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동민 Jul 21. 2018

당신을 믿어요

Stephen King 4.

카지노 가입 쿠폰




소설에는무언가있어요.어서나머지이야기를들려줘요.”


킹은 미완의 소설 원고를 구긴 채 쓰레기통에 버렸다. 버려진 원고 위로 담뱃재가 수북이 쌓였다.

다음 날은 일상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첫 원고를 우체통이 아닌 쓰레기통에 넣어야 했던 킹은 실패자의 모습으로 영어 수업을 했다. 물론 아무도 그가 무언가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성공한 모습을 본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으니까.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킹을 맞아준 것은 태비사 였다. 구겨진 원고 뭉치를 들고 있는 태비사. 킹은 태비사의 손에 들려진 구겨진 원고 뭉치를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태비사를 바라보았다. 원고 위로 수북이 쌓였을 담뱃재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구김 역시 모두 펴진 상태였다. 태비사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킹은 원고를 가리키며 실패한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태비사는 손에서 원고를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킹이 노트를 품에 끌어안은 것처럼 원고를 양손으로 꼭 쥐며 말했다.


“이 소설에는 무언가 있어요.”


태비사는 미완의 원고 속 이야기를 단순히 재미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고에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태비사의 앞에서 킹은 혼란스러웠다. 저 이야기를 완성하려면 앞으로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달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그것은 시간을 거는 도박과도 같았다. 혼자만의 시간이라면 걸어봄 직했지만 킹은 가족 네 가족분의 시간을 함께 걸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 도박에 선뜻 나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태비사는 킹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태비사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말로 믿음을 전했다. 킹을 믿는다고. 이 이야기를 믿는다고. 그 말 한마디에 킹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생긴 여백의 공간에 버려진 원고 속 이야기를 순식간에 적어 나갔다. 그럼에도 여백의 공간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그것은 허락이었다. 이 이야기를 계속 써도 좋다는 허락. 킹은 기꺼이 여백을 받아들였다.




<캐리. 작품의 제목을 쓰고 원고를 묶자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였다. V.I.B 출판사의 <함정과 진자에 버금갈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킹은 <캐리를 친구가 일하는 출판사였던 더블데이 출판사에 보냈다. 원고가 쓰레기통에 이어 두 번째로 자신의 손을 떠나자 킹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첫 실패 후에 맛보았던 일상과는 전혀 다른 기분의 일상이었다. 킹은 아이를 돌보고 수업을 하고 소설을 썼다. 며칠이 반복되었는지 세어보지는 않았다. 기다림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킹은 이미 베테랑이었다. 그렇게 <캐리를 떠나보내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하고 있는 킹을 급하게 호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킹은 오늘따라 복도가 지나치게 길어 보였다. 누군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킹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올라왔다. 직감이란 그렇게나 강한 것이었다. 일찍이 태비사의 직감이 그러했듯이.


교무실에 도착한 킹은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태비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킹의 집에는 전화가 없었기에 이웃집에서 건 것이었으리라. 킹은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 아이들이 다쳤거나 <캐리가 팔렸거나. 또 한 번의 도박 앞에 판돈을 걸기도 전에 태비사는 스코어 보드에 떠오른 문장을 외쳤다.


‘축하. 더블데이 출판사에서 <캐리 출간 결정.’


‘뛸 듯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킹은 정말이지 운동장을 순식간에 수십 바퀴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태비사는 이미 뛰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보의 말 그대로 킹은 축하를 받아야 했다. 태비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자격이 있었다.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자격이 아니었다. 서로의 모든 것을 믿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성공의 자격이었다. 그리고 자격에 대한 대가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근처에서있는가장좋고값비싼물건을샀습니다.

그때는그것외에는어떤생각도들지않았죠.”


<캐리의 출간이 결정되자 태비사는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며 킹에게 전업 작가를 권했다. 하지만 킹은 이제 첫 번째 출간을 했을 뿐이라며 스스로 냉정해지려 애썼다. 어쩌면 한 번의 행운으로 끝날지 모를 사건에 미래의 전부를 맡길 수는 없었다. 대신 킹은 세상이 자신에게 한 번의 확신을 더 준다면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하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은 바로 <캐리의 보급판 출간 계약이었다. 그것이 결정된다면 못해도 지금 교사 연봉의 4배는 받을 수 있었다. 돈의 액수만큼 시간의 숫자를 버는 일이었다. 희망의 퍼센티지가 너무 높게 섞인 바람이었기에 킹과 태비사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딱 하나,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전보가 아닌 전화로 소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출간의 댓가는 그렇게나 호화로운 것이었다.


킹과 태비사는 평일에는 전화를 기다리고 주말에는 다음 주에 걸려 올지도 모를 전화의 내용을 상상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일요일이었다. 태비사가 처가에 가있는 사이 킹은 거실에 앉아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일요일의 전화는 늘 그렇듯 드라마틱한 내용이 없었기에 킹은 담담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이는 더블데이 출판사의 친구 빌 톰슨이었다. 톰슨은 다짜고짜 킹에게 지금 앉아 있냐고 물었다. 킹은 이상한 소리를 하는 친구에게 본론을 재촉했다. 그러자 톰슨이 말했다. <캐리의 보급판 계약이 40만 달러에 성사됐다고. ‘아뿔싸.’ 킹은 친구의 말대로 의자에 앉아 있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다리에는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입은 벌어진 상태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친구는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있느냐고 채근했지만 그런 친구에게 대답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 4만 달러라고 했나?”


겨우 입을 열어 한 질문은 형편없었다. 친구는 40만 달러라며 킹의 말을 수정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킹은 리듬과 박자를 무시하며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작디작은 집을 금세 눈으로 훑은 킹은 처가에 전화를 걸었다. 태비사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그녀의 목소리만이 혼돈 상태의 자신을 가라앉혀 줄 것 같았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 태비사는 없었다. 이미 집으로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킹은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는 집을 나섰다. 문을 나서면서도 킹은 자꾸만 뒤를 돌아 집을 둘러 보고는 갑자기 잊고 있던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급하게 거리를 내달렸다.


“태비사에게 어머니 날 선물을 해줘야지. 가능하면 가장 값비싼 걸로.”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에 도착했지만, 일요일에 문을 연 가게는 많지 않았다. 겨우 문이 열린 가게에 들어서서 빠르게 물건을 훑었다. 그리고는 가장 좋아 보이는 물건을 집어 들고 집으로 출발했다. 킹은 아직도 태비사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래서 아직도 혼돈 그 자체였다.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서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태비사가 보였다. 그 소리에 킹의 숨과 머리는 거짓말처럼 차분해졌다. 그런 킹의 모습을 보며 태비사는 어디 갔다 왔냐며 일상의 질문을 던졌다. 킹은 대답 대신 손에 든 물건을 선물이라며 태비사에게 건넸다. 드라이기였다. 태비사는 갑자기 선물이라며 드라이기를 주는 킹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킹은 그 얼굴을 마주 보며 말했다.


“<캐리의 보급판 판권이 팔렸어. 40만 달러에.”


태비사는 킹이 그랬던 것처럼 작디작은 집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저고마울뿐입니다.사람들앞에나서기전에지퍼가열렸다말해주는사람이곁에있다는것이요.”


멀리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박수 소리는 집 앞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킹의 바로 옆에서는 태비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때로는 질문을 했고 때로는 결정을 했다. 또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목소리만을 전했다. 따뜻한 믿음과 함께 말이다.


킹은 가장 가까운 곳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북적이는 집 밖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의 문이 있는 곳으로 몸을 틀었다. 필요한 모든 것은 태비사가 챙겨준 배낭에 담겨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했다. 킹은 가벼운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생전 보지 못한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바람이 불어왔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킹은 크게 휘청였다. 그러자 박수 소리가 사라졌다. 또 한 번 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환호가 멀어졌다. 세 번째 바람이 불어와 다리가 꺾이자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킹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킹은 땅을 짚고 일어섰다. 킹은 아직 걸을 수 있었다.


“당신을 믿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리던 믿음의 목소리가 여전히 킹의 귀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새로운 문을 여는 주문, 믿음을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킹은 여전히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