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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 독자 Sep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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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어떤 사람에겐 좋지 않은 단어다. 나에게는, 끔찍했다. 어느날 아침 나는 갑작스레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자리에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빈혈이나 루게릭 같은 병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느꼈던 어지러움은 갑자기 내가 걷는 세상이 낭떠러지로 보이는 데서 온 것이었다. 나는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다. 걸으려 하면 할수록, 주변이 급속도로 어두워졌고 벽이 나에게 다가오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고 내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동급생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검고 어두운 형상이었고 나를 쳐다보는 두 개의 붉은 눈만이 선명히, 내 마음에 칼처럼 깊이 꽂혔다. 내 나이 열 다섯,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이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경험을 처음 하게 되었다.


막막했다. 그때 이미 작은 사회로부터의 거절을 오랫동안 당해 왔기 때문이다.

아, 나는 학교에서 모두가 행복하고 서로 어려움이 있으면 나누면서 이해하자고 배웠는데,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구나. 내가 이토록 약함을,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기 쉬운 도구일 뿐이구나. 나는 이때 부조리하고 끔찍한 사회의 한 단면을 알았다. 그것은 한겨울 빙판길보차고 예리하게 날선 칼보다도 더 마음을 후벼 파는 것이었다. 물의 밑바닥에서는 가라앉은 나의 마음이 하지 못한 수천 개의 말들과 함께 맴돌았다.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채는 데 민감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이 숨쉬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를 얼마나 경멸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인정하지 않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고자질한 적도 없고, 싸우는 데 부추기지도 않았으며 수업 시간인데 담을 넘어 학교로부터 도망친 적도, 너는 걸레짝같은 년이라며 누구에게 대놓고 노려보며 말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다.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을.

다만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성이라는 것을 기르고 싶어 한날같이 사람한테 거절당하고 얻어맞고 멍들며 돌아오면서도 나는 웃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착하다는 것이 그렇게 쓸모 없을 줄 몰랐다.

정확히는 착하기만 한 일.


사회에서 그런 사람을 요구하는 이유는 어쩌면,

누군가의 만만한 노예가 필요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나에게는 모든 안 좋은 순간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두려움을 마주하면 제일 먼저 피하고 싶어 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내가 우울증이 깊어진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것은 이상해진 생활 패턴 때문이었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죽은 듯이 누워 일어나질 못했다.잠깐 지나가야 할 일인데이상하게도 해가 갈수록 더 깊어졌다. 나는 방황했지만 집을 나갈 수도 없었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으며자해를 하지도 못했다.나는 보수적이고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에서 자라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진로 상담 시간에 중증도의 우울증이 발견되었지만 특별히 학교에서 조치를 취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 당시 국가대표 특화 목적으로 선수를 키운다고 교육청에서 지원금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 같은 학생이 학교에 있다는 것은 결격사유였을 것이다. 약을 먹거나 진료를 받아 볼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는 벌이를 할 수단도 없었고 나이도 어려 가족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제일 큰 문제는 정신의학과에 대한 시선이었다.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의 부모는 자녀가 우울증이 발견되면 대대수는 외면을 한다. 그 다음에는 돈 문제를 생각한다. 진료나 진단, 약을 먹는 일은 필요 없다고 하고 완강하게 반대하며, 자식을 자기 밑에 두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압박을 가한다. 엄마는 너 없으면 죽는다, 돈도 없는 게, 그런 치료를 받을 시간에 나가서 할일이나 더 해라 등 꽤 많은 말들이 있다. 사실 이 대화는 일방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효과적인 조언은 아니다. 특히 우울증을 앓는 자녀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남는 경우가 많아 가정 안에서도 보호를 받기 힘들다.


흔히들 자살은 마지막 도피이고 그래서 도망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죽고 싶은 사람은 선택지가 없어 죽는다. 도망치려고 해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살 용기도 나지 않으며 미래가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도망이 아니라, 가장 쉽거나 혹은 남아 있는 선택지가 그것뿐이라는 뜻이다. 옥상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슬프게도 생애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던 우울증 환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죽음만을 선택할 수 있다.

관리가 허술한 학교 옥상은 삭막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도심 속의 사막이었다. 볕 좋은 날 쉬는 시간에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올라 멍하니 위쪽을 올려다보는 것이 매일의 낙이었다. 쉬는 시간, 가방도 책도 전부 내 자리에 두고 왔던 날이었다. 어차피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또 그걸 싹다 쓰레기통에 버릴 테고 내가 죽으면 찾아갈 필요도 없어질 것 같아 마음이 편했던 그 날을 기억한다.


나에겐 모든 돌아가는 상황이 불리했다. 많은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걔들이 어려서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는 어른들부터 네가 먼저 참아라 했던 어머니까지 모두가 그렇게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 아무도 그런 일이 당연하게, 그리고 쉽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들을 안했던 모양이다. 사람이, 세상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나는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정상인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면서도 멀쩡한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볕이 제일 잘 드는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5층 정도면 죽을 수 있겠지. 죽기 딱 좋은 날이군. 고소 공포증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뛰어내리려 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세상은 너무나 느리게 바뀌고 있었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텐데 해결책은 미래에도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은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서 누군가는 살아갈 없게 만든다. 어딘가 별난 것, 다르다는 것은 아직도우리네 사회에서는 뿌리 깊은 증오와 차별 문제로 얼룩져 있다. 도덕도 양심도 배워봤자 인간은 천박하게도 본능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나는 가진 게 하나도 없고 내가 지금 죽으면 걔들은 내 뼛가루까지도 실실 웃으며 짓밟고 다니겠지. 그러면 안 되지만, 망자는 무덤에서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걸 아니까 인간들은 종종 안심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대놓고 비웃는 것 아닌가.


이토록 불편한 진실을 깨닫자,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을 생각을 관둘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말은 모르겠고, 대신 나 하나 죽어도 세상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게 문제였다.


그때부터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한 긴 싸움을, 스스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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