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번 나에게 너무 이르게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첫 책을 출간할 때도 얼떨떨한 와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내 책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후 영풍문고 입점 그리고 e-book 출간도 마찬가지였다. 꾸준히 글을 써온 노력 덕분에 책이란 물성을 손에 쥐었고 그로 인해 열린 새로운 세상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지난해 시립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수필 수업에 참여했다. 봄에 시작해 겨울에 끝난 그 수업에서 한 달에 한 편 선생님이 주신 주제로 글을 썼다.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은 것은 연말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는 동아리 문집을 구성원의 손으로 만들면 더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문집 제작을 권유하신 것이다.
매회 수업의 참여자는 10명가량이었다. 그중에서 자비로 문집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기로 동의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4명. 나는 속으로 작게 안도했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요구사항이 많을 텐데 그것을 맞추기 위해 받을 스트레스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누가 봐도 까다롭고 요구가 많을 것 같은 참여자라면 더욱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결론만 내어둔 채 12월 말 수필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제안을 받은 이후 흥분만큼이나 적지 않은 초조함도 들끓었다. 첫 책을 출간한 지 2년이 지났다. 몇 달 동안 배워서 책을 만들었으니 실제로는 더 오래되었다. 그것들이 아직 내 안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다 까먹은 건 아닐까? 이젠 옆에서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가장 큰 고민을 따로 있었다. 인쇄비야 원가 그대로 진행하면 되지만, 편집비, 그러니까 나의 용역비에 과연 얼마를 책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디 물어볼 곳도 없었다. 처음부터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처음 주어진 기회를 돈 문제로 어지럽히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일종의 재능 기부라는 생각으로 아주 적은 금액을 제시했다. 책을 받아 든 참여자들 수고에 비해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으므로 내 나름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당연하게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시작할 때만 해도 시민작가 발굴에 의지를 보이던 도서관은 어째 갈수록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엔 100만 원 지원을 약속했지만 최종 결과는 무산이었다. 희망고문이 따로 없었다. 카드 결제기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구입까지 고민했던 카지노 게임 추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1월 초 우리는 도서관이 아닌 카페에 모여 앉았다. 문집 제작을 위한 사전모임이었다. 긴 설 연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원고 마감일은 2월 중순으로 잡혔다. 그때부터 나는 예상했다. 연휴가 끝나기 전까진 아무도 원고를 손보지 않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나부터가 연휴가 끝나고서야 원고에 손을 댈 수 있었다. 본문 편집과 표지 디자인 작업도 그제야 손대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자전거를 배울 때 나의 선생님은 몸으로 배운 건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책 만드는 것도 결국 몸으로 배우는 걸까? 책 작업을 시작하자 생각보다 많은 게 기억 속에 남아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간 내게 쌓인 스킬과 노하우는 나의 작업을 한결 손쉽게 만들었다. 어느새 독립출판 4년 차에 접어든 자의 나름의 ‘짬’이었다.
수정된 원고가 모였을 때는 목표로 삼은 2월 말까지 보름 남짓의 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내 첫 책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그러니까 조금은 트렌디한 표지를 만들고 싶어 도서관에서 자료조사를 카지노 게임 추천. 본문은 보고 또 보며 수정을 반복카지노 게임 추천. 200페이지가 넘지만 지겹도록 들여다봐야 하는 본문은 의외로 글의 내용보단 형식을 통일하는데 품이 많이 든다. 단락의 위치를 맞추기 위해 모니터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이고 더 크고 정확히 보기 위해 TV 모니터와 연결카지노 게임 추천.
커뮤니케이션 이슈로 인해 파일이 26일에서야 인쇄소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착실히 진행된 인쇄는 2월의 마지막 날 나에게 카지노 게임 추천 안겨 주었다. 솔직히 엄청 떨렸다. 내 출판사의 두 번째 책이라서, 소장용이라고는 하나 타인의 글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보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에 더 그랬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 추천 꺼내든 순간 화사한 책의 표지만큼이나 나도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내게 남은 마지막 작업은 입고였다. 그간 도서관을 오가며 시민작가 신작도서 코너를 눈여겨보았다. 담당자에게 문의 후 책이 나오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내 나름의 입고를 했다. 이제 남겨진 일은 책을 공저자들에게 건네는 일뿐이었다. 1년 여 함께 글을 쓰고 공유한 데다 같은 목표를 갖고 움직여온 시간 덕분에 우리의 관계는 말할 수 없이 돈독했다. 2명은 직장인이라서 없는 시간을 쪼개 참여했기에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이날 나는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냈고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지난해 말부터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2월 중엔 책을 출간한다는 목표는 무를 수 없었다. 그걸 해내며 나는 내내 지치고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낫는 기분을 느꼈다.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보단 재미를 훨씬 많이 느꼈다. 그러다 보니 알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돈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커리어를 쌓았고 돈까지 생기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진지하게 글을 쓴다는 이유로 주위에서 여러 조언을 듣는다. 내 진정성이 그들에게 조언할 권리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일은 아주 빈번히 발생했다. 정말 나를 염려해서 하는 조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대개의 조언들은 무책임했고 카지노 게임 추천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힘이 들었다. 의욕적으로 건설적인 시도를 하지 못하는 것도, 그들의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내가 부족해서인 것 같았다. 이렇게 글만 열심히 써봤자 뭐가 되긴 할까? 유일하게 자부할 수 있는 성실함은 반쪽짜리 노력처럼 보였다. 뚜렷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오래 따라오지 못할 때마다 더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쌓이고 쌓이다 지난해 고름처럼 터져 나왔던 것이리라.
마음이 힘들 땐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당장 눈앞에 닥친 것만 해치우자고 마음먹었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블로그 재능기분도 문집 작업을 그런 마음으로 해치웠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결국은 어딘가에 닿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거북이보다 달팽이보다 느린 들 어떠하랴? 늦게 등단한 이로 자주 거론되는 박완서 작가의 등단 나이를 카지노 게임 추천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어쩌면 나의 속도는 달팽이보다 느린 미물의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내가, 그러니까 엄청 늦게 시작해서 대단한 시도나 애씀 없이 그저 쓰기만 했는데도 뭔가 이뤄낸다면 아마도 카지노 게임 추천 최초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은 누군가에게 또 영감이 되겠지.
나만의 속도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에 그 마음이 더 귀하게 여겨졌다. 내 생각보다 이르게 기회가 왔다고 했지만, 그간 쌓아온 노력이 없었다면 오지 않았을 기회였다. 그동안 성실하게 또 진심을 다해 카지노 게임 추천했던 것들이 그 기회의 밑거름이 되었다. 어쩌면 그건 너무 느리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은 적절한 때였는지도 모른다.
2024년 ‘북앤콘텐츠페어’에서 만난 작가 겸 독립출판사 사장님도, 당근 소모임에서 만난 웹소설 작가님도 같은 메시지를 주셨다. 그건 카지노 게임 추천 힘에 대한 얘기였다. 책 한 권, 웹소설 한 편은 아주 적은 수입만을 보장해 준다. 후자의 경우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그러나 책과 웹소설이 쌓일수록, 이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작가만이 지닌 고유한 이야기의 힘으로 성장한다. 작가만의 대체 불가능한 특별한 에너지로 말이다.
고작 책 두 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단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잊히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가 알아주는 작가는 아닐지라도, 오롯이 나의 힘으로 두 개의 세계를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에게 괜찮은 성과라고 말해주고 싶다. 카지노 게임 추천 힘을 믿는다. 지금의 나는 앞으로 쌓아 올릴 것들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 그걸 알지 못하므로 나는 오늘도 나만의 귀한 마음으로 느린 걸음을 내딛는다.
** (제목)IImage byPaul Stachowiakfrom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