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한카지노 쿠폰!”
메아리조차 없었다.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내 목소리가 마치 이별이라도 고하듯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번 불러 카지노 쿠폰를 불러 보는데 이번에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신발을 벗을 여유 따위는 없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신고 있던 슬리퍼의 앞부분이 턱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들고 있던 상자를 놓치고 말았다.
마치 카지노 쿠폰의 손을 놓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손에서 떨어져 나간 상자 안에서 메스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위로 새빨간 장미의 꽃잎들이 피가 톡톡 떨어지듯 그 위에 떨어졌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꽃잎들이 메스에 새겨진 글자 가운데에서 ‘장미꽃’이라는 세 글자만 지워 버렸다.
그렇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남은 세 글자 ‘한 카지노 쿠폰’뿐이었다.
“카지노 쿠폰야…….”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딸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생각할 게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절대 함부로 문을 열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그녀의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한카지노 쿠폰!”
불은 환하게 켜져 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욕실로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또 외쳤다.
“한카지노 쿠폰!”
불은 꺼져 있었고 이번에도 역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풀렸는지 나는 한쪽으로 휘청거렸다. 나의 오른손은 욕실 문고리를 잡은 채 거의 반쯤 매달렸다. 잠시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문고리를 잡고 있던 내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아직 아파트 내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 멀리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힘차게 벽을 짚고 일어섰다. 신발장을 열어 운동화를 꺼냈다. 뒷부분을 손가락으로 당긴 뒤 발을 욱여넣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바닥을 박차며 현관문 밖으로 나섰다.
“어어!”
“아압 빠!”
카지노 쿠폰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머리와 어깨를 감싸 안았지만 무게 중심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아빠.”
“카지노 쿠폰야,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대체 어디 갔었어!”
“어딜 가긴 어딜 가. 아빠 찾으러 갔지.”
“나를?”
“갑자기 아빠가 말도 없이 나갔잖아.”
“아…… 어! 마저, 그랬었지.”
나는 그녀를 일으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그러자 카지노 쿠폰는 반대로 나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나도 곧바로 뒤따라 나가긴 했는데 아빠가 안 보이더라고.”
“계단으로 내려갔거든.”
“왠지 그럴 것 같았어. 그때 카지노 쿠폰가 위층에서 막 내려오는 중이었거든.”
내가 현관문 밖을 나섰을 때 카지노 쿠폰가 20층에 멈춰 있던 게 떠올랐다.
“그래? 그런데 왜 우리가 못 만났지? 카지노 쿠폰를 타고 내려왔으면 네가 먼저 도착했거나 비슷하게 만났을 텐데.”
“아, 그게 사실은…….”
카지노 쿠폰는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것은 무언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짓는 표정이다. 예전에 희진이가 종종 그랬었는데 그녀의 딸답게 표정 하나 다르지 않았다.
“내가 1층을 누르려고 했는데 타고 있던 사람이 꼭대기 층을 먼저 눌러 버렸지 뭐야.”
“카지노 쿠폰를 타고 내려왔는데 그냥 다시 올라갔다고?”
“그렇다니까. 차라리 안 탔으면 그냥 아빠처럼 계단으로 내려갔을 텐데.”
나는 송희를 데리고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아기자기한 캔버스화를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거실 바닥 위의 슬리퍼, 택배 상자, 메스, 꽃잎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뭐야!”
“별거 아냐.”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빠! 슬리퍼는 왜 저기에 있는데?”
“가끔은 그럴 수도 있지 않아?”
절대 없다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콕콕 찔러 댔다. 그 눈매가 어찌나 사나운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잡아먹힐지도 모르겠다.
희진이 닮아서 엄청 깔끔한 성격이라, 그녀의 물건을 볼 때면 군대를 다녀온 나보다도 훨씬 더 각이 잡혀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이 그녀에게 있어 아주 참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욕실 문은 왜 열려 있지? 어? 내 방은 또 왜 열려 있지?”
“바람이…… 부는구나…….”
“…….”
“아이고, 우리 예쁜 딸!”
“압 빠아아아아아!”
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꽃잎을 한 장 한 장 줍고 있는 동안 송희는 양치질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메스에 새겨진 ‘한 송희’라는 글자가 내 손가락 끝을 스치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현관문에서 송희가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카지노 쿠폰야!”
“아읍! 쁘으!”
“미안미안미안미안! 아빠가 잘못했어! 진짜 미안해! 사랑해!”
“으으으으!”
무심결에 욕실 문을 활짝 열었다가 깜짝 놀라 다시 문을 닫았다.
다행히도 카지노 쿠폰는 칫솔을 입에 물고 서 있었다.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보던 그녀의 표정은, 그 작은 입술 속에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욕이란 욕을 한꺼번에 방출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만약에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면 어떤 느낌일지 지금 막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얼굴은 희진이를 닮아서 순둥순둥하지만 성격은 어릴 때의 나와 완전 판박이다. 마음에 안 들면 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아아아아! 아프다니까!”
“아빠를 꼬집는 내 마음도 아프거든?”
카지노 쿠폰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다.
한때는 희진이를 이해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카지노 쿠폰를 이해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춘기 소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이럴 때 희진이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처받지 마, 아빠.”
방문이 살짝 열리더니 그녀가 고개를 살짝 내밀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기분이 다 풀린 건 아니야.”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면 늘 카지노 쿠폰가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정말로 다 컸나 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어른인 것 같다.
“근데 아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 아냐?”
“하고 싶은 말?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