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도시가스를 끊었어. 이제 따뜻한 물도 보일러도 사용할 수 없다더라. 그냥 나가기 아쉬워 계속 머뭇거렸어. 큰 마음먹고 문 앞까지 갔다가 혹시 두고 간 물건이 있을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대며 다시 뒤를 돌아봤어.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패딩까지 입은 채 그대로 방바닥에 누웠어. 그리고 온기가 다 가실 때까지만 더 있기로 했지. 7년 동안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올라왔어. 살짝 울컥했지만 마지막 어리광이려니 생각하고 그냥 눈감아줬어.
그동안 잘 있었다고 속으로 말했어. 떠나기 전 느낌이 따뜻해서 좋았어. 이곳에 있는 동안 잘 살았다는 뜻 같았거든. 집은 단순한 물건만은 아닌 것 같아.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처럼 아쉽고 미안하고 고마웠으니까. 이 집에서 제일 좋았던 건 누우면 하늘이 보인다는 거였어. 오늘은 하늘이 파란색 색지 같아. 아쉬움에 게처럼 손과 발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조금 남은 바닥의 열기를 느꼈어. 하늘에서 헤엄치며 놀면 이런 기분이겠다 싶었어.
2달 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어. 그리고 조금씩 짐을 정리했지. 이삿짐센터를 부를 필요가 없는 살림이긴 하지만 혼자 하기엔 제법 많았어. 만만하게 봤는데 끝없이 나오는 짐을 보며 인연을 끊어야 할 때 방해하는 미련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 묵혀뒀던 짐이 나올 때마다 물건의 의미를 떠올리고 계속 간직할지 버릴지를 결정했거든. 그냥 물건일 뿐이고 7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도 많았는데 쉽게 버려지진 않았어. 물건 앞에 퍼질러 앉아 꼼지락거렸어. 그리고 혼자 히죽거리기도 하고 울기도 했어. 물건 속에 담긴 건 지나간 내 시간이었으니까. 물건이 쉽게 버려지지 않아 고마웠어. 덕분에 미련에는 되새김질이 약이라는 것도 알게 됐지. 그 뒤는 홀가분했어. 그리고 추억도 물건도 시원하게 배출했어. 나름 잘 헤어진 것 같아.
이사를 하면서 내가 가진 짐들을 정말 많이 버렸어. 꽤 쓸만한 것들은 나눔도 하고 말이야. 그래도 남은 물건은 친구네 집 빈방에 잠시 보관하기로 했어. 처음에는 책상과 의자만 부탁하려고 했는데 정리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물건이 친구네로 가는 거야. 마지막으로 짐을 옮기고 나니 빈방에 절반이 차 있었어. 문득 내가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이 무거워지는 거란 생각이 들더라. 내 짐을 맡아주겠다고 한 친구의 마음이 느껴졌어. 나를 위해기꺼이 무거워지겠다고 하는 것 같았어. 고맙고 또 고마워서 일 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했어.
집을 나오기로 하고 주소를 옮길 때가 없어 부모님 댁으로 전입신고를 했어. 단순한 서류일 뿐인데도 내 집이 없어진 것이 불안했어. 1년 간 떠돌아다니기로 한 것도 내가 한 결정이었는데 막상 근거지를 없애고 나니 생각보다 많이 허전하더라고. 그래도 밖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돌아갈 곳이 없는 게 맞겠지? 힘들 때마다 주저앉을 수 있는 핑곗거리가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 테니까 말이야. 아무튼 나는 오늘부터 떠돌이야. 먼저 며칠 동안은 부모님 댁에서 신세를 지려고. 출발 전에 밥이라도 두둑이 먹어두려는 심보인 거지.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던데 정말일까. 생각해 보면 전세 사기로 고생했던 곳도 여기였잖아. 가만히 집안에 앉아 있어도 안 좋은 일은 생길 수 있는 거야. 사기당했던 곳에서 나는 7년을 살았어. 지금 내가 떠나기 싫어 미적거리는 걸 보면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 앞으로 지낼 곳도 몰라서 그렇지 살다 보면 다 사람 사는 곳일 거야. 웃고 우는 나도 똑같을 거고. 그렇게 카지노 쿠폰하니 은근히 올라오는 불안감이 조금은 가시는 듯해. 이 집에서 7년 동안 헛발질만 하며 산 건 아니라는 증거겠지? 좀 더 용감해졌으니 이제 집을 나가 볼까?
이사를 하는 건 흔적을 없애는 작업 같았어. 이번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발자국들 지우느라 고생 좀 했어. 그래도 텅 빈 집을 보니 잘 비워낸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드네. 내 뒤에는 어떤 사람이 머물게 될까. 괜찮은 곳이니 잘 지내라고 메모라도 남기고 가야겠어. 기분 좋은 시작을 응원해 주고 싶거든. 다른 사람에게 쓰면서 나에게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야. 앞으로도 떠날 때마다 내가 뒷사람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위해 기분 좋은 메모를 남길 수 있길 바라. 이제 슬슬 바닥이 차가워진다. 더 추워지기 전에 일어나야겠어. 정신 차리고 나가 볼게. 잘 있어.
진짜 간다. 잘 카지노 쿠폰 가이.
대문사진 : 픽처베이