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집순이에게
내 오늘은 기어코 한마디 해야겠어. 둥지 떠난 새끼 그리워하는 어미 새는 많지만, 집 떠난 동생들 그리워하는 언니 새는 드물잖아. 겨우 1살 차이가 뭐 그리 대수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미 가면을 쓰고 평생을 그리도 그리워하누. 동생들은 둥지는 생각도 안 하고 신나게 세상 구경하고 있는데 누가 발목을 잡는다고 집에서 집 생각을 하며 집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거야? 예쁜 언니 혼자 보기 아까워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 발짓을 다 해보지만 집이 좋다고 말하는 순박한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더 닦달하려다가도 말이 쏙 들어간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하긴, 가끔 나도 옛날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나. 살기 쉬운 세상은 아니잖아? 서러운 날 흘리는 눈물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목이 아파요. 콧물이 나요." 셋 다 감기에 걸렸을 때, 목에 엄마가 써주신 감기 증상이 적힌 종이를 걸고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병원에 갔었지. 아픈 것도 놀이였던 그때 기억은 어설플수록 더 그립고 또 소중한 것 같아. "엄마, 우리 셋 낳아줘서 고마워." 기억나?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에게 똑같은 메시지를 보내곤 했어. 내가 지금 집 밖을 나가 두려움보다 호기심을 더 많이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도 어디에 있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거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라서 더 멀리 가고 싶어. 서서히 쪼그라들기 시작하는 나이, 병원 가는 것을 놀이로 생각할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시원해. 생기는 주름을 내 마음대로 펼 수 없듯이 세월은 우리를 그저 흘려보내. 자연스럽게 떠내려가는 우리 모습이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싶어 허풍도 떨게 된다. 언니는 행복해? 예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까워 뜬금없이 또 물으면 언니는 늘 행복하다며 순박한 웃음을 짓는다. 남에게는 세상 새침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에게만큼은 두부보다 연하니 전생에 무슨 업을 쌓은 걸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더는 언니랑 같이 있을 수가 없어. 세상 어느 곳도 언니와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기 때문이야. 대학생 때, "나는 너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야."라고 말하며 부담스럽게 나를 바라보던 한 살 많은 친구의 표정을 기억해. 그때 나는 친구 눈동자에서 내 무지한 눈을 처음 봤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한 살 많은 사람을 모두 언니처럼 생각했던 내가 마냥 순진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러움이 올라왔어. 그리고 속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 며칠을 앓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그 후 나는 파라다이스가 불편해졌어.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세상 물정 하나 모르고 오직 우리 셋만 있는 것처럼 평생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했어. 집안과 밖의 온도 차는 그저 해맑기만 했던 내가 철이 들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 공신이 아닐까 싶다. 집을 떠나 살기 시작하며 나는 언니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어. 미안하지만 허전해하는 언니와는 달리 나는 좋았어. 더 보고 싶고 더 가고 싶고 더 경험하고 싶었어. 내가 냉정한 건가. 언니를 볼 때마다 나는 그렇게 양가감정을 느끼곤 했어.
내가 언니에게 지금만큼의 거리를 강요하는 걸까? 언니에게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삶을 사는 것이 언니를 사랑하는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 함께하고 싶어 하는 언니 마음에 울지 않고 능글거리며 보듬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지면 좋겠어. 인간은 모두 태어나서 자라고 늙으면서 죽잖아. 우리도 별수 없지. 그러니까 남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실컷 세상 구경하고 가자. 그리고 헤어질 때가 되면 여한이 없다고 말하자. 내 인생 마지막 말을 언니가 들었으면 좋겠어. 혹은 언니의 마지막 말을 내가 듣던지. 그때에는 미안함도 고마움도 없이 그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길 바라. 언니야. 나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셋 다 철이 들어서 다행이야. 셋 다 푼수 같은 면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 나이 먹도록 어릴 적 우리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 두 달 전 엄마랑 같이 내 집에 왔던 때 기억해? 고구마랑 옥수수를 먹는데 엄마 먼저 챙겨드리고 남은 부분 먹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눈에는 너무 자연스러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어. 셋이서 낄낄거리며 한참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랬어. "이번 고구마는 나도 좋은 부분 먹을래."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마음이 울컥했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도 나오지 않더라. 그리고 통통한 고구마를 먹는 언니를 보고만 있었어. 주제넘게 잘했다고 칭찬할 뻔했어.
그 뒤 며칠 동안 언니 마음을 생각했어. 허전한 마음, 챙겨주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 또 사랑하는 마음. 내가 평생 당연히 받으며 살았던 마음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싶어 미안했어. 언니야, 어떻게 하면 나는 미안하지도 고맙지도 않고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언니에게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내 삶도 살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했어. 생각의 시작은 언니를 위해서였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를 위한 고민이었어. 언니가 편안하고 행복해야 나도 마음 편안해지니까.
그러다 묘책을 하나 발견했어. 집순이 언니와 함께 하는 여행. 내가 있는 곳에서 언니에게 편지를 써서 세상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싶었어. 나도 돌아다닐 수 있고 언니도 세상 구경할 수 있으니까 일거양득 맞지? 나는 동생이라 그런지 언니를 생각해도 결국 나로 돌아온다. 이런 나를 보면 언니 마음은 어떨까. 서운하기도 하지만 기분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아마도 이건 내가 언니가 그렇게 사는 걸 본다면 느낄 마음이겠지? 누가 보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정말로 언니가 나를 덜 생각하길 바라. 그리고 그 시간만큼 언니 눈으로 세상을 보며 즐거워하면 좋겠어.
언니야, 우리 잘 지내자. 아니, 잘 살자. 걸음마부터 서서히 늙어가는 지금까지 함께하는 인연이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 아닐까?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언니라는 사실만으로 평생 받을 복은 다 받았다고 생각해.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어. 카지노 게임 사이트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말을 믿어줘. 그리고 스스로 더 행복해지도록 노력해 봐. 세상에는 볼 것이 많아. 나도 늘 그랬듯 이기적으로 그렇게 살 거야. 괜찮지? 내가 이제부터 보낼 편지 하나하나가 언니에게 그리움보다는 삶의 작은 기쁨이 되길 바라. 그럼, 나 진짜 간다. 한 달 뒤에 봐. 누가 더 신나게 살았는지 그때 확인해 보자고.
어디에 있든 언니를 많이 사랑하는 동생이.
대문사진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