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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글을 쓰기엔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또 다시 생각을 해 본다면, 써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엔 늘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생각이 있어왔다. 어느 밤, 한강 앞에서 야경을 보다 그림을 그렸다. 밤의 어둠을 모두 삼키듯 건물들은 반짝이는 눈을 켜고 잔잔한 강물을 비추고 있었다. 사뭇 차갑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그 모습을 보다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그렇기에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내게 우울증이 찾아왔던 것은 2004년의 어느 봄이었다. 초등온라인 카지노 게임 3학년때 일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우울증인 줄 알았지만, 그때 나는 어려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어쩌다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까지 겪었느냐고 말한다면 사연이 길다. 이제 와서 남 탓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 탓을 하기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내 인생 첫 우울증은 물에 던진 온라인 카지노 게임처럼 찾아왔다. 잔잔했던 물결에 돌을 던진 순간, 수면은 순식간에 넓은 원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멈출 때까지 넓어졌다. 내 마음에 그러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처음 생겼을 때, 나는 강가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나의 첫 삶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로부터 시작되었다.
경험해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학교에는 계급이 정해져 있다. 아닌 것 같고, 또 모두가 아니라고 하지만 학교는 하나의 작은 사회나 다름없다. 난생 처음 부모의 곁을 떠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제 3자와 마주하는 일. 단순히 함께 공부하고 배움을 이어간다는 의미가 아닌, 함께 공부하고 배움을 이어가는 자리에서도 존재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주관적인 차이가 되겠다. 말을 어렵게 했지만 조금 더 간단히 말한다면 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학교 폭력 문제였다. 처음에는 작은 장난처럼 시작되었던 일은 점점 의도적인 일로 변해갔다. 나는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같은 반 아이들의 행동이 결코 장난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장난이었다면 내가 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이미 사과했을 것이다. 그들은 내 거절을 거절했다.그리고 그 말을 빌미로 온갖 부정적인 말을 부풀려 전교생에게 말하고 다녔다. 소문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더 크고 이유 없는 폭력들이 내게 돌아왔다.
말과 행동은수시로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기준이란 것은 없었다.저들이 보고 싶으면 나를 찾아왔다. 나에겐 반갑지 않은 이유였다. 쉬는 시간, 수업 시간을 가리지 않고 선생님이 못 볼 때 온갖 행동이 계속이어졌다. 그들은 나와옆자리에 앉기도 싫어하였다.초등온라인 카지노 게임 3학년, 친구라는 아이들은 나를 실내화를 신은 발로 밟고, 내게서 없는 돈을 뺏으려 들고, 내 책가방을 쓰레기통에 버렸으며, 물건을 빌려가서 주지 않기도하였다. 선생님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가해자와 서로 얼굴을 보고 사과하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28명의 한 반 아이들 모두가 나를 적으로 돌리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은 교활한 웃음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이때부터 같은 공간안에 있어도 친구가 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가 꿈이 있었다. 어떤 아이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했다. 또 누구는 만화가가, 누구는 선생님이, 또 누구는 가수가, 또 누구는 드라마에서처럼 현모양처가되는 게 꿈이라 하기도 했다.괴롭힘은 초등온라인 카지노 게임 6학년까지 이어졌다.학교를 그만 두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그래도 다 마쳐야 한다고 권고하셨다. 나는 맞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누군가 체육 시간에 '피구 수업' 을빙자해서 내 얼굴을 맞추기도 했고, 뒤에서 모래를 뿌리고 달아나기도 했다.나는아이들을 피해 도서관에 오랫동안 숨어 있다가 집에 갔다.졸업을 기념하는 앨범 속'롤링 페이퍼' 에는내가 긴 글을 쓸 만한 자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잘 지내자. 두번 다시 보지 말자는 말 대신 나는 그런 말이나 쓰고말았다. 끝날 줄 알았던 학교 폭력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머리가 커진 아이들은 더 강해지고 악랄해졌다.교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의 성폭력, 일반 폭력, 장난 전화, 돈 빼앗기, 관심 없지만 말 거는 척 하기, 물건 훔치기, 몰래 내 물건 갖다 버리기등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나와 같이 앉아 있고 싶지 않다는 표시를 대놓고 표정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냥 그러길 싫어했다. 내 옆 자리는 늘 비어 있던 중학 시절,어느 우울한 풍경을 기억한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투에니 원' 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거기에 나는 오지 못하게 했다. 누군가 물백묵으로 탈의실 벽에 막 데뷔한 남자 그룹을 사랑한다고 하는 낙서를 크게 하며 행복해했다. 겨울에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후문 쪽에서 메이커패딩 점퍼와 짧은 치마, 혹은 바지를 입은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무리지어 다녔고, 오토바이를 탔다.막대 사탕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해서 책을 보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찢고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때만큼은 나를 멀리하였다.
전교 왕따라는 몰지각한 꼬리표는 내가 졸업하고 꽃을 받는 그 순간까지 따라다녔다.고등학교 3학년, 나는 겨우 친구 한 명을 사귀었다. 그 친구를 생명의 동아줄처럼 삼고살았다. 학교폭력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다. 그 이후 나는 내 소식을 어떤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지금도 가해자들을 여럿마주하지만 그들도 나도 서로 외면한다. 그들은 자기가 저지른 일과 생각을 피하려 나를 모른척하며 나는 더 이상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 얼굴을 쳐다도 보지 않는다.어느 드라마에서 본 내용과 똑같다. 10여 년이나 지났으니 기억하지 못하든가, 아니면 기억을 하면서도 모른 척 한다. 자신의 미래와 처신을 위해 나의 오랜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잘못이 없다고 믿으며,언젠가 있을 행복을 꿈꾸리라. 혹은, 이미 까맣게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거나.
요란한 물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한동안 쉬이 멎지 않았다.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었지만 잘못을 당할 수 있음을 그 때 알았다. 이 일이 크게 다가왔던 것은내가 어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전부라고 할 만한 학교가 너무나도 크게 보였다. 그리고나의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학교 친구도 없었다. 상처받은 사람의내면엔 상처받았던 아이가 산다. 나는폭력을 당한 경험을 잘 나누지 않는다. 시대가 많이 지났음에도 피해자에게 이유를 만들어 붙이려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불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술을 마시고 때린 사람이 잘못을 한 게 아니라 맞은 사람이 잘못했다는 말이다. 가령 왜 피하지 않았냐거나,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하는 말도 따라붙는다.
그러나 갑자기 들어온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초능력자나 다름 없다.고통이란 이겨내야 하는 것을 포함하여 각종 시선을 견뎌내는 것까지모두 나만의 몫이 되기 때문에 괴로운 일이다.말을 꺼내기 어려운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트라우마다. 누군가에게 마음의 고통을 나누고자 용기 가지고말을 꺼냈을 때 돌아오는 답이 냉정하면 그 길로 입을 닫는다. 그리고 나 또한,자신의 약함을 드러내 보이면 안 되는 것이 사회라 여겨입을 오랫동안 닫고 있었다.
12년, 학창 시절 교실은 내게 계절에 상관 없는 지옥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물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