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를 하면서 결국 몸에 무리가 왔어요.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꾸벅.
독서토론 수업을 마무리했다. 교재 개발과 수업 진행을 병행하느라 몸은 지쳤지만, 학생들이 특목고에 합격하며 목표를 이루었기에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었다. 이제는 내 몸에 집중할 때였다.
그런데, 둘째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일정이 남아 있었다. 둘째 졸업식을 마치고 연말 콘서트를 다녀온 바로 다음날, 대학로로 향했다. 몸이 힘들어 아빠와 보라고 했지만, 아이는 고집스레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설날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저녁을 먹은 것이 얼마만인지. 식사를 마친 우리는 소극장에서 ‘긴긴밤’ 뮤지컬을 봤다. 아이가 이 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몇 번이고 읽고, 작가에게서 선물과 편지도 받았고, 뮤지컬 소식을 듣고는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어렵게 예매한 자리였다.
늙고 병든흰 바위코뿔소 노든과 귀여운 어린 펭귄의 여정 속에 노든의 가슴 아픈 과거는 내 눈물을 쏟게 했다. 나는 손수건도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휴지는 금방 축축해졌고, 옆에서 아이가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봤다. 책을 읽고 울던 아이가 공연에서는 담담했다. 실제 동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등장일물이라 낯설어서 그런가 하고, 이상하게 여겼는데, 아이는 조용히 배를 감싸 쥐고 웅크렸다.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공연을 끝까지 보았고,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밤늦게 도착하여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퇴원한 후에 집에 있으면 남편과 큰아이, 강아지까지 나도 모르게 신경 쓰게 될 게 뻔했다. 다행히 남편과 큰아이는 내 요양을 찬성했다. 두 사람이 걱정됐지만, 둘 다 성인이니 잘 해낼 거라 믿기로 했다.
요양원을 알아보았지만, 집 근처 시설은 모두 노인 대상이었다. 집에서 가깝고, 시설이 괜찮으며, 간호인력이 상주하여 수술 후 회복에 적합한 곳은 강남에 있었지만, 너무 멀어 가긴 어려웠다.
요양원의 대안으로 에어비앤비도 알아봤다. 식사는 배달음식으로 먹으면 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뿐인 청소가 마음에 걸렸다. 폐를 위해선 먼지 없는 곳이 필수였으니까.
결국, 남은 곳은 호텔뿐이었다. 이전 호텔처럼 건조한 바람이 쐬지 않는 곳으로 알아보았다. 가족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집에서 가까운 중소형 호텔을 하나 찾았다. 카펫 대신 마룻바닥, 청소, 조식 제공, 작은 피트니스센터까지—적당한 가격에 조건도 괜찮았다. 다만, 퇴원 날짜를 확정할 수 없어 예약을 미리 해두고 취소 가능 날짜를 기억해 두었다.
졸업식 용으로 발랐던 매니큐어를 다시 제거했다. 수술을 위해서는 손톱이 보여야 한다는 걸 지인이 알려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병원에 입원할 뻔했다. 입원일이 하필 일요일이라 낭패였을 것 같다.
무료 카지노 게임 전날은 둘째 아이의 캠프 입소식 전날이기도 무료 카지노 게임. 캠프 준비로 온종일 분주했다. 3주간 머무를 기숙사에서 입을 겨울옷 일주일 분을 챙기고, 빨래에서 잃어버리거나 뒤바뀌지 않도록 네임스티커를 하나하나 붙였다. 눈이 많이 올 테니 야외활동에 필요한 여분 운동화와 롱패딩도 챙겼다. 대형 캐리어가 꽉 차버렸다.
또한, 핸드폰이 금지되는 캠프라 전자사전과 아날로그 손목시계를 마련해야 무료 카지노 게임 (주 3회 저녁에만 20분간 스마트폰을 잠시 사용). 큰아이의 수능용 시계를 찾지 못해 결국 새 시계를 준비했다. 전자사전은 비싸서 망설이다 중고로 구했다. 이미 다른 부모들이 사재기라도 한 듯 매물이 빠르게 사라졌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거래를 마쳤다.
내 입원 준비는 뒷전이었다. 어차피 입원 당일 아침에 내 준비를 하면 되니까.
아침부터 폭설주의보가 내려 걱정됐다. 다행히 아이는 친구네 SUV를 타고 강원도로 떠났다. 남편이 운전해서 강원도까지 아이를 데려다준 후 다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간다는 불가능한 일정을 말했을 때 극구 반대했었는데, 친구네 엄마가 선뜻 손을 내밀어 주어 고마웠다. 생전 처음 가는 캠프인데도 신난 아이 얼굴을 보니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조용해진 집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짐을 하나하나 챙겼다. 병원에선 간단한 개인 용품과 철학책 한 권이면 충분했다. 아, 맛없을 병원식을 위해 김과 생수도 챙겼다. 병원 짐은 소형 캐리어 하나로 끝냈지만, 요양할 곳에서 필요한 짐은 많았다. 노트북, 노트, 입맛이 없을 때 먹을 누룽지컵, 김, 참치까지 야무지게 챙기고 옷가지를 넣다 보니 중형 캐리어가 꽉 찼다. 남편은 "뭘 벌써 그렇게 많이 챙기냐"라고 했다. 내가 미리 안 챙기면 누가 챙기나, 도와줄 생각은 없으면서.
짐을 다 정리하고 잠깐 쉬려는데, 카톡과 문자가 폭탄처럼 쏟아져 있는 걸 발견했다. 입원 전에 필수적으로 볼 영상을 여섯 개나 봐야 했고, 설문 조사도 있었다. 영상을 틀어놓고 보기 시작했다. 폐 수술 전 안내사항, 폐 수술 과정, 폐 수술 후 있을 수 있는 문제점, 폐 수술 후 필요한 운동, 호흡 연습하는 방법, 무료 카지노 게임 절차와 무료 카지노 게임생활에 대한 안내까지.... 보호자인 남편도 봐야 할 내용이었지만, 그는 소파에 누워 TV만 보며 "다 아는 거니까 안 봐도 된다"라고 했다. 폐 수술로 입원하는 건 처음이고, 주변 지인 중에도 같은 사례가 없는데 무슨 억지인지. 재차 보라는 내 말에 남편은 심통이 난 표정으로 마지못해 핸드폰 화면을 넘겼다.
오후 2시, 입원 안내 문자를 받았다. 그런데 무료 카지노 게임 직전에도 점심을 차려야 하는 내 모습에 서글퍼졌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한 뒤, 마지막으로 짐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남편은 캐리어를 가져가지도 않은 채 먼저 훌쩍 나가버렸다. 큰아이가 조용히 캐리어를 끌고 배웅해 줬다. 가족 중 유일하게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봐 준 사람이었다. 차로 10분이면 되는 거리.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다. 또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 혹시라도 수술이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3시가 조금 넘어 병원에 도착했다. 남편은 "로비에서 기다리라"며 주차하러 갔다. 나는 마냥 서서 남편을 기다리기보다 입원 수속을 먼저 밟기로 했다. 보호자도 등록해야 했는데, 안내문에는 보호자는 병원에 상주해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갑자기 당황한 남편은 "상주 못 하면 어떻게 하냐"라고 직원에게 물었다.
수술 일정은 남편이 함께할 수 있는 날짜에 맞춰 다시 잡았던 것이다. 퇴원까지 곁에 있어 주겠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며 대책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상황이 변했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줬어야 하지 않나. 아무 말이 없길래 입원기간에 상주 보호가 가능한 줄 알았는데... 남편 회사 상황이야 알지만, 최소한 나에게 상의는 했어야 했다. 입원을 하러 오는 순간에도 나는 외로웠다.
수술을 앞둔 무료 카지노 게임첫날,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했지만, 그 순간은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인간은 운명 앞에서 스스로를 가장 잘 발견한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주 1).운명처럼 피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의미이다. 폐수술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나도 나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아픔을 통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주 1)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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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pixabay, 여행 사진은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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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화~일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당분간 몸이 회복되는 동안만 시간을 고정하지 않고 연재할께요. 양해 부탁드립니더.
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를 위하여 /brunchbook/growth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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