 할 것만 같은 흰색의 정장 바지와 칼라가 있는 정구복의 디자인이 아니라, 조상의 지혜와 슬기가 담긴 유려한 디자인의 한복을 모티프로 한 복장이 공식 유니폼이 된다면 좋겠다.


아니 말이 나온 김에, 아예 유니폼을 없애는 건 어떤가? 학생들의 교복도 자율화가 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일사불란하게 같은 색으로 통일시켜 한 무리의 군대를 연상케 할 카지노 쿠폰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의 한복과 개량한복이 한 데 어울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한복형태의 디자인이라는 큰 차원에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기준은 없는 문화. 모두가 달리 옷을 입어도 전통활에 어울리는 복장이라는 전체성은 유지가 되는 그런 조화의 장이 될 수 있길 바란다.


한 가지 기준 대신 다양한 기준


대외적으로는 국궁이 심신 수양에 좋은 운동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심신 수양의 기치에 방점을 찍는 것을 보지 못했다. 평소 활터들을 돌아다녀봐도, 국궁 대회를 나가봐도 오직 과녁을 얼마나 많이 맞히느냐, 이 기준만이 유일한 잣대가 되어버린 것이 작금의 국궁계의 현실이다.


심지어 자세야 어떻게 맞히든 시끄럽게 떠들면서 맞히든 잘 맞히기만 하면 그게 행동권과 발언권이 된다. 지금도 전국대회에 나가보면 본인이 수상권이 아니면 그냥 짐 싸서 곧장 집으로 가버린다. 내가 상 타는 것 아니면 남들이야 어떻게 쏘든 말든 관심도 없다. 언제부터 활쏘기라는 카지노 쿠폰 과정은 없고 결과만 보는 '직선형' 스포츠가 되어버린 것일까.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세상만사는 인과법칙을 따른다. 과정이 없다면 결과도 없다.


활쏘기에 관한 여러 관문과 과정들에 대해서도 주목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좋겠다. 자신의 장비인 활과 화살을 얼마나 애지중지 잘 관리했는지에 대한 기준, 활쏘기에 임하는 마음 자세가 잘 드러난 잘 차려입은 복장에 대한 기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쳤다 접는 유려한 자세로 곡선미를 자랑하는 자세에 대한 기준 등 다양하다.


환원론적, 또는 기계론적 사고로 활쏘기를 그저 시위에 화살을 걸어 당겼다 놓으면 화살이 날아가 과녁을 때리는 카지노 쿠폰 전부인 양 생각한다면 위와 같은 다양한 사고의 확장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을 카지노 쿠폰다. 과정의 매 순간을 충실히 음미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활쏘기의 세계관도 더욱 깊어지고 탄탄해질 수 있으리라.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좁은 시야로 '기록'에만 매몰되는 카지노 쿠폰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왜 우리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줄을 세우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가. 1등만 승자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 맞는 조화를 발휘하는 모두가 승자다. 맨날 과녁은 맞히지도 못하면서 매번 행사만 있으면 참석하여 남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분위기 메이커, 쏘는 자세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 누가 보지 않아도 주변을 쓸고 닦고 활터가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힘쓰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는 1등이다.


본디 활쏘기라는 카지노 쿠폰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활쏘기의 특성상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토록 오묘한 카지노 쿠폰 활쏘기의 세계다. 고정된 상태를 논하지 않고 만물은 늘 계속해서 변한다는 카지노 쿠폰 동양의 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증에 필요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시야가 더 넓어질 수 있다. 과녁 맞히기 만이 활쏘기의 전부가 아니다.



권위가 아닌 풍류를


외부대회를 나가보면 (특히 승단대회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심판이 소위 '완장'을 차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체육인 헌장에도 심판의 판정에는 '복종' 해야 한다고 떡 하니 명시해 놓고서 말이다. 그 복종이 예전부터 전래된 활쏘기의 유서 깊은 전통이라면 문화의 양식으로서 보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자리를 잡게 된 일본식 '승단제도'를 위시하는 현 국궁계의 권위적인 심판제도는 유구한 전통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1958년대에 열린 제1회 전국활쏘기대회 풍경.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활쏘기의 장은 권위있는 심판이 군림카지노 쿠폰 자리가 되어서도, 승단이 메인이 되어선 안 된다. 게다가 단순히 화살과 과녁만 존재카지노 쿠폰 게 아니라, 사람이 함께카지노 쿠폰 자리가 되어야 한다. 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운 그런 자리. 활이 있고, 음악이 있고, 음식이 있고, 그러한 풍류를 즐기는 법도가 있는 자리.


우리 전통 사물놀이만 봐도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들조차도 자연스럽게 꽹과리 소리에 어깨가 들썩이지 않던가. 현대의 활터가 다시금 예전처럼 다양한 문화요소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된다면 소위 말해 '고인물'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스포츠가 아니라 양생


종로 황학정 탄생 배경. 예기, 도, 신체 발육 등의 키워드가 눈에 띈다. (ⓒ황학정 국궁전시관)

일본의 궁도, 인도의 요가, 중국의 태극권처럼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심신을 단련하고 그 순간에 젖어 '나'라는 개별성에서 탈피하여 '전체'에 녹아드는 그런 순간을 경험케 하는 것들이. 비단 그 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까지 그카지노 쿠폰 지닌 진가가 널리 퍼지게 되는 그런 분야들. 나는 우리 활쏘기에도 충분히 그에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가 활쏘기를 보는 시선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오직 메달을 따기 위한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분석의 틀을 들이대는 양궁처럼 국궁을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양궁은 스포츠이지만, 국궁은 무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의 도구요, 양생의 기술이다. 위빠사나 명상을 보급하는 데 앞장섰던 명상 지도자 S.N 고엔카는 명상을 두고 삶의 기술 Art of Life이라고 말했다. 우리 활쏘기 역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다.





곡선이 있어야 할 곳엔 곡선이, 직선이 있어야 할 곳엔 직선이 있는 것이 우리 활과 화살이다. 그 조화가 자아내는 인위적이지 않은 탄성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작지만 강한 우리 활이 지닌 그 강한 기(氣)를 우리도 손에 쥐고 있지 않은가. 우리 활의 '싹수 있는' 미래는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 궁사들 손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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