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사의 단비가 내린다
“그땐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오랜만에 마을 도서관 동아리 <어쩌다, 필사 모임이 열렸다. 몇 달째 쉬고 있는 중이다. 모두 다시 해보고 싶다고 해서(진심이죠?), 방향을 논의해 보자며 모였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쁘다. 분주하다. 다이어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영양제를 거쳐 동네 선거 이야기로 갔다가, 누구네 아이들 연애사까지 번진다. 맥락 없는 이야기의 반경은 넓고도 광활하다. 말들은 망망대해를 떠돌다, 잠시 우주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9명이 그렇게 함께 떠들다 보면 아주 가끔, 정적이 흐를 때가 있다. 그러면 누군가가 묻는다. “아참, 우리 왜 모였더라?” 웃는다. 그제야 (잠깐) 필사 이야기가 어슬렁 얼굴을 내민다. 그러니까 저 '부담스러웠어요.'라는 말은 심각한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말끝에 덧붙인 가벼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다. 그리고 나 역시 격하게 동의한다. 맞다. 그때 나는 좀... 과했다. 아니, 꽤 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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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부터 11월까지, 마을에서 ‘읽고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름하여 [돈이 되는 메모]. 누군가는 나중에 이 다단계 같은 수상한 이름이 뭔가 싶어, 애초에 참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그러나 낯설고 이상하게 느꼈다면, 기획의도를 정확하게 잘 파악한 것이다. 당시 나는 작가이자 마을 주민으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평생학습마을 코디네이터와 만나 목표를 세웠다. 구체적 방법은 아직이지만, 지향점은 명확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즐겁게! 마을 기록 책을 만들자. 작가가 아닌 누군가가 아니라, 모두가 작가로 함께 쓰자."
그래서 3박 4일 밤을 지새우며 워크숍을 하며 장기적인 계획 아래 동아리 이름을 정했다—라고 근사하게 쓰고 싶지만, 거짓말이다. 그날도 한참 다른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 툭 튀어나온 말을 덥석 붙잡아 5분 만에 이름을 정했다.
쉽고, 친근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가장 관심 있는 것이 뭘까? 바로 ‘돈’이었다. 특히 주식. 당시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었고, 온 나라에서 누가 얼마 벌었다더라, 어디에 투자해야 하더라 하는 말들이 마치 날씨처럼 오고 갔다. 마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그 열기를 살짝 차용하고 싶었다. 너무 진지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보다, ‘어, 이게 뭐지?’ 싶게. 피식 웃으며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싶었다.
‘쓴다는 것’은 근사하다. 그러나 마음먹기까지 벽이 있다. 진지하고 감성적이면 그 벽은 더 높아질게 뻔했다. 프로그램 이름만이라도 한없이 가볍고 세속적으로 짓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돈이 되는 메모]다. '필사'는 너무 진지해 보여서, 조금 더 일상적인 느낌이 드는 ‘메모’로 했다(그런데 요즘 필사가 그렇게 뜨고 있다. 우리는 세월을 앞서간 것이다. 허허허).
물론, 단기적으로 매일 카지노 게임을 적는 일이 당장 돈을 벌게 해 줄 리는 없다. 그러나 나는 진짜로 투자라고 믿었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읽고 쓴다는 건 결국 자기를 돌아보는 일이다. 매일 카지노 게임을 읽고, 손으로 따라 쓰고, 거기서 자꾸만 자기 생각이 튀어나온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삶을 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읽고 쓰는 일만큼 강력한 삶에 대한 투자는 없다(물론, 투자만 잔뜩 하고 수익은 요원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난다. 믿자. 믿어. 인디언 기우제처럼)!
[돈이 되는 메모]라는 이름은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주식 투자에 빗대어, 천천히, 카지노 게임나 꾸준히 나와 삶에 장기 투자를 해보자는 뜻. 그래서 모집 공고도 이렇게 썼다.
"단타는 이제 그만, 카지노 게임는 장투로 간다! 달까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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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시작했다. 그러나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필사로 시작된 활동이 매일매일 수익률(?)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안팎에서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필사한 문장을 온라인에 올리면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처음엔 내가 올린 문장을 함께 따라 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글벗들은 스스로 문장을 고르고, 챕터 하나, 책 한 권을 함께 필사하고, 직접 문장을 찾고 해석했다. 필사의 힘을 온몸으로 익혀갔다. 그리고 드디어, 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마을 아카이빙 작업까지 해 냈다 주민 인터뷰, 역사 수집, 웹 신문 연재, 기록 책 출간까지. 이 정도면 진짜 수익률 최고 아닌가!
나는 그 모든 힘이 ‘함께’에 있었다고 믿는다. 혼자는 어렵고, 사실 귀찮지만 함께 하면 다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메모’, 즉 필사가 있었다. 필사를 통해 감정을 꺼내고, 댓글을 통해 연결되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에 물들어갔다. 누군가는 짧게, 누군가는 길게, 어떤 날은 많이, 어떤 날은 겨우 한 줄. 그러나 문장은 언제나 우리 삶과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그렇다. 맞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꽤 많이, 심하게 방방 뛰었다. 그래서 4년 뒤 나는, “그땐 좀 부담스러웠어요”라는 말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변명 아닌 변명이라면, 눈앞의 마을 기록도 중요했지만—사실, 내가 고른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켜 되돌아올 때, 그건 어떤 글보다 깊은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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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 시즌이다. 카지노 게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아니 우긴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돈이 되는 메모]가 서로에게 ‘단비’였다고. 같은 문장을 베껴 쓰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함께 시간을 경작했다고. 그리고 그 결실이 지금의 <어쩌다, 필사라고.
어떤가. 이 정도면… 아주 근사한 풍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