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mond Carver 3.
“처음만났을때부터그는훌륭했어요.
완벽한편집자였죠.물론독특한테이블매너를제외하면말이에요.”
교과서 편집자 일은 카버에게 좋은 만남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카버는 출판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이들과 만나 현실의 감을 익히고 자신의 이름도 조금씩 알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독특한 테이블 매너를 가진 이가 카버의 인생에 깊이 파고들 줄이야…. 카버는 물론이고 그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말이다.
그 날 카버는 다른 편집자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그들을 초대한 것은 교과서 편집 일을 하고 있었던 고든 리시였다. 그는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고 사람들이 모이자 식사를 시작했다. 카버를 비롯한 편집자들은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든 리시였다. 고든 리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음식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포크를 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카버와 다른 편집자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카버와 편집자들이 식사를 마치자 그때야 남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가 왜 그러는지 카버는 알 수 없었다. 그와 먼저 알고 지냈던 편집자 역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카버는 리시라는 인물 자체에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카버가 그를 관찰하려고 눈을 돌리는데 리시는 이미 수많은 편집자 사이에서 카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을까? 카버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때, 리시가 카버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카버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을 했는데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리시가 먼저 카버에게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당신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아주 훌륭해요. 무척이나 마음에 들더군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버는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슨 상관이랴. 테이블 매너 따위. 능력 있는 편집자가 내 작품이 좋다는데.
서로에게 어떤 통성명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두 사람은 이후 자주 식사를 함께했다. 그때마다 두 사람은 문학적 교감을 나눴는데 리시는 언제나 카버를 비롯한 창작자들을 향해 존경심을 내비쳤다. 자신은 절대 그러한 창작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그러는 중에도 리시는 자신의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작품을 보는 눈만큼이나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는 눈 역시 뛰어났다.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리시가 스스로 자부하는 능력이었다. 리시는 그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계획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계획의 밑그림이 완성되자 리시의 발걸음은 빠르고 가벼워졌다. 때로는 발걸음이 너무 빨라 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그가 도착한 곳이 바로 <에스콰이어였다. 당시 <에스콰이어가 문학, 특히 소설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컸다. 문학계에서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곳이었지만 모두가 노리기에 그만큼 어려운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 <에스콰이어에 리시는 직진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큰 그림을 받아주기 위해서 그 정도 영향력은 당연히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보였다. 마치 <에스콰이어가 자신을 택한 것이 아닌, 리시 자신이 <에스콰이어를 선택한 것 같았다.
리시는 <에스콰이어의 소설 담당 편집부로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밑그림을 완성해줄 퍼즐에 집중했다. 그가 완성해야 할 그림은 ‘소설'이었는데 미국 내에서 인기가 식어가고 있던 단편소설 분야에 다시금 바람을 몰아치게 하고 싶었다. 리시는 지금껏 모아둔 여러 퍼즐 조각들을 만지작거렸다. 그중에서 가장 작은 조각 하나가 계속해서 리시의 손을 스쳤다. 리시는 아직 덜 다듬어져 뾰족하기만 한, 그래서 더 반짝여 보이는 퍼즐을 손에 들었다.
리시의 손에 잡힌 퍼즐 조각. 거기에는 ‘레이먼드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리시가 퍼즐을 준비하는 동안 카버도 조금씩 서랍 안의 종이 뭉치를 원고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단편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잡지 <디셈버에 실리는 행운과 함께 <1967년 전미 최우수 단편 선집에 수록되었다. 기쁜 일이었지만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카버는 여전히 가난했고, 여전히 자신의 이름이 전면에 박힌 단편집 한 권도 손에 넣지 못한 작가였다. 그런 작가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카버는 점점 불안해졌다. “내일이면 극적인 무언가를 기대하기에 너무 늙어버린 것이 아닐까?” 카버는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을 견디지 못하고 술에 의지한 채 생각을 흩날렸다.
술에 취해 있을 때 카버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을 때 글을 썼고, 술에 취했을 때 아내 매리앤과 별거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파산신청을 하고 나자 술에서 깰 기운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덧 36살이었다. 정말이지 술에 취해 있을 때 카버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카버의 흘러간 시간을 보상해줄 이는 없었다. 그의 문학 스승 존 가드너도, 별거한 아내 매리앤도 그것만은 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카버에게는 교과서 편집자 일을 하며 만났던, 독특한 테이블 매너를 가졌던,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주던 고든 리시가 있었다. 그는 불가능한 선물을 카버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가 가져온 선물 상자는 카버의 흘러간 시간을 보상해주고도 남을만한 것이었다.
카버가 고든 리시의 연락을 받던 당시, 그의 위치는 대단히 높아져 있었다. 타고났다고밖에 볼 수 없을 작가를 발견하는 눈. 누가 봐도 과했지만, 결과에 관해선 이견을 달 수 없었던 편집력. 그는 이 두 가지 능력을 양손에 쥐고 자신이 꿈꾸던 문학의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그림이 완성되면 완성될수록 미국 단편 문학의 흐름과 열기 또한 빠르게 올랐다.
카버가 그런 리시와 미리 만났다는 것. 뉴욕 출판 시장 한가운데서 거침없이 펜을 휘두르고 있는 리시와 미리 만났다는 것. 그것은 카버도 모르게 찾아온 그의 첫 번째 기적이었다. 리시는 언제나 카버를 눈여겨보고 있었고 카버 역시 온갖 불운 속에서도 펜을 잃어버리는 불운만은 피하고 있었다. 리시가 처음으로 주목한 카버의 단편은 <이웃 사람들이었다. 그는 <이웃 사람들을 비롯해 몇몇 단편 작품을 <에스콰이어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소개하려 애썼다. 그는 문학인들의 모임이 있으면 “이 사람이 바로 다음 세대 작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가 될 사람입니다.”라며 카버를 추켜세워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리시는 카버가 자신이 발굴한 작가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능력만큼이나 소유욕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소유욕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덕분에 카버의 서랍 속 종이뭉치들은 빠른 속도로 원고가 되었고 잡지에 실렸으며 먼지 대신 사람들의 시선을 쌓을 수 있었다. 카버는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우편배달부를 만난 것이었고 리시는 모든 편집자가 꿈꾸는 완벽한 작가의 시작점을 함께하는 영광을 얻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앞으로 다가올 사건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어야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작품이 미국 문학에 가져올 섬광에, 그리고 독자들의 끝도 없는 사인 요청에.
“지금당장불을지르기로마음먹었습니다.”
전화가 걸려왔고. 리시가 말을 했다. 카버는 수화기 너머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통화는 곧 끝났다. 카버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술이 아닌 다른 이유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는 빛바랜 원고가 가득 담겨 있었다. 불을 지르기엔 이것으로 충분했다. 카버는 리시에게 답장을 보냈다. “지금 당장 불을 지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카버의 답장을 받아 본 리시는 <에스콰이어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흥분을 다시금 느꼈다. 그때 잡은 다듬어지지 않은 퍼즐 조각이 자신의 손으로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리시는 ‘맥그로-힐 컴퍼니'의 편집장 힐스에게 전화를 걸어 소설출판 기획을 시작하겠노라 전했다.
같은 시각, 카버는 책상에 앉아 자신의 원고를 살펴보았다. 자신의 눈으로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다. 기적을 바라던 지난 시간과 좁은 자동차에 쪼그려 앉아 글을 쓰던 순간들. 그렇게 쓰인 빛바랜 서랍 속 종이 뭉치들. 아니, 이제는 단편집으로 엮어질 원고들. 그 모든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모든 원고를 살펴보고 나자 카버는 리시와 자신이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의 펜으로 세상에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꿈. 그 꿈의 시작은 화려할수록 좋았다. 그 꿈의 열기는 뜨거울수록 좋았다. 집 한 채가 고스란히 불타버릴 정도로 뜨거운 것이 좋았다. 카버와 리시. 두 사람이 품고 있는 펜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작업은 바로 진행이 되었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를 포함하여 여러 단편을 리시가 검토했다. 리시가 1차 편집을 마치면 두 사람은 오랜 논의에 들어갔다. 리시의 편집은 대담했다. 카버는 대부분의 편집을 받아들였지만 몇몇 너무 과하다 느껴지는 부분은 지적했다. 하지만 리시의 설득에 편집은 그의 펜에서 대부분 결정되었다. 물론 편집 결정의 바탕에는 믿음이 있었다. 리시의 편집은 대담했지만 모든 것을 분해한 뒤, 전혀 다른 파트를 가져와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편집을 할 때면 그야말로 마에스트로였다. 같은 악보를 가지고 어디에 강약을 둘지, 어디에서 어떻게 시간을 배분할지, 어느 시점에 지휘봉을 휘두르고 또 거둬들일지 정확히 판단하고 해석하는 지휘자였다. 리시가 카버의 작품을 믿고 해석했듯, 카버 역시 리시의 능력을 믿고 편집을 인정했다. 그런 서로에 대한 믿음은 둘의 작품을 결론까지 빠르게 달려가게 했다.
‘레이먼드 카버' 마침내 그의 이름이 전면에 새겨진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리시의 지휘에 맞춰 편집된 카버의 단편집이었다. 이 단편집은 지금까지 카버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것이었고, 리시가 미국 문단에 보여주고자 한 거대한 그림의 바탕이었다. 리시가 작품의 편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절제미였다.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두 문장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리시의 편집 철학에 맞춰 출간된 <제발 조용히 좀 해요의 작품들은 위태로운 분위기와 서늘한 문체, 극도로 간결해진 단어들 속에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를 카버의 스타일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웠고 리시의 편집철학 때문에 희생되어야 했던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은 “이봐! 날 놓고 갈셈이야?” 라며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작가의 성공적인 출발점에 놓인 호의적인 평가들은 카버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았다. 이어서 따라온 부수적인 성공의 전리품도 마찬가지로 전혀 해가 되지 않았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출간된 1977년, 모든 삶이 정상을 넘어 이상으로 방향을 잡자 카버는 가난만큼이나 오래 자신에게 붙어있었던 술병을 깨뜨린다. 다른 많은 것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술병을 버리고 나니 제자리의 주인이 돌아왔다. 그들의 중심에는 이제 서랍에서 뛰쳐나와 한 권의 책으로 서재에 꽂힌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있었다. 17살. ‘파머 글쓰기 협회'에서 시작된 글쓰기의 결과가 39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떤 추상적인 대사와 문장보다 그 정확한 사실 하나가 카버를 위로했다. 카버는 이제 술을 마시지 않아도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지긋지긋하게 반복된 불행을 겪은 그였기에 비로소 찾아온 행운 역시 반복될 것임을 카버는 믿을 수 있었다. 카버에게는 여전히 자신을 불타오르게 하는 작품들이 있었고, 그런 작품을 기다리는 든든한 편집자. 고든 리시가 있었다.
“당신을믿어요.이제제이야기에근육을좀더붙여주시면좋겠어요.”
세상은 카버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희망을 말하는 작가였다. 정확한 문장과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의 작품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일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사악한 본성인 권태나 고독, 나태와 배신에 시달리던 당시의 사람들은 카버의 작품에 담겨 있는 희망이라는 것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보이는 것만 믿어야 하는 위태로운 사회에서 카버는 눈에 보이는 희망을 남기는 작가였다.
카버는 서둘러 다음 단편집 작업을 시작했고 그의 편집자는 당연히 고든 리시였다.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민낯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 민낯으로 독자들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역시 얼마든지 있었다. 카버는 편집을 부탁하며 리시에게 근육을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리시는 자신의 편집 철학을 지키고자 했다. 그것 하나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고, 카버의 첫 단편집을 성공시킨 그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리시가 카버의 이야기에 근육을 붙이기도 전에 살점을 베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카버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시의 편집은 지난번보다 훨씬 강해졌다. 대다수 작품에서 많은 문장이 베어져 나갔으며(이봐! 또 나를 놓고 갈 셈이야?), 어떤 작품은 70% 이상 삭제된 작품도 있었다. 심지어 제목과 결말까지 수정된 일도 있었으니 카버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카버는 수락의 편지 대신 항의의 메시지를 보낸다.
“책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거예요.
맞아요. 당신 말처럼 어쩌면 편집본이 문학적으로 나을 수도 있고, 대중들의 입맛에도 잘 맞을지 모르죠. 하지만 이건 아니에요. 이건 나를 죽게 할 거예요.”
무료 카지노 게임 항의와 함께 가능하다면 출간 자체를 미루고 다시 검토해보자고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리시는 자신의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리시의 주장은 그의 편집 방향만큼이나 간결했다.
“레이. 생각해보세요. 어떤 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지는 걸까요? 작가가 만들어낸 날것과 그것을 조리해 다시 만들어진 아름다운 것. 둘 중에서 말이에요. 결국, 뛰어난 생산물이 남게 되는 겁니다.”
무료 카지노 게임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헤어진 매리앤의 말을 떠올렸다.
“레이, 지금 당신의 모습이 어떤 것 같아요? 당신은 지금 제도권에 팔려가려고 애쓰는 창녀 같아요. 아주 엉망이라고요!”
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 그 당시 매리앤에게 대답한 자신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출간을 위해서는 타협을 할 수도 있어. 서랍 안에 작품을 쌓아놓고 빛이 바라길 기다리기 보다는 작품들이 전량 매진 되는 쪽이 훨씬 나아.”
카버는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붉은 사인펜으로 교정된 원고 뭉치를 쓰레기통 대신 타자기로 가져갔다.
4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